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정보사회론

이용우(고려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Ⅰ. 형식주의 미학의 한계
Ⅱ. 정보와 참여의 예술
Ⅲ. 고급문화 대중문화, 그리고 예술
Ⅲ. 고급문화 대중문화 그리고 예술

팝아트가 공식적인 이름을 갖고 탄생한 1958년 2월, 대중예술(Popular Art)이란 이름을 준 영국의 비평가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는 『건축디자인(Archi-tectural Design)』이란 잡지에서 예술과 매스미디어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팝의 정의를 유도해 내었다. 따라서 팝아트는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와 대중문화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지만 그 가운 데서도 매스미디어의 역할과 절대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다.

60년대 초 팝아트의 열기는 가히 전 미국적 현상으로 전이되었고 타임지나 라이프, 뉴스위 크지는 모두 1952년에 한번씩 팝아트에 대한 커버를 장식하였다.

초기 팝아트에 대한 열기는 가령 런던의 매우 독립적이었던 그룹, 즉 런던현대미술관(ICA London)내의 젊은 미술행정가 들에 의해 조직된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라는 전시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미래미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섞인 것이었다.

미국이 팝아트를 미국적 체질로 재구성한 것 은 이를테면 1962년도에 시드니 재니스(Sidney Janis)화랑서 열린 <신사실주의전(New Realists)>을 시작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미술인 신사실주의가 채택한 대중소비사회의 대표적 오브저인 산업폐기물이나 버려진 것들이 버젓이 예술로 재탄생 할 수 있다는 확신은 대중문화 가 순수예술과 함께 거리낌 얼이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팝아트가 비록 전후 추상미술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문제는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것이어야 예 술로 간주되던 이른바 엘리트 영웅주의에 대한 거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 신적이고 철학적인 것이 합리주의와 기술개발, 역사의 진보의 원동력이라고만 믿기에는 너무 나 활동적이고 다원화된 이미지사회에서 팝아트는 당연히 대중의 우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팝아트는 결국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 아방가르드 예술의 신화를 대중의 이야기, 대중의 신 화로 치환시키면서 예술이 갖는 놀이적이고 아이러니한 전통을 되살려낸 셈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정보 소통의 기능을 대폭 개방함으로써 다른 차원의 예술관을 유도해낸 것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뿌리를 두었거나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중사회에 예술의 근거를 둔 포스트모던 니즘, 신기하학주의, 차용예술 등의 경향은 팝아트의 기원을 떠나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문화(Popular Culture)는 원래 집단문화(Mass Culture)로부터 유래된 말이나 집단문 화라는 용어는 이미 쇠퇴하여 버렸다. 원래 문화소통 형식으로서의 다자관련 현상인 기획신문, 영화, 재즈, 팝뮤직, 라디오, 카바레, 광고, 희극, TV 등은 원래 19세기 유럽 도시 등에서 시 도 되었던 것들과 본질적으로 뿌리를 함께하고 있다.

이것은 근로자 계층이 오페라나 클라식음 악, 고전적 회화, 전통적 연극과 소설 등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엘리트 예술형식은 계급적 관객을 개발하긴 했으나 대중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앨리트 예술은 속칭 고급예술(High Art)로, 대중예술은 저급예술(Low Art)로 부른다. 고급, 저급예 술에 대한 논쟁은 1950-60년대 이른바 지식인들도 TV를 보아야 하는가, 팝아트도 예술인가 등의 논쟁에서 열기를 더 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누구도 저급예술이라는 말을 수락하지 않는다.

또 모더니즘을 혁명적이고 부르조와 미술의 비판이라고 부르던 계급주의 미학, 포스트모던 논자 들의 주장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상주의는 비타협적이고 호응받기도 어렵 다. 또 상업주의로부터도 다소 멀어져 있다.

대중문화는 본질적으로 상업적 성공과 실패에 의 하여 판별된다. 대중문화의 속성은 따라서 대중소비사회의 정부 즉 미디어의 역할에 의하여 보급되고 대중에 의하여 호응 받던 전통예술은 대중적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줄기가 번창하 였으며 아방가르드를 동기로 하였던 현대예술의 소통블능 현상은 단명을 재촉하였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과학혁명과 정보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예술을 더 이상 메타포나 알레고리의 대상으로 방치하지 않고 있다. 관람객을 부르지 못하는 전시회는 전시회의 질을 터나 실패한 전시회로 간주되며 대중적 공감대와 전통을 초월한 전시회는 유효하지 않은 것으 로 파악된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모더니즘의 반대급부에서 나온것만은 아니며 다자간의 공유 를 본질로 하였던 예술의 본래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보사회의 참모습 을 모더니즘의 오류를 격파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승리로 본다거나 예술의 사회적 기능 여부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예술의 정치화를 몰고 왔던 80년대 미국미술의 영향으로 보는 것도 본 질과 크게 다르다.



예술이 문명발전을 역사발전과 동질화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자각은 예술 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베를린 쿤스트할레(Berlin Kunsthalle)는 70년대까지 유력하였던 독일 모더니즘운동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아방가르드의 고급문화지향을 끝가지 고수하다가 마침내 문을 닫고 말았다.

베를린 쿤스트할레의 폐막을 두고 계급주의 미학자들은 미술의 정보기능, 소통 기능에 관한 센세이셔널리즘을 보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이 미술관이 치렀던 전시회 내 용을 놓고 폐관의 필연성을 역설하면서 관람객으로부터 외면당한 미술행사는 근거를 상실한다. 고 주장한다.

베를린 쿤스트할레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유럽의 칭찬은 포르투갈 리스본 현대 미술관이 기 획한 초현실주의전에 쏠리고 있다. 초현실주의가 추구한 모더니즘 기류의 비대중성과는 달리 이 전시회는 전시회의 기획방법을 놓고 논점이 모아지고 있다.

94년 미술행사의 하일라이트로 평가되는 이 전시회는 쉬르레알리즘(surrealism)의 시대구분을 가령 20세기에 국한시키지 않 고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를 시작으로 14세기까지 끌어 올렸다.

따라서 예술 이 추구하는 이상이 비단 모더니즘의 주된 정서가 아니라 다양한 편차를 두고 부단히 추구되 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초현실주의의 카테고리를 역사와 연결시켜 추출해내며 시대별로 존재하였던 아방가르드의 승리를 초현실적 메시지로 파악하였다.

이 전시회에 관하 여 이탈리아의 「일 죠르노(Il Giorno)」 신문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문화의 센터가 아닌 변 방지대가 늘 역사의 주요한 관찰자였다는 평가를 서슴치 않았다.』

또 독일의 미술잡지 『쿤스 트(Kunst)년 마드리드 미술관이 기획한 상징주의(Symbolism) 전시회가 미국과 유럽의 무시속에 치러진 가장 훌륭한 전시회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리스본의 초현실주의전의 의 미를 깊게 하였다. 거의 동시에 베니스에서 열린 초현실주의전은 혹독한 비판과 함께 예술의 정보와 소통의 기능을 영웅주의가 망쳐놓은 경우라고 꼬집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의 미술관들은 문화의 고급화현상으로부터 겪은 후유증과 그것의 대중화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문화가 무조건 대중주의를 부르짓는 다거나 통속화를 가 속시킨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이같은 고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미술의 혜게모니 현상을 이 느 곳보다도 첨예하게 보여주었던 유럽전통의 미술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 타>에서 드러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95년 제46회 비엔날레가 비엔날레 창설 1백주년 을 겸하고 있어 미술 1백년이라는 역사성에 관하여 다각적인 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엔날레의 역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그 동안 맡은 역경을 겪어 왔지만 95년 비엔날레는 비 엔날레 창설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큐레이터를 임명함으로써 맡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외국인 큐레이터 임영은 1백년 행사를 객관적 시각에서 다루어 보겠다는 의 지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현대미술의 정치적 각축장이 되어온 문화전쟁의 열기를 다른 각도에 서 검증하려는 시도도 곁들여져 있다. 즉 시상제도에서 파생된 유럽과 미국의 대결구도, 예술 에 현실문제틀 적극 유입함으로써 논란의 대상이 된 예술과 사회에 대한 상호기능의 문제 등 이 그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집행위원회가 프랑스 피카소 미술관장 장 클레르(Jean Clair : 본명 Gerard Regnier를 시각예술전시위원장, 즉 큐레이터로 임명한 배경은 그가 퐁피두센터에 큐레이터로 재직시 기획하였던 예술과 과학, 예술과 시 등 예술의 다원적 접근태도를 평가하 였다는 논평이 있었다.

이는 예술이 문명의 궤적에서 기능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여 왔 는가, 또는 예술의 위상이 문명사회의 다변화된 패러다임에서 어떻게 신원의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였다는 평가를 기본으로 하였다. 아울러 장클레르는 1995년 <베니 스 비엔날레>의 주제를「동질성과 이질성」으로 설정하여 문명과 예술의 문제를「예술과 과학」 으로 좁혀 특별전을 기획하였다.

이는 예술의 기능을 아도르노 학파나 후기구조주의가 말하는 계언들을 집약적으로 수렴하여 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기도 하며 예술을 역사속에서 유출시 켜 20세기말 사회학적 현상으로 대상화 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기도 하다.

<카셀 도큐멘타>도 도큐멘타 역사 42년의 궤적을 다분히 문명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보이 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쥬 드 폼 미술관 큐레이터 카트린 다비드(Catherine David)를 총괄 큐레이터로 임명한 도큐멘타 집행위원회는 다비드가 퐁피두센타 큐레이터로 재직시 기획하였 던 상징주의 전시회 등 미술과 문학 사이의 수사학적 동질성과 이질성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검토하였던 기획태도를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97년 <카셀 도큐멘타>는 정치적 이슈가 제의될 것이 분명하며 대신애 다분히 원론적인 여술의 본질애 관한 접근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배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맨타>의 변화는 새계현대미술계의 역학관계에 큰 파급효과 를 미칠 것으로 전망되어 아울러 <휘트니 비엔날레>나 <상파울로 비엔날레>도 종래의 미술의 접근방식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즉 93<휘트니 비엔날레>가 지나 치게 예술의 사회학적 해석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95년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는 미 국현대미술의 친위대로 불리우는 커테스(Kertess)를 임명하면서 <휘트니 비엔날레>의 이정표 를 다시 세우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93년에 엘리자베드 서스먼 (Elizabeth Sussman)이 총지휘를 맡으면서 포스트모던 논자들이 재기한 지역주의 문제와 미 국역사의 현실적 적응에 충실한 전시회를 꾸몄으나 예술의 지엽주의 문제와 정치화에 염증난 신보수주의 비평가들의 공격적 목표물이 되기도 하였다.

커티스는 95년 비엔날레의 성격을 보 다 문명적 접근에 두고 미디어예술의 다양한 접근을 통한 대중소통의 문제와 예술의 문화적 신뭔을 다목적으로 검증해보는 전시목표를 세우고 있다. 커티스는 최근에 밝힌 95<휘트니 비 엔날레>의 개념설정 브리핑에서 예술의 독단주의나 자아집착적 현실주의를 버리고 역사와 문 명사이에서 자유롭게 교감하는 내용을 담아보겠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형식주의 미학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던 60년대말이나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후기 구조주의 등 논리적 개괄이 예술의 지나친 목표의식을 조장하는 지금이나 모두 또 다른 위기 를 느끼기는 여전하다. 기술의 축적으로 인간의 미래에 대한 보다 나은 조건을 예고하던 시대 의 지표는 환경문제와 문명에 대한 회의로 장래가 순탄치 알음을 알린다.

예술의 정치적 지역 적 배려는 확실히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문제를 새롭게 환기시켰으며 예술이 엘리트주의적 태 도를 벗고 대중과 교통하는 코드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고도기술사회, 고도정보사회에서 다양 하게 확산되고 있는 예술의 양적팽창에 대하여 대중은 종래 예술의 담론과는 달리 새로운 체 계를 원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은 아직 분명치 않으나 미학의 개별화 지역화 문제가 중 심과제로 떠오르면서 러스킨이 정의한 위대한 민족관, 즉 스스로의 역사를 행동과 말과 예술 로 나타내는 신뢰성이 아름다움의 주재로 부각된다. 예술은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대중과 사 회사이에서 다자간의 상상력을 배태시키는 도구이며 사고나 감각성보다는 이성적 행동과 소통 의 매재로 빈번하게 활용된다.

1871 파리 코뮌에 가담하여 방동(Vendome)장에 새워져 있던 나폴레옹의 기념주를 헐어버림으로써 제국주의적 초상에 항거하였던 쿠르베(Courbet)나 영국의 머독스 브라운 Odaduk Brown)의 권태로운 사회에 대한 풍자적 그림인 <노동(Work)>, 밀레의 노동과 농촌 에 대한 진실된 묘사들이 문명사회를 풍자하는 오늘날의 잣대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전통에 대한 재생이나 마르크스적 계급주의 미학의 재생이 아니다.

이는 예술이 낭만적 실험 을 통하여 살의 실체가 아닌 허구를 신념체계로 내세우게 되면서 무너져버린 역사적 현실감이 새삼 강조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어진 진정으로 사람들의 역사와 관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여 준다. 현대미술이 대중과의 소통체계를 새로운 단초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현 대공학의 결과나 미디어의 다채로운 형식을 통긍넋 새로운 문명적 시각을 발흥시키려는 비평 적 신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