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장영준(학예사)

1. 서 론
2. 전시와 지역미술문화		 3. 지역 미술의 활성화 정책과 전시행정
4. 결 론
2. 전시와 지역미술문화

궁극적인 한국미술의 발전은 중앙을 비롯한 각 지역 미술문화의 균형있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미술관이 아닌 타 장소에서 전시된 것은 작품의 보존관리 문제에 있어서 많은 부담을 지니게 되는것이 사실이나 지역주민들에게 가치있고 소중한 작품을 감 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지역 상호간의 미술문화의 교류를 촉진시키고 균등한 향수권을 형성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대구와 강릉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특별 순회전에는 한국화의 (이당)김은호, (청전)이상범, 양화의 김환기, 조각의 김경승 등의 작고작가와 김기창, 유영국, 민 복진 등 원로작가의 작품 70여점이 전시되었는데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대구 문화예술회관, KBS대구방송총국, 강릉문화예술관, KBS강릉방송국이 공동협찬한 전시회였다.

예로부터 대구는 한국 근대 서양화가인 이인성, 금경연, 서동진, 박명조, 손일봉 등과 한국화 및 서예의 서석지, 박석주, 서병오 등 훌륭한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되 었으며 1930년대 이전부터 서양화가 도입되는 등 지역의 고유성에 바탕을 둔 예술 문화가 활발히 전개되어 왔던 고장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손일봉을 비롯한 정치환, 강우문 등의 대구지역 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의 소장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지역미술의 발자취를 일깨워 보았으며 여기에 부응하여 대구시민들의 전시회에 대한 관심이나 관람의 호응도가 굉장히 높 았던 점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이번 순회전의 취지나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 다.

첫째, 지역주민의 미술문화 향수권 신장을 위한 노력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는 필요한 환경 조건이나 목적이 있겠지만 크게 두가지로 분류해 본다면 물질적 충족과 정신적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한 행복의 추구로 유추해 볼 수있다.

오늘의 상 황이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해 짐에 따라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거기에서 파생된 이기주의, 개인주의 등이 우리의 삶을 각박하게 함으로써 전자와 는 상반된 이중의 모순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것은 어느 한 지역을 지칭하여 가리키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 어느나라 어느지 역을 보더라도 문화가 발달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수도권 중심지역이나 대도시 등에서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런 까닭에 중앙과 지역 문화권을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형평을 이룬 문화혜 택을 누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제반 사회적 여견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미술 문화의 활성화 문제다. 지방의 문화예술 육성사업은 정부의 진흥 기금이나 지방문화시설의 확충 지방문화원의 활성화, 지방예술 활동의 지원 및 교 류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며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고루 수용하고 접목시켜 균형있는 발전이 이루어지도륵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 지역성과 현대성을 고루 갖춘 예술문화가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게 되는 것 이다.

작가나 전시활동, 화랑 등의 전시문화 시설에 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나 대중 매체의 적극적 홍보 등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만 지역미술문화가 낙후되지 않고 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대구지역만 보더라도 지역 행정당국의 적극적 지원 과 신문이나 방송국 등의 언론매체의 홍보활동, 작가나 미술관계자들의 관심이 지 대하여 전국적 예술행사의 개최와 중앙지역 예술인 단체 등을 통한 지방문화사업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으며, 지방 예술인의 자질향상과 창작의욕 고취, 자율적인 예술 문화에 대한 참여의 기회를 유도함으로써 중앙과 지역문화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고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성이 조화된 대구지역 특유의 미술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셋째, 지역간의 미술문화 교류의 추진 및 미술인구의 저변확대이다 미술문화가 대중적으로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작가나 미술관계자, 전시공간이나 관람객의 분포 충 등이 폭넓게 확산 되어야 하며 지역 안에서 뿐만아니라 지역과 지역간의 교류활 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만 한다.

비근한 예로 대구나 광주직할시 등은 일본이나 서 독 미국 등 비교적 우리보다 미술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특정도시와의 독자적 교류 전을 통해 지역예술 문화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대표적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수평적 구조의 전시나 적극적인 타지역 미술문화의 유입태도는 단편적이고 정체된 지역미술문화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지역민들의 문화역량 창달과 도 덕적 · 정신적 윤리관과 가치관의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을 알아 야 한다.

이런 점들이 결과적으로는 지역 미술인구의 확산과 미술문화의 저변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순회전이 추진된 이면에는 지역미술의 특성을 고려 한 이러한 몇 가지 사항들이 신중하게 고려되었음을 밝혀 둔다.

1910년대 (이당)김은호의 「이준공 초상화」를 비롯하여 1991년에 제작된 김흥수 의 「성에 눈 뜬 소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사의 전반적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작들이 전시된 이번 전시회 출품작들은 미술사적인 가치와 각 시대별 미 술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만한 작가의 대표작들로 구성되었다.

연도별로 출품작들을 분류해 보면,

1917년 김은호「이준공 초상화」 1925년 김국진「석노죽수」
1927년 이종우「인형이 있는 정물」
1940년 허백련 「산수화 (여름,가을)」 1949년 도상봉 「한 정」
1954년 김인승 「홍 선」
1958년 배렴 「산수화(가을,겨울)」
1958년 장욱진 「까치」
1958년 장리석 「그늘의 노인」
1959년 유영국 「산,지형」
1960년 김정현 「녹음.가을」
1961년 김경승 「조각 (춘몽)」
1963년 남관 「역사의 흔적」
1963년 김환기 「운월」
1967년 오지호「한라춘설」
1971년 문학진 「까치」
1973년 손일봉 「난동」
1976년 성재휴 「산」
1980년 장우성 「절규」
1983년 황규백 「자명종 시계」
1983던 박생광 「제왕」
1990년대의 장두건, 이준, 변종하, 김흥수, 박서보, 류경채, 강관욱등으로 분 류된다.

이중 이번 전시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을 열거해 보면 (청전)이상범의 「산수 화」와 박생광, 김환기, 도상봉, 최영림, 손일봉의 작품을 들 수가 있다.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풍경과 가난한 농민의 삶을 소재로 삼은 이상범의 작품은 독 특한 표현과 사생풍의 치밀한 구도 등에서 정감있는 한국적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 으며 작품의 내용뿐만아니라 형식과 크기면에서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없 는 작품으로서 대구시민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제공하였다.

박생 광의 작품 「제왕」은 전통적인 구색기법에 현대적 조형성을 가미하여 전통정신의 현 대화라는 독창적 세계를 개진하는 것이었는데 샤머니즘과 불교설화, 민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것들을 소재로 하여 정신적이고 신비스러운 상황을 재현하고자 하였 으며 단청이나 민화, 벽화 등에서 발취한 채색기법을 응용하여 비 원근법적인 구성 과 소재의 재해석 등에 의해 인간의 원초적 감성과 민중적인 에네르기가 함축된 조 형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추상회화의 개척자로 불리우는 김환기의 작품 「운월」은 서정적인 경향 의 작품으로 산과 구름, 달 등의 한국적 소재를 양식화한 독특한 세계와 기하학적이 면서도 단순한 구성을 거쳐 사각의 공간속에 굵고 투박한 선과 청회색의 색조를 바 탕으로 제작된 단순하면서도 시적인 내용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서양화 부문의 활동 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구화단에 큰 감명을 주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중 조각분야에서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작품은 김경숭의 「춘몽」이라는 작품이었다. 김 경숭은 한국 근대조각의 도입과 정착의 시기에 사실주의 경향의 조각을 주도한 선 두주자로서 고전적 사실주의 기법에 바탕을 둔 청동주조의 여인 나체상을 즐겨 제 작하였는데 대구, 강릉 지역에서 전시된 작품은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낸 여인흉상이었다.

우아함과 고요함, 순결함이 일관적으로 흐르는 그의 작품 에서 이번 특별순회전의 개최 의도를 다시한번 읽을 수가 있었으며 심도있는 조각 의 진수를 느낄 수가 있었다. 출품작가중 대구와 강릉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소장작 가는 정점식, 정치환, 강희덕, 오세원 등이었다.

정점식은 대구에 거주하는 작가로 국전 추천, 초대작가를 역임하고 계명대학교수 및 예술대학장을 지낸바 있는데 동양의 조형감성과 서구의 추상적인 표현양식을 융합하여 온화하면서도 깊이있는 작품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의 모습을 정감어린 눈으로 바라 보면서 거기에서 느껴지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펼쳐보이고 있는데 스크래치 기법을 이용한 질박한 텍스츄어 바탕에 가는 선들을 유동적으로 그음으로 써 명상적인 표현성과 환기력을 제공하고, 진폭이 있는 작품의 깊이에 의하여 개성 적인 조형의지를 보여 주었다.

또한 해박한 예술이론을 바탕으로 꾸준한 창작의 자 세를 견지함으로써 지역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영남대 교 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전설」이란 채색화 작품을 출품한 한국화가 정치환은 일상 적인 자연경관 중에서 산, 바위, 옛성터, 물, 나무 등의 소재를 택하여 그 인상들을 발묵, 선묵, 파묵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작가 자신의 조형논리로 단순압축시킨 형태감을 표출하였으며 마치 바위를 깬듯한 붓자욱과 부분적인 채색,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구조를 사용하여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작품세계를 보여 주었다.

9.19∼9.25일까지의 대구 전시에 이어서 열린 강릉 순회전에는 전시공간과 조명 등의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69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강릉은 예로부터 산수가 수 려하고 시인, 명필 등이 많이 배출되온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워온 만큼 그 지역 예 술인 및 미술관계진들의 호응도도 매우 높았는데 그 점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지 키는데 힘써 온 그 지역의 저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강릉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조각가 오세원과 강희덕교수의 작품은 매우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재 강릉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강희덕교수의 조 각작품은 인간의 형상이 입체적 조형물에 의해 부분적으로 가려지고 손, 발, 얼굴 등이 일부분만 노출된 출토 시리즈 작품이었다.

이는 형태의 육감적인 면이 은폐되 어 적막하고 엄숙한 상태를 엿보이게 하는 한편 신비스럽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내 포하고 있는데 재질로서는 브론즈와 화강석을 이용하였으며 매끄러운 부분과 거친 부분의 질감을 대비 인위적인 성격과 자연적인 특성을 조화하여 인간성 회복을 암 시적으로 부르짖고 있는 듯한 작품이었다.

조각인구가 많지 않은 강릉지역에서 이 런 대규모 전시회가 열림으로써 지역미술문화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전개시켜야 할 미술문화의 방향을 예측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지역 보다도 성공적인 전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전시장의 전시면적이나 공간 조명효과를 극대화시 키기 위하여 회화작품과 조각작품의 배열위치를 미술사적인 흐름에 중점을 두면서 도 작품 하나하나의 특징을 강조하는 집약적이고 국부적인 조명방식과 디스플레이 형식을 취한 점은 강릉전시의 독특한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구와 강릉지역 전시를 통해서 본 지역 미술문화의 실체는 때묻지 않은 전통성과 고유성을 지닌 채 활발하고 생명감있는 향토미술을 일구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 또한 높아 그동안 이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어느 전시회보다 열렬한 호응과 반응을 불러 일으켰으며 바로 이 점에서 이 전시가 일회 성에 그치지 않고 연차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전시회의 취지와 당위성을 재인식 할 수가 있었다.

사실 고정된 관념과 제한된 영역 안에서의 전시는 능동적이고 적극 적인 관람환경을 요구하는 향수권자 입장에서 보면 시간적, 정신적인 제약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대구와 강릉지역을 특별순회함으로써 중앙과 지역문화권 을 연결시키고 지역과 지역간의 미술문화의 수용과 비교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처음 의도했던 이번 전시회의 기획취지를 일부분이나마 충족시켰다고 본다.

현대는 복지사회다. 따라서 지역간의 차이나 인구의 분포비율 등의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경제적 풍요와 물질적 충족감을 채워주는 동시에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균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 협조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지역주민 들에게 전시와 예술활동을 통한 정서적 감동과 문화적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