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Ⅲ.정서의 표현과 가치의 발견
앞에서 논구한 질, 량에 대한 허다한 논의 속에서 질과 양은 대립하며 질이 상위의 것이라면 양은하위의 것으로 그 위계가 설정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예술에서 이 위계는 너무도 자명하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예술은 항상 가치판단과 연루돼 왔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하필이면 이 작품 앞에서 심미적 감동을 느끼고, 또 어떤 작품 앞에서 도덕적으로 고양되는가
하면 어떤 것에서 혐오스러운 공포에 사로잡히는가. 감동이든 고양이든 혐오감이든 공포심이
든 모두 인간의 감각기관에 전달된 자극에 대한 심리적, 지각적 반응의 결과인데, 그것에서
무언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높낮음을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며 이해하려 한다.
이 행위 속에는 필연적으로 가치의 문제가 개입되며
이것을 칸트가 말하는 취미판단이라고 하든 아니면 다른 어떤 개념으로 정의하든 가치의 문제는 예술을 평가하는 본질적인 국면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만약 가치에 대한 선호나 판단이
없으면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고대로부터 철학자, 역사학자, 비평가들은 지속
적으로 예술의 가치를 규명하기 위해 유효한 개념들을 제시하고자 했다. 빈켈만(Winckelma-
nn)은무엇이 완전한 예술인가를 정의하기 위해 그리스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연구했고,
혜겔은 완전한 예술의 계기를 포착하기 위해 정신의 보편적 발달에 대해 상상했으며,궁극적
으로 예술-종교-철학에 이르는 절대정신을 제시했고, 러스킨(buskin)은 참된 예술과 거짓
된 예술을 판별하기 위해 자신의 도덕적 감수성을 동원했다.
이렇게 볼 때 완전한 예술이든, 절대정신이든, 도덕적으로 유용한 것이든 이 모든 것이 가
치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가치는 곧 이성의 인식작용의 결과임을 주목하자면
예술작품의 가치판단은 이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치판단이 곧장 이성
의 요청에 부응한 것은 아니며, 많은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이 가치판단은 항상 참된 결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 혹은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맹점은 여기서부터 이루어진다. 러스
킨의 입장을 오늘날 누가 보편적인 선으로 옹호할 것인가.
예술작품을 향수함에 있어서 이성의 결정을 따르기 전에 우리의 감각은 먼저 감성에 호소
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에 있어서 질과 양의 문제에 대한우리의 접근이 감의 문제로
나아감을 발견할 수 있다. 혜겔은 미를 '이념의 감각적 드러냄'이라 했고 바움가르텐은 미학
을 감성의 학'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감'이란 정말로 막연하며 포괄적이다.
이것 역시 질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감각, 감성, 감정, 지각 등의 보다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
개념들은 비단 예술에서 뿐만 아니라 생리학, 심리학, 철학 등과 연루된다. 데카르트(Descart-
es)는 그의 「정념론」에서 인간이 대상에 대해 느끼고 반응하는 바를 기계론적 입장으로 해명
하고자 했는데, 그로부터 감각의 문제가 따씬 감상에 이르는 출발점임이 밝혀겼다.
백아가
연주하는 거문고를 듣고 그것을 비평했던 그의 친구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는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그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심미안을 지녔던 비평가였던가?
그
친구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는 백아의 고사(故事)는 예술의
질적 수용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감각(sensation)이란 빛, 색, 소리와 같은 외계의 자극, 통증과 같은 체내의 자극을 느끼는
기능을 말하는 것으로서 생리학에서는 이것을 단순한 자극을 주관적으로 알아내는 기능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무조건반사 실험은 먹이에 대한 동물의 감각적 본
능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을 일으키는가를 실험한 사례이다.
눈, 귀, 피부 등을 통해 우리는 외
계 및 신체내부에 무엇이 존재하고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다. 모든 생물체는 외계 혹
은 내부의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 하등동물의 촉수나 고등동물인 인간의 감각기관은 이러한
자극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한다.
즉 자극이 신체에 전달되면 신체의 복잡한 작용에 의해,
그리고 최후로는 뇌의 기능으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지각(知覺,
Perception)이라고 부른다. 지각이란 그러므로 뇌의 복잡한 기능 중의 하나인데 자극이 빛과
색일 경우 눈을 통해, 소리일 경우 귀를 통해, 온도나 압력일 경우 피부를 통해 신경을 거쳐
최후로 뇌로 전달된다.
이러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민감한 세포가 모인 복잡한 구조를 감각기
(感覺器) 혹은 수용기라고 하는데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의 감각기는 보다 복잡하다.
심리학에서는 자극으로부터 야기되는 의식내용에서도 복잡한 형태 즉, 환경 속에서 자극의
형태를 조직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지각이라고 하고, 이러한 형태를 제외한 단순한 내용을 감
각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구체적인 지각내용을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경우에
발견되는 가장 간단한 내용을 나타내는 것을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성적 지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세계를 독일어로 감성계 흑은 감각계(sinnenwelt)라고 한다.
이때 감성계는 초감성
적 "예지계'에 상대되는 말로 흔히 사용되며, 예지계보다 가치적으로 낮은 것을 의미한다. 그
러면 감각, 감성, 감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철학이론에는 이른바 감각론(sensationalism)이란 게 있다. 일반적으로 '센세이션'하다고 말
한다면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감각론이란 모든 인식은 감각
에서 유래한다는 철학이론으로서 경험론의 일종이다.
그것은 이성을 감각과 대등한 독립된 인
식으로 보지 않고 이성의 판단이나 추리 등의 능력을 오직 감각적 지식을 이차적으로 분석하
고 종합하는 일일 따름이라고 보며, 극단적으로 이성을 감각의 한 변형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
론이자 학설인데 유물론, 실증주의가 이것에 해당된다.
감각론은 일정한 가치론 특히 도덕론
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이 보통인데 그 도덕론은 이를테면 윤리적 감각론이라고 할 수 있는
쾌락주의(디오게네스)와 공리주의(밴덤)의 형태로 나타난다. 감각론은 프로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스콜라철학, 근세철학의 홉
즈,로크,버클리,흄, 밀 등 주로 영국 경험주의 철학에서 개화했다.
특히 칸트 미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쉴러(Friedric von Schiller)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서한」에서 '아름다운 영
혼'(schlne sheele)에 대해 말하며 예술은 하나의 유희적 활동, 즉 하나의 놀이이며 미학의 영역은 정신과 소재, 재료와 형상 사이에 있는 화합의 장이라는 원리에서 출발한다고 하였다.
이성과 감성을 통합하는 것으로서 유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쉴러의 학설은 이성중심주의의
독단에 의해 깊이있게 탐구되지 못한 영역, 즉 미의 주관성을 다루었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칸트에게 영향을 미친 라이프니츠(Gottgried Wilhelm Leibniz)가 데카르트에 반대
하여 생명, 형상, 종말에 관한 개념을 다시 회복시킨 것에 대한 발전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보아서 즐거운 것이다'란 아퀴나스의 정의가 근세철학에 이르러 철학적으
로 탐구되며 미와 예술에 있어서 감각, 감성, 감정의 중요성이 새삼 재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철학에서 감성은 이성, 오성(悟性) 함께 인간의 인식능력의 하나라고 가르친다. 감성은 어
떤 의미에서 수동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내는 반면에 인간과 세
계를 잇는 원초적 유대로서 인간생활의 기본적 영역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감성은 이론
적 인식에 있어서는 이성적 사고를 위한 감각적 소재를 제공하고 실천적, 도덕적 생활에 있어
서는 이성의 지배와 통솔을 받는 감정적 소지(素地)를 마련하며, 미적 인식에 있어서는 자신
의 순수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적 생의 상징적 징표가 된다.
칸트 미학에 있어서 미적 감
정은 오성과 상장의 조화 속에, 그리고 상상의 조화로운 활동 속에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이
예술적 착상의 창조적 정신인 천재성도 전적으로 이성과 상상의 특별한 결합에 있으며, 이러
한 주관적 조화론이 칸트미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감성에 비해 보다 주관적 동요의
느낌을 감정(feeling)이라고 부르는데, 워드와 분트(W. Wund)예 의해 감각은 객관적이고 감
정은 주관적이라고 분류되고 있다.
독일사람들의 용어에 심정(心情, gemit)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감정과 의지가 결합된 것
이라고 한다. 또 심리학에서는 감정과 지각이 합쳐진 상태를 '상모적(相貌的) 지각'이란 용어
로 정의한다.
쇼펜하우어는 온통 고해(苦海)인 이 무망한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며 백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썼는데, 이 포기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니 그가 불교의 세계관에 영향받아 염세주의를 창안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서라도, 이성이 아니라 감성-더 정확하게는 감정-에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감정 또한 복잡하기 짝이 없어서 세 가지의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희로애락 즉,
공포 애정, 증오 등 격렬하고 강렬하여 폭발적으로 표현되지만 오래가지 않는 것을 정서(情
緖)라고 하구 걱정, 불안, 미소처럼 정서에 비해 약하지만 비교적 오래가는 것을 정취(情趣)
라고 하며, 유머, 분함, 비애, 외경 등과 같이 가치인식이 가해진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감정을
정조(情調)라 한다.
예술에 있어서 감이란 본능에 가까운 감각에 호소한다기보다 보다 복잡하
고 고차원적이며 직관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예술작품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느낌은 역시 우
리가 흔히 말하는 육감이란 것과 무관할 수 얼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