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Ⅲ. 《카셀도큐멘타ⅩⅠ》
독일 카셀에서 열린 《카셀도큐멘타ⅩⅠ》은 현재 서구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 행사는 최초 1955년 카셀 아카데미의 교수인 아놀드 보데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이차 세계대전의 혼란기 속에서 청년 작가들에게 모더니즘 양식을 알리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히틀러에 의해 ‘퇴폐예술’로 낙인 찍히는등 혁신적 이고 진취적인 미술행사로 인식되고 있으며 올해로 11회를 맞이하고 있다.
5년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유럽의 대표적 미술전람회인 카셀도큐멘타는 올해는 특별히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구이 웬이저(Okwui Enwezor)2)를 책임 큐레이터로 선임하고 카를로스 바수알도(Carlos Basualdo), 우테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 수잔느 게즈(Susanne Ghez), 사라 마하라이(Sarat Maharj), 마크 내쉬(Mark Nash), 옥타비오 재이스(Octavriozays)등 6명의 명망있는 큐레이터들이 한 팀을 이루는 공동 큐레이팅 형식으로 진행 되었다.
2001년 3월 15일 비엔나를 시작으로 뉴델리, 베를린, 루시아주, 라고스, 그리고 2002년 9월 15일 카셀에서 막을 내리는 《카셀도큐멘타ⅩⅠ》의 플랫폼은 장장 18개월에 걸쳐 여러 대륙과 도시를 거치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 왔는데 이 전시에서 플랫폼이란 각 전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종착역의 의미로서 각 플랫폼은 변화와 재생을 동시에 겪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의미와 역사적 체험에서 야기된 여러 토론 내용과 절차 등을 다루고 있다.
다섯가지 서로 다른 현대미술의 담론으로 구성된 《카셀도큐멘타ⅩⅠ》은 오늘날의 미술 문화를 자리 매김하는 개념적 양상을 글로벌화된 연결고리 구축과 세계의 문화가 서로 공유되는 이해의 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나아가 토론, 회의, 워크숍, 서적, 필름 및 비디오 프로그램이라는 일련의 5개의 플랫폼의 구성 즉, 실현되지 않은 민주주의(플랫폼1)과 진실과 실험 : 변화하는 정의와 진실과 화해의 과정(플랫폼2), 크레오라이트와 혼성화(플랫폼3), 포위된 4개의 미국도시, 요하네스버그, 라고스, 킨스하사(플랫폼4), 본전시인 플랫폼5 등은 현대미술의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에 대한 비평적 토론 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기획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도 한다.
과거 어떤 도큐멘타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의식과 실현 개념으로 전시를 조직하고 있는 이번 《카셀도큐멘타ⅩⅠ》은 단지 전시 자체 공간만으로 구성되었던 과거의 도큐멘타와는 달리 전시 시작 단계부터 현재까지 개최된 동시대의 미술, 사회, 정치, 경제 등에 관한 쟁점들은 주제로 하는 4번의 워크샵과 진행중인 전시들을 묶어 하나의 시리즈로 기획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올해 《카셀도큐멘타ⅩⅠ》은 모두 116명의 참여 작가들과 그룹들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출품작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 되었다고 하며 루이스 부르주아, 스티브 맥퀸, 제프월, 알란 세쿨라, 허쉬 혼, 제임 스 콜만, 데이비드 시먼 등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사진, 영상, 비디오, 컴퓨터등의 멀티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표현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들을 작품과 조합하여 이 광범위하고 복잡한 전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빈딩 맥주 공장 자리였던 브라우라이(도판5, 6),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도판7, 8), 도큐멘타홀(도판9, 10) 오랑제리(도판11), 컬쳐 반호프(도판12), 빌림스헤어(헤라클레스 신전)등 5군데의 구별된 장소에서 개최된 올해 《카셀도큐멘타ⅩⅠ》은 하루에 다 보기에는 사실 무리이고 최소한 이틀은 보아야 될 정도로 시내 곳곳에 분산되어 거대한 미술축제의 성격을 띄고 있었는데 전시기간이 지남에 따라 설치된 작품들은 워크숍이 되기도 하고 오피스, 공연을 위한 무대, 그리고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나는 상호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이미 약속된 날짜와 시간에 열리게 될 연극, 콘서트, 퍼포먼스를 위한 연주들, 그리고 영화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의 짧은 프로젝트들이 잇달아 개최되는데 이 행사가 끝나갈 무렵 참여 작가들과 그들의 일원은 상호간의 의사 소통을 위한 행동을 취하며 작품을 들고 직접 관람객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행위적 축제로 이 전시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개념적인 이벤트들이 불확실하고 폐쇄된 공간을 거부하는 현대미술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미적 관점을 관람객들과 함께 공유 하고자 하는 카셀 도큐멘타의 진실된 모습이라 할 것이다.
백남준, 육근병 등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들이 참여했던 카셀 도큐멘타는 회를 거듭할수록 현대 미술을 선도하는 개념의 양산과 국가와 인종을 막론한 비평가, 작가, 미술 관계자간의 지적 네트워크 구축과정을 본 전시 이상으로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시아의 뉴델리에서부터 유럽의 베를린까지 도큐멘타가 주목하는 그 층위 또한 다양했으며 지금까지 서구 미술계가 도외시했던 타문화의 이해에 대한 관심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유럽 화단이 이제 주변 미술계와 의사 소통을 균등하고 평등하게 유지시켜 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이번 전시를 보면서 어쩌면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술 문화의 변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한 도큐멘타는 현재 독일을 서구 현대미술의 보고로 만드는 중요 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창시자인 아놀드 보데, 브라넬 카셀 시장, 미술사가 하우 드프만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첫회 프리데리치아늄 미술관만을 전시공간으로 이용하던 이 행사는 폐 공장을 이용할 정도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전시예산 또한 총100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회 큐레이터인 보데가 총 570점의 148명의 작가 6개국 참가국, 야수파, 입체파, 청기사파, 그리고 미래파, 표현주의 흐름을 보여주며 한스 아르프, 파블로 피카소, 알렉산더 칼더등이 참여한 3회 도큐멘타까지는 유럽 중심의 현대미술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었다면 4회부터는 유럽 이외의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새로운 성격을 보여주기 시작하였으며 지난 10회(1997)에는 캐서린 다비드라는 첫 여성감독을 선임함으로써 기존의 일관된 사회적 시각을 타파하기도 하였다. 또한 토론과 담론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시내용을 보여줌으로써 타 현대미술 행사와 구별되는 차이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올해 전시는 제 3국 출신의 예술 총 감독을 중심으로 공동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지난 회보다 더욱더 문화적 담론형성과 네트워크 구축의 강조, 중심과 주변의 상호 관계성을 주목하는 카셀 도큐멘타 특유의 행사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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