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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화 (07.08)

  • 2007-09-05
  • 조회수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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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주형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진경산수화는 우리 나라에 실재 존재하는 명산승경을 소재로 하고 남종화법에 토대를 둔 한국적 화풍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겸재 정선 이전에 실경을 그리는 전통은 고려시대부터 이녕의 <예성강도>와 <천수사남문도>, 작가를 알 수 없는 <송도팔경도>, <금강산도>등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 <한강유람도>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명나라 사신에게 주기 위한 <금강산도>가 그려졌으며, 사신의 요구에 따라 <삼각산도>를 그렸다. 다만 지금 전해지는 작품이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실경을 그리는 화습이 일찍부터 유행하고 있었던 점을 말해준다. 이러한 진경산수화가 유행한 것은 비교적 안정된 정치와 경제를 통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농업생산의 증대 수공업의 발전, 둘째 상업활동의 증가 그리고 사대부층 사이에 퍼지고 있던 여행붐, 마지막으로 지도 제작의 활성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시를 지어 기행문학을 발전시켰고, 화가들은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겸재 정선이 있다. 정선(1676~1759)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금강전도>(1734)는 왼편상단에 “금강전도 겸제”, 오른편 상단에 칠언율시와 갑인동제라는 글이 적혀있는데 이것들은 서체로 보아 정선의 것으로 추측된다. 금강산을 부감법으로 조망한 그림으로 원형구도를 보여준다. 부감법은 세로로 길고 폭이 좁은 화지에 겹겹이 쌓인 산을 그리기 위해서 높은 곳에서 아래로 45°각으로 내려다본 상태에서 그리는 화법이다. 왼편 아래에 토산을 배치하고 오른편 대부분 첨봉의 다양한 암산이 빽빽이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맨 위쪽 끝에는 비로봉을 묘사하였으며 산들과 하늘이 마주치는 여백의 가장자리에는 연한 푸른색을 칠하여 허공을 나타냄과 동시에 첨봉들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도록 하였다. 또한 한양 근교를 그린 <인왕제색도>가 있다. 윤오월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비에 젖은 인왕산 바위를 포착하여 실경의 인상적인 순간을 작품으로 하였다. 화면을 압도하는 인왕산 바위의 대담한 배치와, 비에 젖은 암벽의 중럄감을 잘 살린 적묵의 표현이 돋보인다. 정선은 주로 산수화로 알려져 있지만 인물, 화조, 초충 등도 그렸음이 현존하는 작품과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실경을 다룸에 있어서 사진과 같은 사실적 표현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기 다름대로 자유롭게 해석하고 취사선택하여 생략함으로써 남종화가들이 지향했던 사의적 미의 세계를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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