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미국현대미술의 세계화과정과 미술관의 역할

노 재 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Ⅰ. 유럽에서의 미국미술의 위상
Ⅱ. 미국적인 미술에 대한 비평언어		 Ⅲ. 미국적인 미술담론의 시대적 상황
Ⅳ. 미국미술의 세계화를 주도한 미술관
Ⅲ. 미국적인 미술담론의 시대적 상황

(뉴아메리칸 페인팅)전시에 출품되었던 그림들을 설명하는데 동원되었던 주요 개념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자유, 독창성, 새로운 것 등의 용어가 있었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을 설명하는 데 이러한 개념들이 널리 통용되었다.

이처럼 미국미술의 아이텐티티를 설명하는데, 특히 추 상표현주의 미술이 미국내에서 예술표현의 자유를 상징한다는 논리가 자리잡으면서, 미국현대 미술의 특수성이나 주체성 담론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텍스트를 통해서 미국미술을 상징 하는 언어는 실제로 추상표현주의 페인팅에서 엿 볼 수 있는 회화적인, 시각적인 요소들과도 관련되어 설명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이야기되었던 것이 회화작품들의 크기, 규격이었 다. [런던 타임즈]에 실린 <뉴아메리카페인팅>의 전시리뷰에서 한 필자는 그 그림들이 관람객 에게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감동을 준다고 쓰면서, 그림들의 크기가 곧 "탐험의 정신, 인간 의 분투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개척자다운 의지를 독자적인 표현 방법"을 통해 그려내고 있 다고 하였다.

또한 다른 전시리뷰에서 한 평론가는, 그림들의 크기가 모두 거대한 스케일이라 고 하면서, 그 원인인 즉은 이들 페인팅이 전달하고자하는 내용을 작은 스케일로써는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덧붙여, "미국인들은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들이며 정복하 는 자들이다. 그들은 대단한 대담성을 지녔다. "라고 하였다.

미술사학자인 새르즈 구이보는 미술에서 정치성 발언이 금지시되었던 시기에 추상표현주의 페인팅 작품들의 크기 그 자채가 정치적인 선언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계열 작가들은 미국의 대공황 당시 WPA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공공건축물의 벽 화작업에 투입되었던 작가들이며 30년대 팽배하였던 마르크스주의 추종자들이었다고 한다. 벽 화작업의 스케일이 갖는 강한 호소력을 빌어와서 이 작가들은 켄버스의 크기를 전시벽면을 가 득 메우는 크기로 확대하였다.

이젤화가 자본주의 미술시장에서 하나의 소비품으로써 거래되 는 것에 대항하고자는 의도를 갖고 추상표현주의 페인팅은 스캐일로써 관람객을 압도하였다. 미국현대미술의 세계화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미국미술의 아이댄티티에 대한 담론을 형성한 비평언어와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회화적인 요소에 대해서 간략하개 언급을 하였는데, 더 넓은 의미에서 미국미술의 세계화과정을 분석해 보자면 당시 미국현대미술의 아이덴티에 대한 논란은 특수한 시대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제 2차 새계대전 후 미국의 문화정책과 국제정치의 제반 여건에 따라 그 시대의 이데을로기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과 조건들이 미국미술의 세계화과정에서 해외문화교류 사업 의 내용과 해외전시의 성격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당시 미국 정치가의 분위기와 전후 문화정 책의 제반 조건들이 직간접으로 미국미술의 해외진출의 과정에 크고 작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뉴욕현대미술관 관장이었던 바르는 기록하기를, 추상표현주의 그림들이 지엽적이고도 예술 적으로 낙후되어있던 30년대와 40년대의 미국미술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한다. 대공황 당시 활 동하였던 작가들은 나이브한 정렬과 판단력으로 공산주의에 귀를 기울였으며 이들은 낭만적인 사실주의에 물들어 19세기 초기의 미술에 대한 일개 노스텔지어에 젖어 있다고 하였다. <뉴아 메리칸 폐인팅)전시가 내세운 미국미술의 아이덴티티는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었으며,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가 곧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채제라는 것이다.

모더니즘미 술을 옹호하는 선각자들은 바로 이러한 "자유"에 대한 논리를 근거로 미국내 보수진영과 대항 하며 미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지지하였다. 냉전체제하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가장 효력있는 무 기가 되었으며 소련과 기타 공산권 사회에서 예술가들이 탄압을 받고 검열을 당하는 반면에 미국의 체제는 곧 인간의 자유와국민의 복지를 지켜준다는 담론이 전개되었다.

1913년 뉴욕에서 열었던 (아모리쇼) 이후 현대미술과 아방가르드미술은 유럽의 미술문화 의 맥에서 이해되었으며 이는 곧 외래문화라고 인식되었다. 미국내에서 모더니즘과 전통보수 파간의 논란은 미국적인 미술과 비미국적인 미술에 대한 논란과 얽혀서 동시에 이야기되었다.

보수, 진보, 전통, 모더니즘, 미국적인 미술과 비미국적인 미술에 대한 논란은 (아모리쇼)를 기점으로 등장하였다가 30년대 잠잠하였으며 미국 정치계에서 매카시즘(McCarthyism) 이 득 세한 시기에 재등장하였다.

모더니즘은 곧 비미국적인 미술이며 나아가 빨갱이 문화라고까지 일컬어진다. 여기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미술의 진출(Advancing American Art))이라는 전시를 둘러싸고 일었던 일련의 사련들과 이 전시의 여파로 말미암아 전시관행에 있어서의 변 화를 들 수 있다.

<미국미술의 진출>전시는 1946년 파리의 국립현대미술관이 UNESCO 첫 총회를 기념하기 위해 국제 미술전람회를 기획하면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자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요 청하였던 것으로, 미국에서는 미국미술전 기획을 외무성에서 주관하게 되었다.

이 전시는 중 견작가들을 선정하여 모더니즘 회화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시는 유럽과 남미를 순 회할 예정이었으며 작품들이 해외로 반출되기 이전에 일반인에게 전시를 공개하고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차 소개되었다.

작가들의 이름이 공개되자 일반인을 비롯하여 보 수적인 미술인 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하였다. 미국을 대표한다는 전시에 유일하게 모더니즘 미술을하는 작가들만을 선정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이 전시에 선정된 작가들은 유 럽의 과격한 미술사조에 물들은 작가들이며 "우리 국토의 고유한 정신과 무관한 미술"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외부의 항의는 결국 정부의 고위직 인사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하여 이 전시를 주관하였던 외무성에서는 전시를 철수하였고 외무장관은 "더 이상 국민의 세금이 현대 미술을 위해서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해명을 공식 발표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 미술 회애서는 모더니즘은 곧 공산주의 이데을로기와 결부되어 거론되었다. 의회는 직접 미술사업 애 관여하였으며, 작가 개개인에게 공산당원이라는 인신공격을 하는가하면 공공미술단체로부 터 이러한 작가들의 회원자격을 박탈하도록 가세를 하고, 무엇보다도 정부가 후원하고 직접 관여하는 해외전람회에 출품을 못하도록, 미의회에서 해외전시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심의 과 정을 두었다.

정치계의 이와같은 보수파의 검열과정을 통헤 당시 반공정신이 상당 부분 직접 적으로 미술계를 조정할 수 있었으며 전시행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미국내 미술의 세계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냉전채재라는 시대적인 상황은 사회전반에 걸쳐 적색추방의 반공운동을 불러일으키 면서 미술계에도 많은 구조적인, 내용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런 조건하에 뉴욕파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작가들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미술이라고 선전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미 술은 공산권 치하에서 누릴 수 없는 예술가들의 자유를 표현하고 대변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 다. 로버트 머더웰은 현대회화에 대해 말하기를 "이는 널리 대중 앞에서 선언하는 정치 발언 이다.

모던 아트의 미술사는 현대사에서 인간의 자유의 역사와 병행하게 되었다. " 클리포드 스틸은, 라는 분명히 말하기를, 단 한 번 긋는 붓의 획이 갖는 위력과 상징성에 의해 20세기 를 거쳐 잔존해 온 인간 구속과 종속의 틀로 인하석 잃어버린 인간의 자유를 회복시켜 줄 수 있다. " 라고 역설하였다.

추상표현주의는 40년대말부터 전문 마술지나 미술잡지 등에서 다뤄지기 시작하다가 곧이어 [라이프]지와 같이 대중적인 간행물에도 흔히 접할 수 있을정도로 널리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미술평론가들과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립이 되어가면서 나름대로의 비평 언어를 갖추게되었고, 미술관들에서 작품을 구입하고 소장하게 됨으로새 유명 콜렉션에 자리 잡게 되었고, 40년대말부터는 베니스 비엔날러에서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미술양식으로 등장하 개 되었다.

그러면서 세계미술계에 의해서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적인 미술이라는 승인을 받게 되는대, 이 미국현대미술의 아이텐티티 형성 과정은 상당히 빠른 시일내에 완성된 것으로써 60년대 중반어 접어들면서, 불과 10년만에, 모던니즘미술과 아방가르드 정신하면, 이를 미 국미술과 미국의 현대문화와 결부시켜 인식하게 되었다.

(뉴아메리칸페인팅)전이 유럽에서 전시될 50년대말 이전에도 미국미술은 여러 차례 유럽에 서 선보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뉴아메리칸 페인팅)전의 주요성은 유럽에서 미국미술에 대 한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그 위상이 상승하고 있던 기류를 타고 하나의 모멘텀을 가지고 대 대적으로 미국미술의 왕성한 에너지를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이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추상표 현주의의 숭리를 가능케했던 것이다.

이 전시가 미국미술을 세계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시 유치배경과 관련하여 과연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전시가 기획되었으며, 후원되었는가를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전시를 기획하고 주 최한 미술관과 그 기관의 성격과 전시 관행들을 살럭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