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

이인범


  I. 머릿글-김윤식의「문학과미술사이」 를 읽고
Ⅱ.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
Ⅲ. 우리나라미술관제도의문제들-「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Ⅳ.「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배경과 그 전사(前史)
Ⅴ.「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조직과 소장품을 중심으로

Ⅱ.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

가상이 아닌 실물(real thing) 앞에 서는 흥분이나 긴장감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적지 않게 마련이다. 그것은 진리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과 두려움 때문이리라. 인간이 구축한 진리론에 있어서 늘 문제시 되는 것이 기호체계 자체의 정합성 여부이지만 궁 극적으로 우리가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은 실재의 세계이다. 박물관은 실재하는 사물을 다루는 기관이다. 예술작품이든, 고고학적 자료이든, 역사적 자료이든 박물관이 다루는 것은 실물이다.

미술관(Museum of Art)은 박물관(Museum)의 일종으로서 그것의 특수한 영역을 이룬다. 박물관의 종류는 다양하다. 전통적인 미술관, 인류학박물관, 고고학박물관,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과학관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리의 언어습관을 고려하지 않고 표기한다면,'Museum of Art'의 번역어인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엄밀하고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박물관 일반으로부터 그 특수한 형식인 미술관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 관습이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듯하다. 미술관이 그것이 수집대상으로 삼고 활동의 중심으로 하는 자료에 있어서 그 밖의 여러 종류의 박물관과 매우 특징적인 차별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미슬관이 소장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미술품은 그 자체의 형식적 자율성과 인문적 삶에 있어서 최고의 표현헝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미술관이야말로 박물관 중의 박물관 으로 평가받아 왔다.
따라서 미술관이란 진정으로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선 예술이란 무엇 인가에 대한 내용규정의 기초 위에 서지 않으면 않될 것이다. 예술의 본질을 어떵게 한정하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미술관의 성격과 질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의 이러한 내용적 특수성을 담는 그릇은 박물관 일반의 형식적 틀이다.

미술관은 박물관의 정의(定義)에 의해 그 형식이 드러난다. 박물관의 역할과 기능, 그것의 활동지표를 잘 드러내는 강령은 ICOM(국제박물관협회 :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의 박물 관헌장이다. 그것이 1948년에 정의하는 박물관은 다음과 같다.

박물관은 예술, 역사, 미술, 과학 및 기술관계 수집품과 식물원, 동물원, 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 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며 가치를 고양시키는데, 특히 일반대중의 즐거움과 교육을 위해 공개전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항구적 시설을 말한다.

이후에도 국제박물관협의회는 총회의 결의를 통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해서 박물관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 박물관의 활동목표를 수정·보완해왔다. 이러한 정의들이 모든 박물관들이 추구해야 할 절대적 규범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박물관제도는 역사상 사회의 발전단계에 따라 그동안 엄청나게 변화되어 왔고, 그 역할과 기능은 시대와 요청에 따라 앞으로도 매우 역동적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오늘날의 박물관들 역시
박물관마다 독특한 자기자신을 운영하는 방법론이 있을 뿐, 보편타당성을 지닌 법칙과 논리에 의해 다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현단계에서 ICOM의 정의는 인류가 박물관에 부여한 최선의 활동지표를 나타내는 국제사회에 관행화 된 박물관 이해의 준거임에는 틀림없다.

ICOM의 박물관정의는 간결하지만 박물관제도의 역사적 진화발전의 경과를 함축하고 있다. 실체적인 사물로서의 자료에 대한 경외심과 그것을 담지하기 위한 제도적 항구성, 민주적 지향성에 입각한 공공성, 비영리성등은 박물관제도의 근원과 자기혁신의 과정에 서 이룩된 박물관제도의 당위적 특성이다.

시공간적인 한계와 속박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모으고 갈무리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탄생에서부터 일 것이다. 그리이스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뤼케이온 학원 안에 설립했던 박물관(Museion)과 그의 뜻을 좇아 B.C. 2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설치된 박 물관은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컬렉션과 이를 근거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박물관제도의 출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이스 이래 로마 중세 르네상스 절대 왕정시대를 거치는 동안 서구사회에서 박물관은 종교적이거나 세속적 가칙 권위, 정 통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서, 또는, 자연과 문화의 근원적 탐구를 위한 학술적 목적에서 많은 자료들을 수집 소장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 지배 엘리트를 위한 것이고, 또 그들에 의해 이루어졌었다. 박물관이 오늘날 같은 면모를 이룩하게 된 것은 컬렉션의 발전과 공공이용의 확대를 통해서이다. 궁정 흑은 귀족들이 근대적 시민혁명에 의해서 또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컬렉션을 개 방한다든가, 뜻있는 개인 국가 공공단체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로 수집을 행한 바로 그 시점이 박물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자 중대한 진일보로 간주된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군주정치의 몰락 1주년을 기념하는 날인 1793년 8월 10일에 루브르궁전에서 몰수한 왕실소장품들을 전시하면서 개관된 루브르박물관은 시민민주주의 장신에 의해 열린 최초의 대표적인 공공미술관이다.

민족국가형성과정에서 네덜란드, 헝거리, 체코 등에서 국민과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자주독립과 민족적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추진되었던 19C초의 박물관들, 특히 국립박물관 건립운동은 그들이 박물관제도를 통해 어떻게 공동체의 삶을 꾸리려고 했나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 (例)이다. 또한 1558년에 설립된 미국의 국립박물관인 스미소니언 인스티투션(Smithonian Institution)의 설립 예는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국가에 한 개인이 지녀야 할 도덕적 책무란 어떤 것 인가에 대해 교훈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미손(J. M. Smithon, 1765~1829)은 자신 소유의 수많은 수집품들을 국가에 유중(遺贈)하여 미국의 국립박물관을 설립하도록 하여 소장품을 공공의 것으로 환원시켰다.

박물관제도의 개혁과 발전의 예는 이 외에도 허다하다. 박물관제도의 이러한 다양한 근대적 개혁의 역사, 특히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공공 서어비스와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박물관들의 자기혁신은 ICOM의 결성과 노력으로 이루어져 왔고,그 정신은 박물관 정의 속에 담겨져 왔다.

박물관제도는 20C에 들어 특히 전문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종합박물관으로 부 터의 이러한 분화과정이 있기 전부터 미술관은 박물관의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형태로서 존재해 왔다. 그 이유는 미술작품이 고전적이고 인문주의적 문화개념 안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박물관 일반의 형식적 문제를 떠나 미술관만의 독특한 성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전문박물관으로서 미술관의 발생사적 근거는 미술작품을 일반적인 역사적 사료 혹은 자연사물과 구별하고 그 독자적인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예술의 가치를 자의식적 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기운은 르네상스 이래 두드러진 경향이었다. 미학적인 의미에서건 사회학적인 의미에서건 예술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정신의 산물이다. 특히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근대 이래의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념은 예술의 내재적 가치 우위의 신념을 강화해 왔다.

그러한 신념은 미술작품을 역사와 사회적 연관에서 떼어내어 신전이나 성소(聖所)와 같이 순수한(?) 미술관에 안치시키고자 하는 잠재의식을 갖게 했다. 또 한편으로는,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예술을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고 공동체 감정을 심화하여 혁명이 이룩한 성과를 의식화 시키려는데 이용한 이래, 예술은 정치적 신조가 되었고, '사회라는 구조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토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믿음이 두터워졌다.

미술작품자체의 본성에 입각해서 미술작품의 사회적 가치를 인식하는 방식 역시 깊을 대로 깊어겼다. 작품은 적극적으로 제3자에 의해 해석 ·평가되고 수용되어져서 다시 역사를 형성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구조적으로 자기 목적적인 가치를 지닌 동시에 창작-작품-수용이라고 하는 유기적 연륜에 입각한 하나의 전달구조로서 사회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작품은 독자의 독서행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완성된다고 하는 수용미학의 주창자 이저(W. Iser, Md6-) 의 말은 그러한 입장의 적극적 표현이다.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미술관문화의 융성은 예술작품 자체의 존재론적 요청이자 그것이 지닌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그들의 인식방식에 비추어 당연한 귀결이다. 미술 관문화는 물론 사회의 총체적 구성이 어떤 성격이냐, 흑은, 그 사회 안에서 조형예술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그 븐질이 어떻게 달리 받아들여지느냐 등등에 따라 다른 양태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선택된 일부계층만을 위해 붕사하고 단지 고전적이고 인문주의적인 토대 위에만 서있던 미술관들이 민중적 지향성을 갖게된 19C, 20C에 미 술환제도는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 중심이 되었다. 이제 미술관은 미술작품의 최후의 안식처나 무덤이 결코 아니다. 사회적 관련성을 잃은 고답적인 연 구기관도 아니다. 그것은 민주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유지, 고양시키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진보적 변혁을 활동목표로 삼는 역동적인 기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