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의 질적 판단에 대한 비평철학적 고찰

최 태 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예술작품의 질적 판단에 있어서 보편성과 특수성
Ⅱ. 질·량·감의 인식론적 접근
Ⅲ. 정서의 표현과 가치의 발견
Ⅳ. 미술사적 접근

Ⅱ. 질·량·감의 인식론적 접근

사전적인 의미에서 질은 기본적 범주의 하나로서 '어떠한이란 물음에 대응하는 사물의 존재양태 즉 '사물을 사물답게 만들고 있는 것, 천부적인 성질, 태어날 때부터 가진 천성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질은 양적 규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양적 규정이 변하여도 질은 어느 한도 내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빛, 맛, 냄새 등의 감각적인 질과 교양이 있다. 현명하다 등의 비감각적 규정은 양적 규정과는 관계없이 질적인 성질을 유지한다. 이러한 몇 개의 질이 모여 전체로서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별하는 규정성 즉, 민주주의의 질, 봉건 주의의 질과 같은 것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논리학에서는 판단이 긍정 판단이냐, 부정 판단이냐를 차별하는 것을 '질적 판단'이라 부른다. 그러나 질은 무엇보다 사물의 가치적 차별예 근거할 경우가 많으며, 특히 예술작품의 경우 내용과 형식의 좋고 나쁨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의해 가치화 된다.

질이란 포괄적 개념 속에는 본질(essence), 성질(nature), 물질 혹 은 질료(matter)또 이런 물질적 속성과 관련한 질량, 재질, 질감 등의 복잡하고 비슷하며 상 이한 개념들이 자리하고 있어 그것을 통일된 개념으로 정의하기가 매우 힘든 특징이 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질의 담론은 그것이 좋다 나쁘다. 높다 낮다란 이른바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 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계(우주)를 이루고 있는 사물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사색했고 그것을 '아르치(archf)라고 불렀다. 탈레스나 아낙시만도로스와 같은 자연철학자들 은 이것을 물, 불, 공기 등으로 제시하였으나, 그것을 추상적으로 사유한 피타고라스는 '수'(數) 를 만물의 본질로 생각했다.

보다 추상적인 아름다움의 문제에 관한 한 소크라테스에게서 이 미 미학이 학문적인 차원에서 연구되기 이전에 미학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할수 있 다. 크세노폰(Xenophon)은 「항연」서 소크라테스가 화가인 파라하시오스와 조각가인 클리 톤에게 몸의 움직임에 의하여 영혼의 진정한 아름다움(眞美)을 표현하는 모델 속에서 가장 마 음에 드는 것을 재구현하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 름다움을 사람이나 동물 혹은 악기 등과 같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물건에서 찾고자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미의 본질일 것이다.

즉 미는 다른 사물에 의해서가 따니라 미 그자체에 의해 아름답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생각을 더욱 초월적인 관념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플라톤이며, 그는 미적 대상이 되는 물건들 의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의 원형(Idea)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플라톤세게 있어서 미의 개념은 과거의 철학자들이 생각한 '정신과 육체의 조화로운 통 일'을 의미하는 '칼로카가티아'의 개념을 보다 추상적인 선미(善美)의 합일이란 문제로 끌어 을 렸다.

범주론의 맥락에서 질의 문제에 대한 정치(精緻)한 철학적 접근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는 이것을 논의함에 있어서 범주(category)란 개념을 도입했다. 즉 그는 존 재의 카테고리를 규정함에·있어서 '무엇이.... 이다'(존재)에 대해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 간, 능동, 수동, 상태, 소유태 등 10개의 범주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기본용어로 형상(形相, eidos)과 질료(質料, matter)를 들 수 있는데," 사물의 생성은 사물을 한정시켜 형성하는 요소인 형상과 이 한정을 받아들이는 요소인 질료란 두 요소에 의해 생각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존재자는 형상과 질료의 통합으로 사고했다. 예컨대 아폴로상에서 볼 수 있는 형태나 자세는 형상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는 물질인 돌, 청동 등과 같은 물질은 질료인 것이다.

동물의 경우 특정한 종(種)으로 한정시키고 있는 것은 형상이며, 뼈, 살, 근육은 질료 이다. 이때 질료를 뜻하는 그리스어 힐례(hyle)는 최초에 목재를 의미했으나 '가공하여 무엇이 되는 원료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런 점을 주목할 때 형상은 본질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완전히 본질로 단정할 수 없으며, 질료 또한 순정적인 재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속에 본질적인 성질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10 범주를 계승하여 이것을 원리적 혹은 체계적으로 4개의 대범 주(분량, 성질, 관계, 양태)로 묶을 수 있는 12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였다. 칸트에 의한 12범 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칸트적 분류로 볼 때, 질은 성질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것은 실재성, 부정성, 제한성을 속성 으로 하며, 양은 분량을 의미하고 역시 단일성, 다수성, 총체성을 속성으로 한다. 여기에 바탕 한 판단의 질은 주어와 술어의 포섭관계를 문제로 삼고 있으므로 긍정, 부정, 무한의 각 판단 이 성립된다.

이것은 칸트의 세 비판철학서 중에서 미학과 관련된 「판단력비판」의 '심미적 판 단력 분석법'에 나타난 미의 분석과 숭고성의 분석 부분에서 그 미의 분석을 논의하는 과정에 제시된 네 개의 범주 또는 계기(契鷗 moment)를 도표화한 것으로서 이를 고찰해 보면 다음 과 같다.

첫째, 질적인 관점에서 본 미 판단의 제1계기 - 미 판단을 결정짓는 만족에 관한 간결한 분석을 한 후 칸트는 맛, 쾌(快), 선(善)과 같은 만족감들의 형(形)을 비교, 대조하여 '미 판단 력은 완전히 무심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만족 또는 불쾌에 따라 한 대상 또는 한 형상을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여기서 만족의 대상을 미라 지칭한다 "고 정의하였다.

둘째, 양적인 관점에서 본 미 판단의 제2계기 - 위와 같은 도식에 따라 두 번째 범주 관 점에서 취향과 미를 고찰하면서 칸트는 미는 '본질적인 만족의 대상'과 같이 아무런 개념도 얼이 나타나게 되며, 취향은 쾌감과 판단력을 갖지만 이들 가운데 어느 것이 앞서느냐는 앞으 로 생각하여 볼 일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려 한다. 이 제2단계에서 추론된 미의 정의는 '아무런 개념없이 일반적으로 쾌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째, 상호관계의 관점에서 고찰한 미 판단의 제3계기 - 칸트는 여기에서 미 판단이 어떻 게 선험적인 원리에 의존하며 매력, 감동 뿐만 아니라 완벽성의 개념과도 독립되어 있는가를 제시한다. 그는 미의 이상을 원칙적으로 "본보기가 되는 작품들에 대한 시간을 초월하고 국적 을 초월한 완전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미의 한 이상을 따른 판단은 하나 의 취미판단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완전하게 균형잡힌 얼굴은 일반적으로 아무런 표정도 없고 이 순수하고 냉철한 지적 판단은 아무런 육감적인 매력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그리하여 제3계기에서 추론된 미는 '아름다움이란 그 최종 한정의 표상이 지각되지 않는 한 대상물에 관한 궁극적 조화의 형상으로 정의된다.

마지막으로 한 대상물에 의해 주어진 만족감의 양상에 따른 미 판단의 제4계기, 미 판단에 있어서 일반적인 만족감의 필요불가결성은 하나의 공통되는 의미의 존재를 가상하고 객관적 인 듯이 나타난 하나의 주관적인 필요불가결성으로서 미는 '아무런 개념도 없으면서 하나의 필요불가결한 만족감의 대상과 같이 인정된 것이 미로 정의하였다.

이렇게 볼 매 칸트의 미 판단에 있어서 질은 대상을 쾌, 불쾌에 따라 판단하는 능력이며, 양적인 것은 아무런 개념없이도 쾌감을 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질의 문제는 이러한 철학적 담론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감각기관을 통해 받 아들여진 사물의 특질인 빛깔, 형태, 냄새, 맛 등도 질에 해당한다.

한국의 철학적 사유체계로 볼 때 질은 '사물에 고유한 조리있는 법칙'을 의미하는 '이(9 에 해당하며 경험적인 대상으로서의 만물을 일컫는 '기(氣)를 양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기운생동'과 같은 의미에서의 기는 감에 보다 근사함과 동시에 질과 양을 다같이 포함하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이기론은 퇴계의 영남학파와 율곡의 기호학파를 통해 각각 이원론과 일원론으로 전개돼 훗날 당쟁의 불씨를 제공하였으나, 이러한 존재론이 도덕론에서는 사람의 성(性)은 이(理)고 이 것이 정욕의 기(氣)를 규제하고 있다는 성리설(性理設)이 형성되었으며, 성이 곧 이에 합치된 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론이 나타났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질과 현상, 질과 양은 대립적인 것으로 논의되어 왔으나, 혜겔의 이른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변중법적 유물론 이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양자는 대립물의 통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예 술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미적 가치를 판단하게 하는 객관적인 요소)는 예술작품을 통해 구 현될 수밖에 없으므로 현상으로서의 작품은 그속에 본질을 품고 있는 것이다.

질에 대립하는 것은 양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질량은 어떤 물체에 포함돼 있는 물질의 양 을 말하며, 1774년 A. L 라브와지에에 의해 한 물체의 원소를 분리하여도 그 양은 변하지 않 는다는 이른바 '질량보존의 법칙이 발견되었으며, 이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진리로서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은 상실했지만, 이화과정에서 소실되는 양이 아주 극소하기 때 문에 이 법칙 전체가 부정된 것은 아니다.

왜 이 글에서 새삼스럽게 물리학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가 하면 기본적으로 양의 개념이 철학으로부터 발원한 것이긴 하나 그 개념을 보다 명징 하게 논구할 수 있는 것이 자연과학적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양이란 질에 대립되는 기본적 범주의 하나이며, '얼마 만큼'이라는 물음에 해당하는 사물의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말 이다. 예컨대 사물의 수나 시간과 공간적인 넓이 및 무게, 길이, 속도 등은 양적 규정에 해당 하는 것이구 이러한 규정에 있어서는 사물의 질적인 면은 도외시되므로 사물은 등질적(等質 的)인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사람수를 헤아리든지 짐의 무게를 측정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사람 개개인의 성질이나 그 물건의 내용과는 하등 상관이 없듯이 양이란 사물의 질적 규정을 제거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사물의 측면이다. 그러나 양이 몰가치 혹은 가치유보적 측면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학에서 말하고 있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이론은 '많은 것이 좋다' (多多益善)란 동양적 혹은 유물론적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을 물리학적 실험의 예로 비추어 보면 물을 가열하는 경우 어느 한도 내에서는 액체상태로 온도만 높아져 가지만, 정상기압 하에서 섭씨 100℃에 도달하계 되면 물은 수증기로 변화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양 적 측면을 지니며, 증대, 감소 등의 양적 변화가 어느 한도에 이르기까지는 질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어느 한도에 이르게 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점차적 변화로부터 질적 변화의 상 태에서 급진적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것을 '양의 질로의 전화라고 한다. 헤겔은 이것을 관념론 적 형태로 제시한 바 있는데, 실제로 유물론에서는 '양이 질을 규정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것은 변증법의 기본법칙의 하나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해 볼 때 질에 대한 판단 이 주관적이고 가치지향적이라고 한다면 양은 객관적이고 가치유보적이 란 점을 알 수 있다. 질과 양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모든사물은 동일하며, 그 차이는 단순히 양적일 뿐 질적이 아니란 입장을 띤다면 그리스적 유물론(프로타고라스)의 입장에 서는 것이 되고 질적 차이의 입장을 강조한다면 키에르케고르적 역설이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혜겔의 변증법을 '양 적 변증법이라고 경멸했고, 자신의 변증법을 '질적 변증법'이라고 불렀으나, 혜겔은 그 질과 양의 입장을 종합하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