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Ⅲ. 우리나라미술관제도의문제들-「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유일무이한 국립미술관인「국립현대미술관」은 그래서 고유명사이자 보통명
사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성과 우리나라의 국립미술관이라는 일반성은 한 몸체
이다. 우리의 국립미술관의 역사는 서구 각국의 국립미슬관 발전사에 비할 일은 못된다.
하지만 86년 8월 현재의 위치인 과천에 새 건물과 체제를 갖추어 옮긴「국립현대미술관」의
출발이 사실상 8년 가을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 역사는 어느덧 20여년에 이른다.
우리의 각종 미술제도 안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결코 작은 몫이 아니다.
더우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국립미술관인「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은 미술계와
현대사회에서 미술관제도가 지닌 기능을 고려한다면 매우 근본적인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현실적 위력을 인식하는 사람들일 수록 현재의 미술관을 이상적인 제도적
장치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무룻 제도들이 그렇듯이, 미술관제도 역시
변중법적 발전과정을 거칠 것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현단계의 상황을 고착된 것으로
받아들여 지나치게 정태적으로 파악하는 것 역시 옳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할지 몰라도 실천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나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문화계 안에서 미술관제도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이란
어떤것인지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이론적 접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실체성을 갖고 있는지는 더더욱 의심스럽다.
이러한 우리 미술관문화의
미숙함은 전적으로 한국근대사가 겪은 파행성과 굴절된 근대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미술관제도1 특히 우리의 국립미술관제도에 대한 이론적 인식과 당면과
제로서의 실천적 운동에 있어서 우리가 봉착하게 되는 어려움은 단지 과거의 불행에서
비룻되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는 미술관문화에 대한 근거없는 부정적 인식에
접하게 된다.
때로는, 미숙하고 박약 하기만한 우리의 미술관 문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근대성에 입각한 미술관의 기본적 이념이나 실제를 뛰어넘거나 무시하는 탈 역사적 사고방식이나 소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무정견과 만날 매도 있다.
장구한 역사를 지닌 수많은 미술관들과 그 속의 소장품들 자체의 무게가 문화의 중량을
대변해 주고 그것들이 자신들의 삶의 뿌리이자 근원인 사회에 살면서, 폴 발레리가
미술관을 '미술품의 공동묘지'라고 쏘아대고, 마리네티가 미래주의(Futurism)의 강령
속에서 과거의 영화 속에 안주하고 있는 미술관들을 불태우자고 외친 것은 얼핏 역사적
입장에서 매우 벗어나 있는 둔하지만, 일면 역사적인 맥락이 확연한 자기비판이다.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에 대해 반성을 시도하고 한편으로는 문화적 창의성을 짓누르는 듯한
역사의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때, 그 대상으로서 미술관이 떠오르는 것은 미술관이
그 문명의 권위와 무게의 중심에 놓였을 때의 이야기다. 그들의 말을 끌어대어 우리의
미술관 문화를 공박하고 꼬집는 것은 한낱 건강부회 (强附츳)에 지나진 않는다.
서구로부터 근대화논리를 마구잡이로 수용하는 것이나 우리의 상황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없이 서구의 비판논리를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미술관문화에 대한 비역사적이고 탈 역사적 접근에서 비롯되는 환상과 오해도 적지 않은 문제이다. 역사상 미술관 제도는 그것이 속한 사회와 국가의 진화과정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그 시대 사회의 지배적인 세계관 예술관을 반영하고, 경제적 기반과
예술품의 생산·소비방식 등을 드러낸다.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입각한 사물관,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 민족적 국민국가의 헝성 과정에서 근대적 미술관제도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확연해 진다. 오늘날의 세계관과 사물관은 많은 점에서
또 다시 급변했다. 때로는 우리는 사물, 자연, 우주 대신에 기호적 사실이나 전자장치의
메카니즘을 환경으로 삼아 살 매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날의 사회가 지닌 후기 산업사회의 양상에 대한 예측이나 기초적 전제 아래 미술관 문화의 전망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외적 발전과 팽창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미술를 제도의 전형(典型)도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입각한 박물관법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전근대적 상황에서 오프뮤지엄(off museum) 프로그램같은 실험에 매달릴 수만 없는
것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이다.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은 그 외에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술품의 상품화
문제는 당연한 일이지만, 사적 소유욕만을 부채질하고, 부동산 투기를 방불케 하는 미술품
유통거래의 지나친 투기현상은 우리 문화공동체의 삶의 소통을 전제로 한 미술관문화
발전에 방해되는 큰 걸림돌이다.
그것이 야기 시키는 단순한 계층간의 위화감의 차원을
넘어 그것은 살의 공동체 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계급주의에
입각한 극단적 좌경 이데올로기 역시 계급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민족의 동질성을
왜소화시키곤 한다.
그밖에도 미술관은 실질적으로 텔레비젼, 수 많은 칼라화보가 실린
잡지와 컴퓨터 등 우리의 정보관리와 소통체계가 급변하고 다양해진 사회와 현대적인
문제상황 속에서 문명사적 기로에 놓여 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설치미술,
해프닝, 비디오 아트 현장성에 입각한 민중미술 등 요즈음의 제 미술 경향은 인간의
사물에 대한 기존의 관계를 재고하게 하는 것일 뿐더러 미술관 문화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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