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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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릿글-김윤식의「문학과미술사이」 를 읽고 Ⅱ.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 Ⅲ. 우리나라미술관제도의문제들-「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Ⅳ.「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배경과 그 전사(前史) Ⅴ.「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조직과 소장품을 중심으로 | ||||||||||||||||||||||||||||||||||||||||||||||||||||||||||||||||||||||||||||||||||||||||||||||||||||||||||||||||||||||||||||||||||||||||||||||||||||||||||||||||||||||||||||||||||||||||||||||||||||||||||||||||||||||||||||||||||||||||||||||||||||||||||||||||||||||||||||||||||||||||||||||||||||||||||||||||||||||||||||||||||||||||||||||||||||||||||||||||||||||||||||||||||||||||||||||||||||||||||||||||||||||||||||||||||||||||||||||||||||||||||||||||||||||||||||||||||||||||||||||||||||||||||||||||||||||||||||||||||||||||||||||||||||||||||||||||||||||||||||||||||||||||||||||||||||||||||||||||||||||||||||||||||||||||||||||||||||||||||
| Ⅴ.「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조직과 소장품을 중심으로
미술관 조직의 형성
그 첫번째 예가 제18회 국전운영을 위한「미술관운영자문위인회」의 구성이다. 그 명단은 김은호, 이상범, 장우성, 도상봉, 박고석, 김영주, 이준, 박서보(이상화가), 김경숭, 김세중(이상 조각가), 이순석(공예가), 손재형(서예가), 배기영(건축가), 이동모(사진기) 등이다. 71년도에 첫작품구입을 위한 자문위원회 역시 중요한 정책결정사항인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조언을 위해 구성되었던 전문위원회 가운데 하나이다. 이후에도 과천 신축미술관 건립을 위한 「건축기획위원회」 「건립실무소위원회」 「전시기획위왼회」 등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들이 구성되어 미술관활동에 전문적인 조언을 해 왔다. 전문위원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도 부터이다. 상당기간에 걸쳐 계약에 의해 전문위원으로 미술관운영에 참여한 사람은 오광수, 김지현, 조국정, 유준상 현 학예연 구실장 등이다. 전문위원제도는 일면 큐레이터 제도의 시발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원이라는 신분의 불안정성이나 운영의 책임과 권한을 수반하지 않는 조언과 자문에만 국한된 자격이란 점에서 직무의 수행에 한계는 분명했다. 미술관의 스텝조직은 미술관의 활동과 기능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원칙이다. 미술관은 그 기능과 역할이 매우 전문적인 문화기관이다. 특히 오늘날의 미술관 활동은 예전과 달리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문화 되어간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일들은 관장을 비롯해 학예직원, 교육담당자, 행정관리요원, 건물관리자 등의 기술인, 경비원 등 세분화된 담당자들에 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술관의 조직에서 필히 고려해야 할 평범한 사실은 미술관의 모든 활동력이 작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작품을 선택하고 해석하고 그 가치를 발굴하는 작업이 일체의 미술관 활동의 토대이다. 따라서 그러한 업무에 가담할 수 있는 학예직 제도란 미술관 조직에 있어서 아킬레스건이나 다를 바 얼다. 미술관학의 권위자인 미어스(A Mier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성공을 기약하거나 미술관을 망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 가운데 하나다. 그의 인간 됨됨이야말로 미술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생명선이다. 다른 결점이 다소 있다손 치더라도 좋은 큐레이터가 있는 미술관은 결코 질 나쁜 미술관이 될 수 얼다. 좋지 않은 큐레이터 아래에서는 아무리 많은 장점을 지닌 미술관이라 하더라도 종은 미술관이 뭔 수 없다. 미술관은 모든 큐레이터의 바른 선택과 그에게 주어지는 지원에 의존한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자신의 이상과 이론들을 반영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이다. 미술관에서 학예직들이 하는 일은 작품수집과 보존수복, 전시, 연구조사, 교육, 발간, 편집, 설치 및 전시디자인, 작품의 등재와 수장업무 등이며, 모두가 미술관의 실질적인 존재이유가 되는 활동들이다. 또한 성격상 미술관학교의 운영, 미술정보 서어비스 도서관 운영, 조사기록, 사진, 발간활동 등도 설혹 분리 운영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학예직의 직접적인 지원아래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미술관업무를 학예직이 전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일이 능률상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늘날 미술관의 일반 행정업무를 행정가가 나누어 담당하는 것은 어느 미술관에서나 일반화되어 있고 필수적이기조차 하다. 힝정가는 소장품의 안전관리, 시 설관리와 유지, 인사관리, 재정 조달과 계약, 통신, 카페, 매점,옹급치료주사 등과 같은 관람객 서어비스를 담당하며 각종 자료와 기록이 전산화되었을 경우 컴퓨터의 하드웨어도 다루게 된다. 특히 요즈음 미술관 소장품의 안전관리를 위한 경비문제는 매우 중요시되어 일반행정과 독립시켜 별도의 책임자를 두어 운영하고 관장에 대한 직접 보고체계를 갖추는 경우도 많다. 또한 예상되는 법적 소송, 각종 교섭, 작품의 기중 혹은 유중, 작품의 복제, 각종 악정, 세금, 작품의 수입업무 등을 수행하기 위해 법률 자문역을 두는 것도 매우 긴요한 일이 되었다. 소장품의 형성 「국립현대미술관이 최초의 소장품을 받아들인 것은 개관한 지 2년 뒤인 91년 11월에 이르러서였다. 이 해에 소장하게 된 작품은 그림 72점, 조각품 29점 등 모두 101점인데, 그 중 그림 13점은 구입에 의해 나머지 작품들은 유족과 작가의 기중으로 소장하게 되었다. 당시의 구입예산은 5백70만원밖에 안되는 매우 작은 규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근대미 술분야의 작품수집에 관한한 전례가 없었던 일이어서 적지 않게 고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자문위원격으로 이 일에 관여했던 이경성 관장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미술관이 작품구입을 서두르기 시작한 것은 71년이 다 저물어 가는 11월 에서였다. 이미 작품 구입비로 책정된 800 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무엇을, 어떻게 사느냐 결정짓지 못하여 시간을 끌어온 것 같다. 그래서 11월에 규정에도 없는 관장개인의 자문위훤 자격으로 몇사람의 의론상대를 만들었다. 노수현, 이마동, 김인숭, 최순우, 이경성, 이구열, 유근준, 박득순 등이 다음과 같은 기준을 만들었다. 위의 기록으로 보아 미술관은 개관 당시부터 소장할 대상작품의 연대, 성격, 장르 등에 관한 어떠한 방침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일시적으로 모인 자문위원 몇사람에 의해 이후 미술관 자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문제인 작품수집의 기준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작품구입은 매우 각별하고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 이때, 마련된 기준은 보존작품 수집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1. 작품 1) 서화협회 출품작 및 수상작 2) 선전 출품작 및 수상작 3) 국전 출품작 및 수상작 4) 국제전 출품작 및 수상작 5) 재야전 출품작 및 수상작 2. 작가 1) 서화협회 발기인 및 회원 2) 예술원상 수상작가 및 회원 3) 예술원 선정작가 4) 선전출품작가 5) 국전 출품 및 수상작가 6) 미협회원 7) 재야 중진작가 8) 해외체류 중진작가 3. 기간 1900년서부터 1970년간에 제작한 작품 위의 보존작품 수집기준은 물론 규정화된 것이 아니라 당해년도의 작품수집에 한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준이 갖는 의미와 문제성은 당해년도에 한한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줄곧 관행화 되어 적용되어진다는 점에 있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기준은 다분히 형식적인 것이었다손 치더라도 190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으로 한정된 연대의 설정은 특히 적지 않은 문제성을 안고 있어 보인다. 그것은 우리 한국미술사의 획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한 나라의 국립미술관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등등의 학술적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매우 근본적인 문제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00년이라는 근대미술의 획기의 기준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더우기 미술관의 수 집대상작품이 실질적으로 일제식민지시대를 기점으로 그 이후의 것들로 채워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면, 한나라의 문화정책이 지녀야 할 역사적 전망에 있어서나 학문적 실재성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재론을 요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집대상작품의 획기 설정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의 국립중앙박물관과의 상호연관성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성격상 고고학박물관과 고미술박물관의 복합 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는데, 따라서 근대의 획기 문제는 한국미술사상 고미술과 근대 미술을 어떻게 나누고 그 대상자료에 따라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이 어떻게 역할을 분 담 해야 하는가 하는 사안과 직결되게 된다. 당시의 작품구입은 양적인 면에서 볼품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발전사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 된 것임에는 틀림 없다. 국전 등 단순 전시기능 위주의 미술관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작품의 컬렉션과 상설 전시기능의 확장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71년도의 컬렉션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박수근의 그림 4점 기증과 재미 교포화가 한기석 자신의 작품 83점의 기증이다. 한편 기증작품의 질적 수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후 미술관의 소장품은 매년 작은 수이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199O년 11월 현재 그 규모가 3,113점에 이른다. 연도별, 부문별 소장작품현황은 <표4>와 같다. 미술관의 작품소장은 예산에 의한 구입, 작가 유족 소장가들로부터의 기증, 기타 정 부기관이 소유한 작품의 관리전환 등의 방법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그 방법별 수집 작품수는 구입에 의한 것이 1,098점, 기중에 의한 것이 1,853점, 관리전환 167점이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술관의 소장품형성이 상당 부분 기증에 힘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5>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작품현황을 참조할 것) 71년 화가 박수근의 미망인 김복순 여사에 의해 시작된 미술관의 작품수증은 한동안 양적인 측면에서 별것 아니었지만 질적인 측면과 미술사적인 의미가 실린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77년 기증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미술관은 「기증작품 특별전」을 열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박수근 작품 4점을 비롯해 김환기의「여름달밤」등 3점(미망인 김항 안여사 기중) 윤효중의 조각작품, 「현명」(弦鳴, 프란체스카여사 기증), 이중섭의「부부」 (현대화랑 기중) 등 16명의 작가작품 24점이 전시되었다. 이 전람회에 고무되어 그 이 듬해인 78년에는 17점의 작품이 기증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술관의 작품기증이 일반의 관심을 끌게되어 크게 진작된 것은 미술관의 건물신축계획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최초의 전문직관장인 이경성 관장이 취임한 다음해인 82년에 이르러서이다. 미술관 건물신축안 자체가 미술인들의 강렬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한 것이었지만 계획안의 발표는 미술인들이나 미술애호가들에게 미술관의 소장품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김세중 관장 재임시인 84년, 85년에는 오지호, 최영림, 곽인식, 박길웅, 이동훈, 이림, 김기숭 등의 작가들과 유족들로부터 대랑의 작품을 기증받는 행운을 얻었고 원로 중 진작가들에게 작품 기중의사를 묻는 공문을 띄워 작가들로 부터 호쿵을 받기도 했다. <표4>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현황 1990년 11월 현재
작품구입이 본격화 된 것은 구입예산이 10억원에 이른 이전 개관하던 86년도부터의 일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불과 1억여원에 머물렀던 예산이 10배에 가깝게 불어난 것은 건물의 신축, 큐레이터제도의 도입과 함께 그나마 미술관을 미술관답게 이룩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86년도엔 122점의 작품을 구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작품의 상품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고가화현상이 뚜렸해진 80년대 후반에 이러한 구입예산은 매우 일천한 것이지만 외국작가 작품도 의도적으로 구입하여 미술문화의 국제교류에 대비하기 시작한 젓도 86년 이후부터이다. 바젤리츠, 임멘도르프 등의 신표현주의 작가들, 앤디 워홀, 크 리스토, 샘프란시스등 국제화단의 흐름을 한때 주도했던 작가 작품들이 상설전시장에서 눈에 띄게되고, 그 신화적 명망의 베일을 벗겨 우리의 두눈으로 똑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구입예산 덕분이다. (<표6>의 구입작품현황을 참조할 것) 그러나 개관 이후 소장품 구입예산은 다시 줄어 6억원 정도의 수준에서 몇년째 머무르고 있다. 그것은 재정규모가 몇10조원에 이르는 나라에서 당대미술문화의 영구보존을 통한 문화적 전숭 그 작품들의 전시를 통한 문화적 소통과 미적교양을 통한 일체감 형성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접적으로 반영 하는것 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단지 재정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삶을 꾸리는 지혜의 문제일 것이다. 사적소유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문화라고 해서 그것을 예외로 할 수는 얼다. 미술품이 하나의 이재(理財)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다하는 것은 우리의 체제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얼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향유나 삶의 소재가 아니라 단지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예술작품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술품이든 역사자료에 관한 것이든 지식은 따로 분리된 부분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방대한 소장품을 기증해 미국 국립미술관제도를 이룩한 스미손의 지혜나, 기금을 설립헌정하여 워싱턴국립미술관을 설립하게 한 멜런(Andrew W. Mellon)의 이야기 역시 자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미국 이라는 사회에서 살았던 한 개인의 도덕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르느와르는 '미술을 배우는 곳은 바로 미술관이다'라고 말했다. 얼마전 작고한 문학 비평가 김현은 「미술관 설립의 꿈」이라는 한 컬럼에서 '뛰어난 화가, 좋은 이론가가 나올려면 훌륭한 미술관이 많아야 한다. 뛰어난 미술가들의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술관들이 많아야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툰 장난 같은 미술평론과 그림이 난무하는 것을 체계적인 미술관이 없는 것에 그 원인을 돌린다. "문화는 총체적으로 말해 민중으로부터 솟아나며 민중에게 되돌려져야 한다. 어떤 문화의 산물이나 그 이익의 향유가 엘리트계급의 특권일 수는 없다. 문화적 민주주의는 문화적 산물의 제작이나 문화생활에 대한 의사결정 그리고 문화의 보급과 누림에 있어서 개인과 사회가 행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참여의 폭에 근거한다. 국립미술관의 존립근거는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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