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머리말
덕수궁미술관은 지난 2년 동안 두 번의 드로잉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00년 《선과 여백 : 작고작가 드로잉전》과 2001년 《손의 유희 : 원로작가 드로잉전》이다. 이 두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드로잉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갔고 새로운 모색을 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선과 여백 : 작고작가 드로잉전》에서는 우리 미술가들이 20세기 초 드로잉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어떻게 수용하고 전개시켜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출품작들은 주로 습작으로서의 드로잉으로 인체나 자연을 묘사하거나 추상을 모색하는 작품들이다. 《손의 유희 : 원로작가 드로잉전》에서는 1954년 이후 열린 본격적인 해외유학과 여행으로 서구미술을 경험하고 서구미술사조로부터 받은 자극을 드로잉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콜라쥬 등 새로운 기법을 실험한다던가 유채의 실험적 시도를 드로잉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2003년에는 완결편으로써 현대적 개념의 드로잉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글은 실제 출품 가능작들을 중심으로 전시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드로잉적 성향이 강한 작가들의 기발표작을 자료로써 활용하여 전시의 방향을 가정적으로 잡아보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거나 혹은 출품작과의 차이에서 오는 전시구성의 변경이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언급한다. 이 글이 내년도 전시의 토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드로잉전을 개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미술이 ‘드로잉화’ 되어가고 있음을 짚어보기 위함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1960년대 미니멀리즘과 1970년대 개념미술 등 그리지 않는 회화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그림의 상실 시대에 ‘그린다’라는 개념에 다시 주목하게 되고 회화의 근원적인 문제에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1)
그러면서 미술을 만드는 활동보다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의 의도자체를 중시하게 되었고 개념에 집중하게 되었다. 의도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은 미술의 본질이 드로잉이라 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회화에서 의도와 발상이 중시되고 완성작이라는 의미가 쇠퇴해가는 현대미술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되는 드로잉과 회화의 차이를 정의 내리기란 어렵다. 현대미술에서의 드로잉은 장르라기보다는 독자적인 예술 가치를 갖는 표현방법이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2)
이 글에서는 드로잉을 ‘그린다’는 충동을 표현한 것으로 정의하고 드로잉 작품들을 현상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그래서 ‘드로잉화’된 현상을 짚어보고 드로잉적인 작품을 통한 우리 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함을 전시의 최종목표로 두고, 본고에서는 현대미술에서의 드로잉의 의미와 미술사에서 드로잉 개념의 흐름을 살펴보고, 2003년 드로잉전의 방향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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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스본의 , <호앙 미로 드로잉전> 등 많은 국제 행사와 드로잉 관련서적에서 우리는 드로잉에 대한 국제적 관심의 추이를 지켜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8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한국판화·드로잉 대전>(1980), <드로잉81전>(1981) 등이 개최되었고, 81년도에는 미국의 브룩클린에서 전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2) 조선령,「드로잉의 실험과 확장 -‘드로잉’에서 ‘드로잉적’인 것으로」, 『드로잉의 실험과 확장』, 부산시립미술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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