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

이인범


  I. 머릿글-김윤식의「문학과미술사이」 를 읽고
Ⅱ.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
Ⅲ. 우리나라미술관제도의문제들-「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Ⅳ.「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배경과 그 전사(前史)
Ⅴ.「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조직과 소장품을 중심으로

Ⅳ.「국립현대미술관」의 형성배경과 그 전사(前史)

89년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은 우리 역사상, 특히 미술제도 발전사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봉건왕조인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설치된 것이 「도화서」 었다고 한다면, 민주공화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제도 속에 개설된 것이 「국립현대 미술관」이다. 하나가 봉건왕권의 강화를 위한 통치이념의 문화적 실현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그 나름대로 변화된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것이다.

발생사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미술관을 서구의 근대적 미술관제도의 형성에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서구의 경우 18C, 19C 계몽주의적 합리성, 시민혁명을 통한 정치적 민주제도의 실현, 근대적 민족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근대적 미술관이 이룩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4.19 시민혁명에서 비롯된 민족적 정체성의 확인작업과 5.16이후 수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계획 및 근대화운동의 추진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 되었다.

서구화로 성격 지워진 우리의 근대화 과정은 극심하게 전통의 상실과 민족적 정체성의 위기를 낳았다. 4.19의 좌절로 인한 민족적 자각에 대한 요청과 제3공화국에 들어 5.16 주체들의 정권적 정통성 강화욕구는 60년대의 현실이었다. 당시의 한국학 붐과 민족주의적 열기, 국민통합의 의도 아래 제정된 국민교육헌장 선포 군신 이순신 장군의 성웅화작업 등등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내세우는 문화정책은 60년대 정책의 지표었다.

이런 배경에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더불어 정부가 내세운 것 중의 하나가 민족문화센타의 구상이다. 65년 11월 경복궁 안에서 기공식을 가진 종합박물관안(案)이 이 계획이 구체화된 최초의 실례이다. 애초엔 이 종합박물관을 설립함으로써 근대화에 따른 문화적 요인에서 비롯된 현대미술관이나 민속박물관 같은 박물관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해소시키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박물관 건축안인 「종합박물관 건축안」은 벽두에서부터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당시의 논란의 핵심은 문화재관리국의 설계안공모요강의 내용과 추진절차상의 문제, 경복궁 안이라는 위치상의 문제, 전통계승이란 차원에서 공모 설계된 건축물의 외관을 둘러싼 시비, 그리고 건축물의 외모와 내부의 기능 사이의 갈등문제 등등이었다.

그러나 당시 추진주체에게 있어서나 비판적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정작 중요한 문제인 박물관의 본질적 기능이나 역할을 어떻게 한정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과 논란은 그다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미 해방직후 「인천시립박물관」을 설립하고 선구적으로 박물관운영에 앞섰던 바 있는 이경성 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당시에 박물관문화 이해에 있어서 매우 독보적 이었는데, 그는「종합박물관 건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원래 박물관이라는 것은 그의 정의에 따른다면 인문 및 자연에 관한 자료의 전부문에 걸쳐 그것을 수릴 정리 보관 조사 연구하여 그 성과를 일반에게 교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교육기관이다‥‥‥우리의 종합박물관의 경우 종합이라는 본뜻은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전부에 걸치고 유형문화재만 하더라도 고고학적 유물에서 고미술품 민속자료 그리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한 것인지‥‥‥ 이 널은 분야에 걸친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또는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한편, 언론인 이흥우도 이 건축안의 기능설정에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로 종합박물관의 개념이 문제가 된다. 선진외국의 경우는 종합의 형태를 띠던 박물관 시스템도 차차 분화해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한국에는 지금 국립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이 있어 고고유물과 자루 고미술품 등을 보관 진열하고 있다. 그밖에 특히 민속박물관(초라한대로 66년 가을개관)과 현대미술관의 펼요 성이 다각적으로 논의되어 왔었다‥‥‥

이와 같은 여론에 따라 건축안은 몇가지 변경조치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종합박물 관안은 성공적인 것이 되지 못했다. 합리주의와 복고적 취향, 창의성과 전통고수 사이의 갈등은 쉽게 극복되지 뭇했다. 그러나 이러한 종합박물관 안이 안고 있는 몇 가지 한계는 「국립현대미술관」설립을 구체적으로 촉진하는 제기가 되었다. 문교부에서 관장하던 박물관 업무가 65년에 창설된 문화공보부로 이관되고, 그 이듬해에 정원 8명리 「국립 현대미술관」직제가 (표1)과 같이 공포되었다.

<표1>국립현대미술관직제 (대통령령 제4,030호, '69.8.23 일자)

제1조 (설치) 현대미술작품의 구입 ·보존·전시 및 국제교류에 관한 사항을 관 장하게 하기 위하여 문화공보부장관 소속하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둔다.

제2조 (관장)
①국립현대미술관에 관장 1인을 두되, 관장은 행정이사관 또는 행 정부이사관으로 보관한다.

②관장은 문화공보부장관의 명을 받아 관무를 통리하며,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제3조 (사무장) 관장을 보좌하게 하기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에 사무장 1인을 두되, 사무장은 행정서기관으로 보한다.

제4조 (공무원의 정원) 국립현대미술관에 두는 공무원의 정원은 별표와 같다.

제5조 (업무분장) 국립현대미술관의 업무를 분담하게 하기 위하여 사무장 밑에 서무담당과 운영담당을 두되, 각 담당은 행정주사로 토한다.

제6조 (서무담당) 서무담당은 다음 사항을 분장한다.
1. 보안·관인관수 문서 ·인사·예산 ·회계 및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
2. 국립현대미술관 대관에 관한 사항.
3. 미술작품의 구입 ·보관 및 관리에 관한 사항.
4. 다른 담당의 소관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항.

제7조 (운영담당) 운영담당은 다음 사항을 분장한다.
1. 미술작품의 전시에 관한 사항
2. 미술작품의 국제교류에 관한 사항.
3. 기타 현대미술의 연구·발전에 관한 사항.

부 칙
이 영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별 표]
공 무 원 정 원 표
총 계 --------------------------------(8)
2급 내지 5급 계
   행정이사관 또는 행정부이사관  ------ (1)
   행정서기관 ------------------------ (1)
   행정주사

기능직계 ---------------------------- (2)
   4등급조무원------------------------ (1)
   5등급조무수------------------------ (1)

고 용 원 ------------------------------(2)

그러나 당신의 미슬관개관은 이름뿐인 것이었다. 건물도 미술관자체의 건물이 아니 었을 뿐만 아니라, 소장품 한점도 없는 상태였고, 미술전문 문화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비전문직원 8명이 미술관운영관리자로 구성되었을 뿐이었다.

'현대미술작품의 구입 보존. 전시 및 국제교류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최초의「국립현대미슬관」 이 부여된 가장 큰 기능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의 운영과 전시업무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인 49년 가을에 문교부 고시 제1호(49. 9. 22일자)로 공포型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규정」에 따라 국전은 67년의 제16회 국전까지 문교부에 의해 개 최되어 왔다.

이러한 국전업무가 문공부의 신설로 문교부에서 문공부로 이관되어 미술 관이 개관되기 전해인 68년에 이미 제17회 문공부주최로 개최된 바 있었다.

미술관은 개관도 되기 전에 국전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게 되었다. 까닭은 문공부가 69년 제18회 국전을 운영하기 위해 심사위원을 새로 만들어지는 미술관의 운영자문위 원회의 천거로 구성하고자 했던 국전개혁안이, 기득권을 지닌 예술원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는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 규정을 심 의통과 시킴으로써 「국립현대미술관」은 명실공히 국전의 운영주체로서 또한 전람회 개 최장소로서 제18회 국전과 함께 한때 총독부 미술관으로 지어져 선전이 개최되었고, 국전이 개최되던 장소인 경복궁 안의 한 건물에서 69년 10월 20일 문을 열었다.

처음 개최될 때 부터 말썽과 잡음을 빛어내곤 했던 국전의 운영을 위해 정부가 「국 립현대미술관」을 설립 한 것은 아니었다해도 미술관의 기능 중 현실적으로 가장 우선하는 것이 국전의 운영 ·전시였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러한 사실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련의 발전방향과 그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러한 개관 당시의 상황은 정부당국이나 국민에게 미술관이란 한낱 일개 전시회나 운영 개최하는 기구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이후에도 미술관에 대한 인식과 정책 수립을 늘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단서로 작용했다. 특히 미술관을 박물관 일반과 구별된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어리 석음은 부분적으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관의 형성배경을 그 당시의 정황을 중심으로 하여 단지 현상적으로만 파악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미술관의 개관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사실은 그나마 당시까지 이룩되어 온 미술관문화나 역사의 토대 위에 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미술관의 역사는 따져 올라가면 1908년까지 거슬러진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창경궁 속에 도자기, 불교공예품, 회화 등을 주로 수집하여 「이왕가박물관」 (李王家博物館)을 발족시켰는데,1909년엔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의 효시가 되었다.

1946년엔 덕수궁내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이왕가미술관」 을 발족시켰다. 이 미술관은 건물형태, 소장품 등에 있어서 오늘날 미술전문 박물관으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1946년엔「덕수궁미술관」으로 개칭 개관되어 1969년「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되던 바로 그해에 국립중앙박물관에 흠수되어 합쳐지고 말았다.

결국「덕수궁미술관」의 패쇄와「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은 아무런 역사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 별개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과를 살펴보면 현재에 와서도 줄곧 논 란거리인 '미술관'과 '박물관'의 차위는 결국 그다지 중요한 문제거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반중한 셈이다.

결과적으로「덕수궁미술관」과「국립박물관」의 결합, 그리고 이와 별개로 진행된「국립현대미술관」의 신설은 인식상의 불명료함 에서였든, 그밖의 다른 이유에서 었든 「국립현대미술관」을 실제적으로 박물관제도 일반으로부터 별개로 취급하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박물관문화 자체의 분화와 전문화 과정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얼어 보인다. 현재 문화부 직제상에서도 「국림현대미술관」은 예술진흥국 산하의 예술1콰가 「국릴중앙박물관」 등 박물관은 생활 문화국 산하의 박물관과가 나누어 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