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 록 - "클라크캔트, 슈퍼맨이 되다." 미술교육에 관한 제언 - 탈스트리터
Y군을 몇년동안 알게된 것은 그의 모교인 H대학교에서이다. Y군의 학부수업은
대단히 열성적인 것이었다. 석고상들을 대상으로, 손과 눈에 의한 묘사위주의 목탄
뎃생의 초기훈련과 마찬가지로 해부 및 실물연구의 오랜 준비후, 4년의 마지막 학
기쫌에는 다른 동급생들과 똑같이 덜 지시적이며 좀더 관대해진 교육을 받는다.
이
어서 2년의 대학원 연구과정이 따르게 된다. 즉 새로운 개성적인 시각으로써 전통
적인 재료를 새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탐구하도록, 교수들은 학생들을 고무시키면서
학생들이 홀로 그 자신들의 뮤즈를 발견하도록 비교적 자유스러우며 개방적인 태도
로 접근한다.
반면에 진정 신뢰할 수 있는 지도교수가 그 연구를 떠 맡기도 하며, 여러 대가들
의 방식내에서 선택된 학생을 그 다음의 계승자가 되도록 지도하며 후원한다. 즉 스
승이자 예술가인 자신의 작업방식이 실질적으로 지속되도륵, 학생과의 밀접한 유대
관계를 발전시킨다.
이전에 이러한 규범은 동서양에서 아주 대단한 동요를 일으켰었으며 이것은 좀
더 전통적이며 명예로운 도제의 행로를 따른 것이다. 오랜동안 작업장에서 부재해
왔었던 그 제도가 현재는 아카데미 미술써클들 안에서 더 흔히 발견되며, 광범위하
게 퍼져 있다고 생각된다.
공예, 도자기, 보석세공등의 많은 분야등에서도 볼 수 있
는데, 공예분야는 아직도 전통이 존경스런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식들
을 구하고자하는 현대적인 성격과 의미로서인 자유스런 과정위에서 소멸되어 가기
도 한다.
우리가 심사숙고하게 되는 미술교육프로그램은 대체로 한국내의 대학에서 광범위
하게 수용되어 안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어느정도 이와
흡사하다 우리는 &quo;미술교육"이 "미술"로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
다. 비록 대학과 대학원의 미술프로그램들 안에서 늘 한쌍으로 등장할지라도, 그것
들은 완전히 다른 두가지 실재이다.
교수는 가르치는 순간에는 교육자이지 예술가
는 아니며, 학생들은 관례적인 배경속에서 배울 때에는 학생이지 예술가는 아닌 것
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미술교육이 미술작품내로 쉽사리 변형되지는 않는다. 이것
은 성문화된 미술수업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로서의 작품과는 매우 구별이 되며 이
점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이다.
동서양의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예술가가 되기 위한 미술교육을 떨쳐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탁월한 미술교육자에 대한 나의 시각은 끊임없이 이 문제와 씨름
하는 것이다.
즉 교육의 조언을 받아 채워진 몫으로써 비어있는 그릇이 예술가로 변
모되어질 날인 그 시점을 위해서, 매일매일 아직 형성되지 않은 그 자리에 비개성적
인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메어놓기 위해서, 교육의 영향을 가감시키려 시도하며, 끊
임없이 이 문제와 씨름하리라는 것이다.
새로운 발명의 스릴있는 모험의 감각을 움직이며, 커다란 동체의 제트기로 미술세
계로의 여행을 하고자 말(馬)이나 자동차를 버리는 것이다. 대다수의 동년배들같이
Y군은 스승대 제자라는 도제제도의 전통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구나 증가일로에 있
는 이 세대의 예술적 잔화들은 옛날방식들을 내팽개치고자 하는 미술로 부추겨진다.
더 넓은 세계의 시민들이 되길 바라는 모험적인 타입들의 많은 이들이, 아직도
고착된 교육의 부분과 고수해야만 되는 부분들을 지나치게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은
개인들로서 자신들에게 불가항력적인 집단적 민족성안에서 특별한 것을 드러내고자
할 것이다.
지난 6년내지 10년동안 Y군의 삶이 되어왔었던 아카데믹한 교습법과, 한 젊은
작가가 자아표출을 열망하는 정신의 합류점을 우리는 쉽게 추적할 수 있다. 이점은
미술작품 자체내에서 분명하고도 저절로 입증이 된다. 시각언어를 말로써 옮겨진
그 생각을 따르게 하는데는 독자의 인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그러나 교육과 예술의 결론이란 문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당
혹시키는 문제이다.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성공적인 것이라면 그 학생은 언제나
자유로워야 할것이다. 수업과 일치할수 있다면, 또한 자아발견을 위한 항해가 성공
적이라면, 관람자들은 예술가들을 따라서 자각하게 될 것이며 예술과 의사소통하게
될것이다. 즉 새롭고 현대적인 미술내에서 처음에는 어려운듯이 보이던 것을 궁극
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게 된다.
교육의 진행과정중에 우리는 개별성과 자아표현 가능성이 언제 개발될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이기도 한 교육자들에 의한 정직한 시도를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순
간에, 극복해야 될 상당량의 과제가 있는듯이 보인다. 자연스러운 한 예술가를 순수
하고 현명한 그의 목적지에다 내려놓기 위해서 종국에 가서는 연구의 기간들을 여
행의 먼지같이 털어내야 한다.
학교에서 Y군은 평면과 삼차원 공간의 양쪽에서의 연구훈련을 잘 이수했다. 그의
드로잉과 판화제작기술은 놀라울 만큼 수준이 높다. 그는 학부시절의 아카데믹한
조소수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이수했다. 실물로부터의 아마튜어적인 소조의 모델링
작업과 연구후반에는 철근용접으로 직접 작업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사실주의적으
로 묘사되는 형상요소들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그 형상들은 추상내지는 비
대상적 형식들의 문맥내에서 병렬되어져 있다.
이렇게, 재료의 다양성안에서 일종
의 꼴라쥬나 앗쌍블라쥬의 형식개념들은, Y군을 포함하는 이세대의 한국미술학도들
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특색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엔 주요 예외들이 있
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제작된 통상적인 조각들은 문학적인 서술의 주제와 아
울러, 상당량의 실험적 작품들이 시적인 내용과 정치적인 태도를 매우 무겁게 나르
는 복잡성으로 보통 묘사될 수 있다.
즉 메타포로서의 공공연한 호소, 또는 아주 흔
하게는 억제나 감금, 고통의 이미지들이 표현된다. 쇠사슬, 칼, 빗장이 걸려 잠긴
방등의 표현들은 의미그대로, 정치적인 각성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여러가지 사례
들로써 상징화되는 젊음의 성급함이 마침내는 선과 힘의 기장들로써 자유를 추구한
다.
이와 유사한 이미지들이 캠퍼스의 미술실기내에서 좀더 엄격한 형상적인 작업
태도에 의해서 다소간 예비적으로 확인되거나 분명히 암시되어져 발견된다. 그러나
한국의 미술관이나 화랑들안에 진열되어 있는 기성작가들의 작품들내에서는 다소
완화되어 보여진다.
Y군이 인사동의 화랑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에서 사실주의적인 의미 그대로
메타포들을 볼 수가 있는데, 아마 결국은 세부사항들 모두로써의 서술로 얘기되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러가지의 메타포들이 용해된 화랑의 환경부
분들은, 외관상으로서는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기에 주석으로서 보다는 혼란으로서
분해되는 듯이 보인다.
서구나 여기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에 의한, 종종 믿을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인 경
험들이 있다. 즉 개념미술이나 퍼포먼스같은 다소 비형식적 미술의 경우, 조각과 연
극사이의 경계는 아주 희미해진다.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주들내에서 전통
적 형식에 반(反)하는 척도로서, 그것이 알맞게 꿰맞추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더 새로운 예술작품이라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가 회화나 드로잉, 조각,
판화등과 같은 여러 범주들 안에서 예술을 훼방놓기 위해서 사용하는 어휘들은 매
우 강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적 탐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언어는 완
전한 시각어휘가 있는 시각 세계 안에서의 경이이다.
다다와 미래파등등 그외 유럽
의 운동들과 연관된 근대미술의, 전개안에서 현재 거의 100년이나 된, 그리고 하나
의 존경할만한 역사를 성취해온 퍼포먼스 미술은 연극이 아닌 시각예술가들에 의한
것임에도, 여전히 적대행위와 철저한 거부를 불러일으킨다. 비록 두눈에 비친 상황
이 유쾌하진 않을지라도 이것은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그 이해가능성의 견지에서
인간적인 열망의 혼란으로부터 위안을 필사적으로 구하고자 하는 사회의 한 단편이
있다.
그들의 견해안에서 예술가들은 일반적으로 나태하고 위험한 규준들로써 인식
되는데 그렇다고 그들은 공동사회의 가치들과 안전을 거역하는 강탈자들이나 미쳐
날뛰는 그렇게 순진하게 더듬거리는 어린아이들은 아닌것이다. 심지어는 가정할 수
있는 예술의 천박함을 견뎌내기 위한 어떤 것에게서조차도, 언제나 의문시되는 현
시간들속에서 예술이 항상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우리의 시간들이라 느끼는데 악이
아닌 선에 의한 관대하고 치유적인 성격으로 정화된 과거로써만이 매일 매일 삶의
여정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이다.
비슷하게, 예술도 우리가 되풀이하는 커다란 안락함과, 예측불가와 우연의 위험
들을 제거하려는 생존본능에서 기인하는 예언성을 반영시켜 주길 기대한다. 궁극적
으로는 여러 쾌감들의 만족 내지는 명상적인 기쁨이 미 안에서 즉 위대한 예술의 한
특색으로 우리가 발견코자 심사숙고 하거나 기대하는 것인, 지극히 일류전적인 품
질증명으로서 모두에게 확실히 나타나는 것이다.
한가지의 관례적인 미의 감상에 따라 한국은 그자체의 고유한 각색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서구에서도 볼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는데, 성인들의 순교에 관한 고
전적 회화와 조각들같이 한국안에서는 안락함으로 인식되는 자연의 부분은 오랜 역
사속에서의 고난들을 극복하기 위한 인내의 긍지와 함께, 종종 불안과 번민의 고행
자적인 미로 전락하는듯이 보인다.
우리의 모든 젊은 Y군과 Y양들을 위해서 원형으로 선택된 Y군으로 돌아가서 보
면, 그는 동과 서로부터의 영향속에서 동화되어 왔다. 한국의 전형적인 미술교육과
한국에서 빈번히 개최되는 국제미술 전시들 또는 미술언론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되는 현대미술이 노출된다.
이점은 3차원의 조각보다는 2차원의 회화에서 더
두드러진다. 마침내 젊은 Y군은 몹시 위험한 속도로 여행하며 부상한다. 한국의 역
사에서 이 시기동안에 한가지 민족주의적인 특색일수도 있는 굽이지고 여러층이 진
도로들 아래로, 셀수없이 많은 샛길들과 분산들 그리고 입체교차로들을 짓고 부수
는 성격과 만나면서 그는 시각예술언어를 경유한 어떤 질서나 감각, 의미와 방향,
안도와 주의경고들에서 빗나가는 무한히 복잡한 인생행로를 계속하게 된다.
그 또
는 그녀의 시각과 헌신의 성격을 고집하면서 젊은 Y군과 Y양이 학생에서 성숙한
작가로 어떻게 발전할수 있을까?
미래가 이런 개별적인 예술가들을 어떻게 수용하는가 하는것은 세계미술 속에서
의 발전된 한국의 역할에 관한 집합적인 사고와도 상당한 것이다. 그래서 Y군은 그
의 젊은 시절을 학생으로 있어왔다. 동양에서,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이것은 삶연구
의 무수한 시간들을 의미한다.
내가 앞서 말했던 손과 눈을 훈련시키면서‥‥. 일반적
으로 미술교육자들은, 만일 손과 눈이 형식을 연구하고 표현키 위해서 단련된다면,
내용과 창작이 그자체의 코드를 충분히 따를수 있을거라고 추측한다.
그령다면 좋
다. 만일 우리가 인체의 매끄럽고 윤기있는 피부와 주름들, 인체의 자태를 주의깊게
관찰한다면, 그 모든것 이후의 삶은 인간적 삶의 내응과 삶의 쾌락과 고통의 조망들
의 충실한 묘사를 제공한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어느정도 덜 유행적이지만, 동양의
미술 아카데미들내에서는 석고주형으로써 손과 눈의 훈련으로 보내는 수많은 시간
들이 있다. 순백의 대리석을 파서, 원래대로 고안되고 표현되어졌던 것으로써의 전
체모습은 아주 빈번하지 않은 조각들의 부분들이 수통의 석고상들로 복제된다.
그런데 원본으로 부터 몇번이나 옮겨질까? 세번, 네번, 다섯, 천, 오천번째? 그런
데 실제로 14세기에는 이런 미켈란젤로의 근육질의 다비드들이 무엇을 의미했을까?
한 재능있는 시인이기도 했으며,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인간적인 감정들과 정열을
보여준, 요컨데 그것들은 한 시각예술가의 작품들이었다.
이런 근육질의 육체들은,
남성다움을 동반함으로써 그의 개인적인 쾌감과 위안을 우상화하는 남성애의 갈망
을 나타내었을까? 그럴수도 있다. 약간의 베일에 쌓였을뿐‥‥
현재, 이런 석고상들 내부에는 원래의 생명이 남아있는 어떤것이 우리의 미술학
교들안에 있을까? 난 진정 거의 없지않을까 싶다. 달리 말해서 미술학도들이 보고
공부하고 자세히 엿보는, 그리고 지워서 다시 그리는 모든 무수한 시간들내에서의
손과 눈의 훈련은 비록 이것이 선생의 최고의도는 아닐지라도 원래의 예술가의 마
음과 영혼을, 다시말해 첫번째 세대의 석고주형을 떠난 그 방식이 어떤 식으로도 파
괴되어서는 않되는 것일까? 아마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미술교육내에 포함된 그 모든 긴장과 시간의 결과로서, 학생인 Y군과 Y
양은 신인작가 Y군 어디에나 바로 현재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이학생이 그 예술
가안에 내재할까? 이것이 그들을 가르친 사려깊은 선배예술가들이 원했고 기대했던
것일까? 이것은 불가피했어야만 했던 것일까?
그리고 어떤 범위에서 이것이 받아들
여질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되어 나타나는 한계로서 교육의
언저리에 채워진 학생의 의식과의 합류점에서부터 누구의 유리구슬이 부상하는 잡
종의 새로운 예술형태를 예언할 수 있을 것인가?
본인이 하나의 원형으로 제시한 Y
군의 경우 우리는 그의 가장 신작들 안에서 수업시절의 극치와, 독립된 예술가로서
의 초기작을 보게된다. 그의 조각은 비교적 단순한 즉 강렬한 색채를 지닌 작은 헝
겊들안 내부에 콘크리트가 두텁고 희게 발라진 입방체들로 나타난다. 두 반대편에
는 작은 문들같이 절단되어 있다.
그곳을 통하여 내부를 바라볼수가 있는데, 그전에
감옥울타리의 그림자인듯이 마음을 스친다. 그 입방체는 거주공간의 추상, 또는 내
용의 자유로서, 비교적 순수한 비대상적인 기하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창문으로 엿본다면, 내부표면위에 목탄이나 오일펜슬로 그려진 명암법을 주의깊게
볼 수가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기념비적인 프레스코들중의 하나를 위한 단편적인
방법내에서와 같은 손과 팔의 몸짓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았듯이 Y군이 매일매일
인내심있게 스케치하도록 요구되었던 석고조각에 대한 기억을 저절로 떠오르게 해
준다. 이렇게, 그의 생활속에서 그토록 넓은 부분을 채웠던 미술학교의 넓고 깊은
그림자는 부상하는 작가의 작품안에서 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Y군은 이러한 학창시절의 영향을 뒤에 두고 떠날 것인가? 아마도 그렇게 금방은
안될것이다. 그러나 예술가 Y로서 학교의 방어적인 방수복으로부터, 즉 그것을 하
나의 소중한 빛속에서 바라보면서 점차로 떠오름에 따라서, 상처받기 쉬운 젊음위
에 그것은 일종의 방어망으로서 종사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지속성을 지지하며 적당히 경의를 표시하는 불로장생의 불멸에 취한데에
대해 희망을 걸고 신뢰하는, 즉 그 자체의 공헌들에 존경과 갈채로써 전통교육과 예
술위에 다시한번 주석을 달고자하는 이들을 위해서, 젊은 예술가들은 꿈이며, 자부
이자, 예속화이다.
그러나 이 도그마의 지속을 위해서 너무도 많은 열성이 이루어져
왔기에, 그댓가는 한국과 모든 동서양의 미술을 미술이 아닌 미술사로 가두게 된다.
Y군과 Y양에게 행운을 빌며 하나의 긍정적인 주석위에서 종결시키고자, 본인은
이 긴 대단원에서, 귀 세대가 민족주의적인 Provencialism의 질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이며, 하나의 인류로 결속된 21세기로 들어가게끔, 별과 별사이를 날아다
니며 더높이 데려다주는 비행기로 우리를 데려가주길 기원한다.
클라크캔트가 슈퍼맨이 되다.
그리고 또한 젊은 여성예술가들은?
사회를 지배해왔던 한가지의 근육질속에서 그녀들이 수행해온 전통적인 역할을
마침내는 옆으로 제껴놓는 그녀들의 어떤 것이? 대우받을 가치가 없는 노예상태의
수세월간을 화장하며 그녀들이 기다려온 것은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들을 휠씬 더
초월하는 어떤 것이다.
미래는 이러한 젊은 남녀에게 속한다. 그리고 고전적인 형태들의 단편들인 석고
상들은? 그것들의 미래는? 머나먼 후일의 어느 여름날, 모든 미술학교들 주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흰가루를 날리게 될 것이다. 혹자는 그것이 유래했던 때의 기원을 의
아하게 여길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어떤 작가들의 형태들은, 다음 수천년을 위
해서 그들의 낡은 뼈들을 안전하게 놓으면서, 그들의 무덤속으로 되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번 언급했던 신성화된 미술기관들과 지고함을 위해서 경쟁하는 교육
적 파벌들의 월계관은? 그런 이름들은 미술사내에서 각주들이 될 것이다. 실제로 남
아 있게될 중요한 모든 것은 몇점 안되는 미술작품, 즉 회화나, 조각, 도자기가 될
것이다.
즉 수천년이나 먼저 마음속 깊은곳에서부터 그것들을 만들어 젊은 작가들
을 당황시키기도 했던 그 지점에서 존경받는 전부가 아닌 몇몇의 이름이 남아있는
것을 의미한다.
영구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고함을 위해 경쟁하는 다른 진영들로
부터 나온 회화 조각등은? 백남준의 비데오미술이 그것들을 대치시킬 것인가? 먼
미래에 비디오를 대치시킬 그 무엇이든지를 가지고서 조각의 오랜 수명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멀고먼 별들을 여행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무슨 미술로 타고갈 지 그 누가
알수 있겠는가? 유리구슬을 찬장안에다 되돌려놔야 되겠다.
Y군, Y양에게 행운을 빌며,
- 1992. 6月 -
Y군의 첫개인전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