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15년 : 1980-1994 - 전시조직 과정과 평가 -

최태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글머리에
Ⅰ. 민중미술의 성격
Ⅱ. 전시기획배경
Ⅲ. 전시추진과정 		Ⅳ. 전시장조성 및 출판
Ⅴ. 부대행사
Ⅵ. 평가 및 반성
Ⅲ. 전시추진과정

1. 전시의 발의배경

한 전시가 어떤 배경과 과정으로 실행되었는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그 전시의 총체적 이해를 위해 중요하고 또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나의 전시를 실행하기 위해 전시 가능공간의 확보, 즉 전시규모에 대한검토를 비롯하여, 시기, 예산, 사회적 합의 등의 복잡하고 섬세한 사전조사와 정을 필요로 한다.

민중미술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으로 볼 때 그동안 공개적인 차원 에서 전시개혁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이른바 제도권 내에 서는 민중미술에 대한 객관적 평가조차 유보되었던 까닭에 전시개최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 았다. 그러나 1993년 신년 초에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 몇 명이 새해인사차 미술관장 자택으로 방문했을 때 민중미술 전시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함에 따라 이 전시의 개최에 대한 논의 가 비로소 조심스럽게 이루머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후 관장은 학예연구직원 회의석상에서 민중미술전의 개최를 천명하였으나 구체적인 계획 은 수립하지 못한 채 가능성만을 타진하는 상태였다. 3월 중순경 관장은 민중미술 계열의 작 가들과 만나 전시윤곽에 대해 협의한 후 전시개최 계획을 수립하고 담당 학예사로 필자를 지 명하였으며 여러 관련 인사 등과 접촉하며 민중미술 개최 계획을 알렸다.

4월 중순경 인사동 에서 미술관 직원과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 평론가들이 전시개최 계획을 의논하기 위해 모임 을 가진 자리에서 전시 추진방향 및 구진위원 위촉범위에 대해 건의하였다. 이 모임을 계기로 전시개최의 큰 윤곽을 설정할 수 있었으며 뒤이어, 1993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지상에 국립 현대미술관 <민중미술 제전>개최 계획이 보도되었다.

이 기사는 비교적 상세한 사항까지 다 룬 것으로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관장이 보도경위에 대한 경위서를 제출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 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차원에서 전시개최여부 논의를 자제했으며,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 이 론가들이 독자적으로 「민중미술전시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독자적으로 전시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2. 전시추진

1993년 9월 6일 위 단체에서 '민중미술전시 개최계획안'을 민원 형식으로 제출해옴에 따라 이를 접수한 미술관은 내부 검토를 거쳐 장관에게 보고하였으며, 장관은 전시 외의 모든 부대 행사를 불허한다는 조건부로 결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동안 관망하던 미술관은 장관의 결재와 더불어 비로소 공개적으로 전시업무를 추진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 전시의 조직과 관 련한 과정을 정리해서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들이 조건부 전시의 제한조건을 풀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 는 한편 비공식적으로 부대행사 추진계획을 수립하였다. 진진 미술관은 관계담당자 및 민중 미술전시기획위원회가 결합된 민중미술 전시추진을 위한 협의회를 개최 (93. 9. 27)하여 추진위원 위촉범위를 결정하고 전시의 개괄적인 규모와 소요예산 조달방법에 대해 논의함과 동시에 임의단체였던 민중미술전시기획위원회는 해산하였다.

10월 8일 미술관이 위촉한 추진위원들로 회의를 갖고 민중미술전시추진위원회 (이하 추진위) 가 작가선정, 전시내용 확정, 국고 외 비용의 충당을 위한 협찬처 확보, 대정부교섭 등의 업무 를 담당하고, 추진위의 위임을 받은 기획위원회(이하 기획위)가 전시계획수립, 출품작가 자료 수집 및 추진위에 추천, 전시디자인, 도록 등 책자발간, 홍보 등 세부 실무를 전담하기로 했다.

이 회의를 통해 전시조직에 따른 인적구성의 윤곽이 다음과 같이 드러났다.

고 문 : 강연균(민예총 의장), 김윤수(영남대 교수), 백낙청(서울대 교수), 신경림 (시인), 원동석(목포대 교수), 조성국(전통예술 기능보유자, 전시추진중 작고)
추진위원 : 김봉준, 김정헌, 라원식, 신마철, 유홍준 이태호, 최민, 최민화, 홍성담, 황지우 (이상 민중미술 계열 작가 혹은 평론가), 박래경, 채규갑(미술관)

이들 추진위원 중 처음 위촉된 김봉준은 본인의 사양으로 이태호로 교체하였으나 이태호 역 시 사절하였으며, 최민 또한 사양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김정헌, 라원식, 신학철, 유홍준, 최민 화, 흥성담, 황지우와 미술괸에서는 학예연구실장 및 채규갑 전시과장의 전보로 이승진 전시 과장이 추진위원으로 전시업무를 추진했다.

추진위는 동 위원회의 업무를 위임받아 실제적인 일을 담당할 기획위원으로 아래 사람들을 지명했다.

기획위원 : 심광현(사퇴로 곽대원으로 교체), 윤범모, 임옥상, 최 열(이상 민중미술 계열)
오용운(전시과 사무관), 권오영, 김희대, 최태만(이상 미술관) 뒤에 전시과의 장영준 학예연구사가 기획위에 합류함.

3. 추진위회의 및 작가선정

추진위의 결성과 더불어 핵심적으로 떠오른 과제는 출품작가의 선정과 소요비중 중 국고로 충당하지 못한 나머지 예산의 확보였다. 추진위는 8차에 걸친 공식, 4차의 비공식 회의 등 통 산 12차에 걸쳐 회합을 갖고 「민족미술협의회」, 기획위 및 각 지역단체에서 추천된 약 1,000 여명의 작가 중 380명의 개인 및 단체를 출풍작가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미술관
이 애초에 제시했던 두 개의 조건(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분명한 작품의 배제, 외교분쟁의 소지가 있는 작품 배제)에 의해 2명의 작가가 제외되고, 이른바 집단창작품 중 상당량의 걸개 들이 제외됐다. 그러나, 미술관이 이 전시를 개최하게 된 취지와 배경이 공권력에 의해 탄압 받은 작품을 공적 차원에서 재평가한다는 것이었으므로 분쟁의 소지가 농후한 등 아주 민감한 사안이 아니면 대체로 수용되었다는 점을 밝혀두어야겠다.

그 예로 '국가보안법' 위반협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당시 검찰의 항소로 2심에 계류 중이던 신학철의 <모내 기)와 역시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었던 <민족해방운동사>연작 중 부산지역단체가 제작한 <4, 19와 부마항쟁>, 광주지역단체의 <광주민중항쟁>이 해당지역작가들에 의해 복원<재창작>, 전 시된 사실을 들 수 있다.

특히 추진위와 기획위에 속했던 U여명의 인원이 작가선정작업에 참 가했으므로 80년대 이후 민중미술운동에 가담하였거나 그런 경향을 띤 작품을 전부 논의의 대 상으로 삼아 전시여부를 심의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물론 개인이나 소수의 전시조작자들이 일관성 이래 작가를 선정할 경우 전시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경우 각 단체, 지역별로 이루어졌던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의 상당 부분을 간과해버릴 한계가 있으며 특정한 시각이나 편견에 의해 민중미술 전체를 규정해버릴 위험마저 있다.

다만 다수 의 사람들이 참가한 회의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결여한 채 타협과 절충 속 에 출품작가의 범위를 확정할 수 있는 함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수긍한다. 처음에 는 추진위가 작가를 선정하는 몇가지 원칙(작가 선정기준) 아래 출품작가를 신중하게 선정하 기로 하였으나 한 지역미술운동단체의 오해에서 비롯된 집단반발로 대폭수용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전시의 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출품작가를 선정함에 있어서 미술관과 추진 위가 설정한 작가선정기준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출품작가 선정기준

1. 민중미술의 형성과 전개과정에 있어 중요한 공헌을 한 작가 또는 그룹
2.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 또는 자료
3.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
4. 사회변혁적 의의를 확보한 작품 또는 자료
5. 미술사적 의의를 확보한 작품
6. 단, 북한을 찬양하거나 외교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작품은 제외할 수 있음.

그러나 추진위의 선정에도 불구하고 민중미술 운동진에서 활동이 뚜렸했던 몇명의 작가들이 개인적인 정세판단에 따라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 개인적인 소신이나 입장에 따 라 출품을 거부한 것이므로 논의의 여지가 없으나, 추진위 회의과정에서 제외된 작가 중 이 전시에 참가했어야 할 작가가 있었다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추진위의 작가선정 범위가 느슨해진 과정에서 전시의 윤곽자체를 순정해야 하는 일이 다시 발생했다. 추진위의 구성이 운동단체별, 지역별, 세대별로 안배된 까닭인지 모르지만, 추진위 구성이 지나치게 명 망있는 인사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장미술에 대한 고려가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 다.

소속 회원들 가운데 이러한 불만의 소리가 점증하자 민중미술계열의 미술가 단체인「민족 미술협의회」는 1933년 11월 비상상임 집행위원회의를 소집하여 민중미술전에 대한 다양한 의 견을 교환하고 회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했다.

그 과정 에서 몇명의 회원들이 전시불참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으나 민미협은 민중미술전의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민중미술전시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민미협에서 조직한 특위의 위원들은 노 동, 여성, 교육, 만화 등 활동영역 혹은 장르별로 구성돼 있어 추진위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장점이 있었으나, 기왕에 윤곽을 설정해 놓은 전시디자인을 수없이 수정해 야 하는 요구를 해옴으로써 전시업무 진행을 더디게 만든 단점도 있었다.

특위 위원들은 노 로 미술관을 방문하여 전시업무 진행과정을 검토하고, 여성, 노동미술에 대한 전시의 폭을 넓 혀줄 것을 추진위에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전시에 개입했다. 결국 제8차 추진위원회의을 통 해 특위가 추천한 작품의 일부를 수용하는 선에서 출품작가의 범위를 최종적으로 확정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수는 337여명의 개인 및 단체였다.

이 범위는 1993년 姬월 4일 기획, 추진위 연석회의를 통해 확정되었으나 실제적으로 전시에 참가한 작가의 수는 총 246명(여러 분야에 걸쳐 복수로 출품한 작가를 한 명으로 계산한 경우)에 이르렀다.

4. 예찬의 편성 및 집행

어떤 행사에서나 예산은 그것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민감한 사창이므로 실무자들이 공개하기를 꺼려하는 특징이 있다. 민중미술전의 경우 개최여부를 논 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난관을 지닌 채 출발한 것이므로 전시에 소요되는 예산을 확보하는 태 어려움이 맡았다. 특히 국고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국고로 충당할 수 없는 비용의 조달이 추진위에게 부과된 숙제였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민중미술 계열의 미술가들이 독자적으로 조직한 민중미술전시기획위원 회가 산정한 총소요예산은 약 이억 삼천 만원이었으며, 미술관이 이를 근거로 미술관 여건 및 전시규모에 대한 계산 아래 산정한 소요예산은 약 육천 오백 만원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사용된 비용은 국고 삼천 육백 구십 육만 이천원과 기업협찬 이천 오십만원으로 총 오천 칠백 사십여 만원으로 전시를 개최했으니 비용면에서는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전시를 성사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조성, 도록의 출판, 작품의 수집 및 반출입경비, 전시기간 동안 특 별히 채용한 작품관리인원 수당 등 전시개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작은 예산으로 전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예산절감을 통해 지출을 최대한 역 제하고, 외부협찬을 활용하는 등의 비용절감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컨대 전체비 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도록의 출판을 출판사와 판권을 한시적으로 양도하는 조건으로 계 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예산을 줄일 수 있었으며, 전시장조성을 위해 소요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디자인 기획회사의 자문을 받아 기획위원들이 직접 자료의 수집, 제작 및 전시 디자인을 진행했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위는 출품작가 선정 외에도 모 자라는 전시 소요비용 마련을 위해 기업체에 협찬을 요청하는 한편 추진위의 일원이었던 유흥 준은 기획위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별도로 사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유홍준이 기부한 돈은 국 고로 충당하기 힘든 각종 인건비(도록의 원고교정, 디자인 등 편집출판 보조인력 수당, 전시 관련자료) 제작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기업협찬금은 전시공간 외의 자료공간 설치제작, 포스 터제작, 걸개그림 설치 등으로 사용했다. 이 전시를 위해 (주)계몽사와 창작과 비평사가 각각 천만원씩 협찬했음을 참고로 밝혀둔다.

5. 출품확인서 발송 및 작품수집

미술관은 추진위에서 확정한 출품작가에게 출품확인서 및 자료를 발송, 접수하여 이를 토대 로 도록 제작 및 전시디자인 개념설정 작업에 착수하였다.

추진위에서 선정된 337명의 개인 및 단체에게 모두 우편으로 출품확인서를 발송했으나, 실제로 이를 작성하여 미술관에 접수하고 작품을 출품한 작가는 246명이었는데, 여기에서 발생한 약 90명의 편차는 이 인원이 전부 출 품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디자인상 상호 중복되는 작가를 한 명으로 계산 한 것에서 생긴 것이며, 약 15명 남짓의 스스로 출품을 포기한 작가를 재외하고 거의 전부가 전시에 참가했다.

따라서 이 전시가 민중미술15년을 정리하는 종합전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하 게 구축한 전시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수집은 각지역을 광역별로 나눠 부산·경남북지역, 광주·전남북지역 작품은 미술관 직원이 현지에 출장을 가서 한 장소에 수집해 놓은 작품을 미술관으로 운송했으며, 기타지역은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작품을 접수하도록 했다.

특히 작고한 오윤의 작품은 유족의 도움을 받 아 보관상태가 좋은 상당한 양의 작품을 수집하였으며, 파손, 훼손 등으로 이미 없어진 작품 은 해당 작가와 단체에 복원을 의뢰하여 전시했으나, 80뇐대 초반에 활동했던 [두렁]의 대부 분의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져 활동하는 상태인데다 작품마저 소재를 파악하기 힘들어 이 단체가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시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물자료가 남 아있지 않은 걸개, 벽화 등은 개인이나 단체가 보관 중이던 사진패널로 대체했고, 그 결과가 389 점의 작품과 사진자료, 책자·카탈로그·전단·포스터 달력 등 각종 출판물, 선언문·성명 서·재판기록 등의 각종 문건 등 약 1,000턱 종에 이르는 자료 등 총 1,400여점의 실물 및 관 련자료를 전시하였다.

전시준비가 본궤도에 오름과 동시에 1994년 1월 12일 민족예술인총연합회 강당에서 추진위 명의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는 국내 주요일간지 미술담당 기자와 미술잡지 기자들 이 거의 대부분 참석하여 민중미술전 개최에 대해 맙은 관심을 보였고, 5일자 조, 석간마다 토픽으로 다뤄졌다. 이때 도하(都下) 일간지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민중미술에 대 해 긍정적인 평가와 전시필요성에 대해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