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Ⅱ. 테크놀로지와 미술의 관계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를 논하는데 있어 우선 先行되어야 할 것은 두가지 측
면을 구별지어 생각하는 일이다. 하나는 진보한 테크놀로지 자체를 미술에 직접 활
용하는 키네틱 아트나 비디오 또는 컴퓨터 아트등을 거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이나 인쇄술 또는 미디어의 출현과 발달등의 테크놀로지의 보다 보편적이고 일
반적인 영향으로 미술의 성격이나 개념 자체가 변하는 것을 논하는 일이다.
다시 말
하면 前者는 테크놀로지 아트라는 명칭을 따로 부칠 수 있는 것이고, 後者는 미술
전반에 걸친 변화와 영향을 말한다. 물론 이 두가지는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이지만
이중에서 보다 본질적으로 양자의 관계를 논하게 되는 것은 後者를 퉁해서이다.
우선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상관관계에서 가장 흔히 얘기되는 것이 19세기 초중반
에 발명된 사진의 영향이다 사진과 미술의 관계는 아다시피 복합적이고 상호보완
적이다 미술에 견줄 수 없는 막강한 재현능력을 지닌 사진의 등장으로 초창기에는
미술의 위상이 크게 위협받는 것으로 판단하는 시각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미술이
끝장이 나지는 않았지만 사진은 그것을 크게 변화시킨 것 또한 사실로, 미술가들은
사진을 작품을 위한 보조자료로 활용하거나 그 구도나 효과를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근래에는 사진사실주의(Photorealism)라고 불리우는 분야까지 대두되었고
또 최근에는 소위 미디어 아트에서 사진의 사용이 필수적이 되는 등 그 여파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가장 근본적인 성
과는 미술이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는 실로 혁명적인 변화이며 이 변화의 '후
유중'은 우리가 그 후의 미술사의 전개를 웅변적인 증거물로 가지고 있다.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이와 비교될 수 있는 보다 역사적인 변혁의 예는 15세기에 발화한
목판 인쇄술의 발달로 비록 색채는 감상할 수 없었지만 그 원작을 충실히 모사한 판
화가 오늘날의 사진이나 슬라이드의 역할을 하여 미술의 전파와 국제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상기할 수 있다.
목판화와 사진이 미술의 개념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큰 사건이라면 사진
에 의한 미술 작품의 복제 가능성과 결과적인 대량 복제가 끼친 영향도 테크놀로지
의 역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널
리 회자되는 "기계 복제화 시대의 미술(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1936)은 사진을 통한 미술품의 대량 복제로 전통적으로 엘리트 선
민들만이 향유하던 미술작품의 광휘(aura)와 유일무이성이 사라지고 미술에 대한 대
중적인 접근이 가능해진 변화를 논한 글로 그 사회, 문화적인 의의는 매스 미디어의
시대인 지금에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고 있다.
현대 미술사에서 테크놀로지가 미술
에 끼친 영향중에 아마도 이것처럼 근본적인 예는 드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
의 많은 작가들이 미술품의 오리지날과 복제화의 관계, 그리고 대중 문화의 영역으
로 들어선 미술의 위상에 대한 것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사진과 인쇄술은 아주 분명한 기술혁명의 미술에 대한 영향의 예이고 그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예는 더 있다 그중의 하나가 테크놀로지와는 직접
적인 연관이 가장 없어보이는 그림물감(顔料)의 발전과 그 영향인데, 예를 들어서
인상파의 스튜디오를 벗어난 야외 작업은 19세기 중반경에 등장한 튜브에서 짜서
쓸 수 있는 물감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근래의
각종 화학 안료의 등장이 회화의 방법과 양식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것
은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는 일이며, 이런 사정은 엄청난 방법상의 그리고 재료
상의 확장을 가져온 현대조각의 분야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어진다.
물론 이러
한 관점은 미술의 변화를 유물론적인 인과관계로 몰고 갈 우려가 있고 테크놀로지
만이 양식적인 변화의 유일한 원인은 결코 아니지만 매체가 작업의 성격을 규정짓
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 변화의 촉매는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과학이나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대한 일반 사람들이나 미술가들의 반응은 대개 전
형적인 것으로 양분되기 마련이다. 기계문명이 가져다준 인간성의 상실과 획일화를
이유로 그를 범죄시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것이 우리 인류를 勞役의 질
곡에서 해방시키리라는 유토피아적인 시각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전자는 미술과
과학을 상호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로 보고 과학을 경원시하는 반면 후자는 그것
을 과학이나 기술과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 원래 테크놀로지는
학문으로서의 과학보다 훨씬 역사가 긴 반면 현대문명의 가속화된 발전과 더불어
기술은 과학기술을 뜻하게 되었고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한 것이
되었다.
미술과 과학은 엄연히 다른 것이지만 과학이 학문이라기 보다는 철학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는 (물론 지금도 과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 보다
철학이나 형이상학과 훨씬 가깝지만) 그것은 미술이나 예술일반과 대립적인 관계가
될 이유가 없었다.
학문으로서의 과학도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미술과 굳이 상반되
지는 않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미술의 유사점에 주목해왔고, 미술가나 과
학자 모두 직관이나 상상력, 육감 등에 의거해서 작업한다는 것은 널리 인정받은 사
실이다.
한 저명한 과학자의 고백에 따르면 과학자는 어떤 중요한 발견에 도달하면
그 과정은 숨긴 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논증만 제시할 뿐이기 때문에 과학과 미술
의 차이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라하고, 과학적 명제의 '진실'은 미술작품의 '질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술과 과학의 관계가 이와
같이 은유적이고 示唆적인 것이라면 응용과학인 테크놀로지와 미술의 관계는 보다
가시적이고 직접적일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