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Ⅳ. 닫는 말
이상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와 그 결합의 예를 그에 대한 관심이 가장 드높았
던 1960년대 후반의 사건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이러한 논의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이 둘의 관계를 점검해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론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테
크놀로지가 앞으로의 미술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것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대로 우선 60년대 후반의 대부분의 미술과 테크놀로지 전시회
가 주로 실패로 끝나거나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
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장르로 각광을 받았던 비디오 아트도 초기의 몇년을 제외
하고는 한번도 미술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고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주목
할 사실이다. 여기서 당시의 대개의 전시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했고 이 주제에 대해
큰 희망과 관심을 가졌던 번햄의 생각을 인용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는 우선 20세기의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미술에서 성공적인 것들은 단순한 기계
적 고안만 사용한 예를 들어 칼더(Calder)의 모빌이나 또는 댄 플레이빈(Dan
Flavin)의 형광등을 사용한 작품 정도이고, 테크놀로지가 주가 되는 작품 중에는 다
다이스트나 팅글리의 파괴적인 (뉴욕에 대한 경의) 등 기계의 부조리함이나 오류에
초첨을 맞춘 것만이 인정을 받은 사실을 주목했다.
그는 전기나 전자를 사용한 미술
들이 한결같이 실패하는 (다른 '전통적인' 작품들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
엇인지를 자문하고 미술과 세련된 테크놀로지 사이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깊
은 골이 있는 것이나 아닌지, 또는 그 골이 뿌리깊은 기독교적인 신학의 전통에 근
거한 것인지나 아닌지 추측하고, 결국 미술은 그 자체의 기호학적인 일관성
(semiotic consistency)때문에 아무리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더라도 다른 분야에 흡수
되지는 않는 것이고 과학적인 연구와 기술적인 발명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의 생각은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열기가 수그러든 1970년대의 후반의 것인데 물
론 테크놀로지 미술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고 앞으로 그의 비관적인 견해가 완전
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테크놀로지가 유형 무형으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미술
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인 당위론과는 별개로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도를
대개의 미술이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테크놀로지적인 시대상
은 단연코 소프트웨어와 컴퓨터의 시대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미술들이 미술계에
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또한 얼마나 많은 미술가들이 아직도
전통에 얽매어 붓과 물과 노동력을 기본으로 작업하고 있는 지를 고려할 때, 우리는
아직도 고색 창연한 하드웨어의 미술 시대에 속해 있으며 이런 사정은 앞으로도 상
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
글머리에 인용한 모홀리-나기가 현대의 풍경을 미술의 변화로 증언한 것이라면,
그리고 백남준이 비디오와 컴퓨터가 유일한 미술의 매체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표
방한 것이라면 그것보다는 우리는 여전히 미술에서 사과나 새우를 더 많이 만나고
비디오보다는 유화를 더 많이 보고 있다고 대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보수적인 미
술의 개념이 과도기적인 것인지 또는 번햄이 지적한 대로 미술은 세련된 테크놀로
지와는 본질적으로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술가나 일반 대중이 미술을 어떻게 규정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
고, 이는 또 다시 미술과 과학 또는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예측을 해왔고, 많은 예견들이 빗나가왔다.
전통적인 의미의 미
술이 없어지리라던 예측은 책이나 영화가 없어지리라던 예상이 어긋난 것과 꼭 같
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난지 오래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테크놀로지는 끊
임없이 미술에서 이용될 것이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미술이 무엇인
가라는 久遠한 질문은 그것의 테크놀로지와의 관계에서 해답을 구할 것이라는 사실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