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미국현대미술의 세계화과정과 미술관의 역할

노 재 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Ⅰ. 유럽에서의 미국미술의 위상
Ⅱ. 미국적인 미술에 대한 비평언어		 Ⅲ. 미국적인 미술담론의 시대적 상황
Ⅳ. 미국미술의 세계화를 주도한 미술관
Ⅰ. 유럽에서의 미국미술의 위상

(뉴아메리칸페인팅)전은 뉴욕의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이 대대적인 유럽순회를 위하여 기획하였던 해외전시로써 1958년과 1959년, 만 2년에 걸쳐 유럽의 7개국을 장기순회한 전시였다. 이 전시에 참가했던 작가는 월리엄 바지오티스, 제임스 부르크스, 샘 프란시스, 아쉴 고르키, 아돌프 고틀리에브, 필립 거스톤, 그레이스 허티건, 프란즈 클라인, 윌리엄 드 쿠닝, 로버트 머더웰, 바네트 뉴먼, 잭슨 폴록, 마르크 로드코, 테오도르 스타모스, 클리포드 스틸, 브라드리 워커 톰린, 잭 트워커브 등 모두 17명이었다.

이 전시는 세계의 미술계, 곧 유럽의 미술계에 미국의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진출시킨 이벤트로써 평가되어 왔으며, 이 전시를 기점으로 마침내 미국미술이 유럽미술계의 공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래서 60년대 들어서 미국은 세계적으로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현대미술에서 새로 등장하게 되는 주요 미술운동이나 양식은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현대미술이 비교적 짧은 기간안에 세계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기까지에는 일련 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미국미술의 세계화를 주도한 주체(agenry)가 있었 을 것이다. 이 글은 미국현대미술의 세계화 과정을 점검해보면서, 여기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 루었던 (뉴아메리칸 페인팅) 전시회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전시를 기획한 현대미술관의 역 할 전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일쩌기 유럽에서는 미국의 미술은 지엽적이고, 보수적이며 유럽미술을 모방하는 아류 정도라 고 미국미술을 치부하였다.

이는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유럽, 특히 프랑스의 평론가들에 의해 씌여진 미국미술에 대한 글들을 통해 역력히 드러난다. 미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유럽 미술 인들의 인식과 지식은 당시 유럽에 유학오거나 이주하여 생활하고 있던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몇 안되는 미국미술의 유럽전시의 사례들을 통해서 주로 형성되었다.

1947년에 사무엘 쿠츠라는 뉴욕의 한 현대미술딜러에 의해 (미국현대회화소개(Intro- duction a la peinture moderns americains))라는 전시가 파리에서 열렸다. 당시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화랑이었던 메그 갤러리에서 선보인 이 (미국현대회화 소개)전은 2차 세 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처음 열리는 미국혈대미술 전람회였다는데 그 미술사적인 의의가 있다.

이 전시를 리뷰한 평문들에서 공통적으로 프랑스의 평론가들이 역설했던 것은, 미국미술은 유 럽의 미술과 차별되는 어떤 뚜렷한 독창성이나 새로운 면모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지적과 함께, 또한 이 전시의 출품작들이 에꼴 드 파리와 흡사한 회화성과 감각을 잘 답습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써, 대채로 미국미술에 대해 그 열악함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한 평론가는 관람객들이 이 전람회를 관람하고 나서면서, " 왜 미국인들은 유럽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는 것일까? 더군다 나 왜 미국인들은 독자적인 미술을 창조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적 었다.

(미국현대회화 소개)전이나, 이외에도 몇 차례 있는 미국미술전람회들과는 달리, (뉴아메리 칸페인팅)전은 많은 유럽의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으며, 유럽의 미술계에서 화 제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뉴아메리칸 페인팅)전이 순회전시할 당시 파리에 거주하고 있던 미 국인 평론가 아네트 마이클슨은 이 전시가 파리의 미술계에 "폭탄선언"과도 같은 효력이 있었 으며 그 여파가 오래 지속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 전시가 끝난지 5개 월이 지난 지금도 작가나 평론가들과 딜러들이 몇명이라도 모인 자리에서는 유일하게 이 전시 가 활기띤 화제거리로 여태 등장한다.

" (뉴아메리칸페인팅)전이 유럽을 순회전시한 이후로 유럽미술계에서는 미국미술에 대한 담론 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즉, 유럽미술과는 다르다는 것, 미국미술에서 독자적인 내용과 양식 이 존재한다는 인식하에 평론가들은 미국미술의 독창성과 특수성, "미국적인 미술"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미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씌여진 (뉴아메리칸페인팅)전람회 전시리뷰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우리가 이 전시에서 목격하는 페인팅은 그 어떠한 틀이나 구속도 거부한다. 또한 이 그림 들은 나이를 먹지 않을 것이다. 이 모두가 미국미술계의 오리지널리티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계문명의 압박감과 무의미한 실용주의에 대항하는 미술이 초현실적인 대항 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페인팅의 행위 자체에서 해방감을 찾게된 것이다. ([르 몽드] 1959.1.17일자)

우리는 이제 미국화풍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미술사상 처음으로 유 럽미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파리를 포함한 유럽미술계에 영향력을 발휘하 는 인물를이 미국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들에게서는 조금의 안일함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이들은 원초적인 것을 표출하면서 사회와 숙명과 맞서 대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액션 페인팅"이라고 하는 반면, 우리는 "추상표현주의"라고 이들을 부른다. 이는 단적으로 미국과 유럽문화의 차이점을 상징하는 한 예라고 본다. 우리는 지난 것을 잊지를 못하고,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기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의 경혐을 누적시키고 이를 내면화한다. 반면에 이들 젊은 미국인들은 민족의 전통이나 문 화유산을 떠나서 존재하며, 마치 선과 악을 초월한 듯 보인다. ([데 탕게스피엘레] 1958. 9.7일자)

미국의 미술은 유럽의 미술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여전히 유럽의 미술문화에 대해 민감하 지만, 그 나름대로의 성격이 분명하게 정의 내려진 바, 미국인들의 의지와 상상력에 의해 미국미술의 이미지 또한 풍부하다. 미국미술이 이제 엄연히 주체성을 확보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들은 우리의 예술가들처럼 깊이 뿌리박힌 민족문화 또는 전통에 의해 구 속되지 않은 만큼, 창작력은 더욱 자유스럽다. 그래서 미국의 미술가들은 더 큰 자유를 구 현할 수 있다. ([일 지오르노] 1958. 6.10일자)

이들 전시리뷰들을 통해서 대체로 미국미술의 성격을 규명하고 유럽미술과 차별화하는데 동 원되었던 용어나 개념들을 정리해 본다면, 자유, 해방, 독창성, 새로운 것 등이다. 이런 언어 를 중심으로 새로이 유럽인들에게 소개된 추상표현주의 폐인틱은 곧 미국의 현대미술을 대표 하는 양식으로써 인식되었고, 미국의 미술에 대한 미술비평의 텍스트에서 미국의 현대미술은 유럽미술과 차별성을 찾아내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작업에 의해 미국미술의 아이덴티 티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었다.

미국현대미술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미술이론은 이렇듯 유럽의 미술계에서도 (뉴아메리칸페인팅)전을 기점으로 일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상응하는 미국내에 서의 담론은 어떠하였는가? 미국의 현대미술의 위상이 유럽에서 정착하는데 독창성과 아이덴 티티에 관한 담론이 크게 작용하였다면 이러한 담론은 자국에서 이론적으로 어떻게 정리가 되 었는가?자국미술의 독창성에 대한 탄탄한 비평언어를 근거로 전시가 기획되었으며, 결국 미 국현대미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담론의 뒷받침 없이는 (뉴아메리칸 폐인팅)전시가 유럽인들 에게 설득력이 없었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