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남미 문화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정체성
브라질은 우리나라의 정 반대편에 있다. 지구본을 놓고 서울에서 지구의 중심을 향해 약 45。 기울기로 관통하면 브라질에 이른다. 비행기로 만 하루가 걸리는 거리이다. 인구가 약 2천만 명에 육박하는 상파울로 시는 뉴욕, 동경, 파리, 모스크바, 북경과 더불어 세계 10대 거대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다.
지구본을 놓고 보면 파나마 운하가 있는 중미를 중심으로 마치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마치 누글누글한 엿판을 양쪽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두 대륙은 엇 대칭의 모습으로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다. 언어상으로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대륙은 영어권에,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대륙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권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차이는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경영의 소산이다.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유럽의 군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새로운 통상로를 개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15세기에 비롯된 지리상의 발견은 나침반의 사용에 의한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의 거점이었다. 1500년, 포르투갈의 선장 카브랄(Cabral)은 바스코 다 가마의 항로를 따라 인도로 향했으나 갖은 신고(辛苦) 끝에 도착한 곳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처음에는 먼저 도착한 스페인인들에 의해 ‘참다운 십자가의 섬(Vera Cruz)’으로 불렸지만, 그 뒤 그곳에서 나는 특산물의 이름을 따 브라질(Brazil)로 개명되었다. 한편,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제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이사벨라 여왕의 재정적 후원아래 이태리 출신의 선원인 컬럼버스(1446?-1506)가 1492년에 산 살바도르에 상륙한 이래, 스페인인들은 신대륙 정복을 가속화하여 1519년에 코스테스(Hernando Cortez:1485-1547)에 의해 멕스코의 아즈테크 정복이, 1533년에 피사로(Francisco Pizzaro:1471?-1541)에 의해 잉카제국이 각각 정복되기에 이른다. 이후 스페인은 식민지 경영을 극대화하여 종래는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제국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는 유럽의 다른 열강에도 영향을 미쳐 영국과 프랑스가 동참하게 된다. 영국은 헨리 7세의 후원하에 카보트 왕자(John Cabot)가 1497년 카나다, 뉴펀들랜드, 라브라도르 등지를 탐험, 영국의 소유권을 확보하였으며, 프랑스의 경우는 1534년에서 41에 걸쳐 까르띠에(Jacques Cartier)가 카나다의 세인트 루이스 지방을 발견하였고, 1604년에는 노바 스코시아(Nova Scotia)에 식민지를 건설, 1608년에 샹쁠랭(Samuel de Champlain)이 퀘백을 복속시키게 된다.2)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우는 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인들은 문화적 정체성의 혼미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중남미 국가들은 인종학적 혹은 문화적 측면에서 볼 때, 공통적으로 혼성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이 그렇고 이민이 또한 그렇다. 혼혈과 이민은 중남미 문화의 핵을 이루는 근본 요소들이다. 백인, 흑인, 원주민, 혼혈인, 아시아인들이 뒤엉켜 사는 상파울로 시는 가히 인종 전시장이라고 부를 만 하며, 이는 뉴욕, 파리, 런던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1998년, 제24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예술감독 파울로 헤르켄호프(Paulo Herkenhoff)가 자국의 역사 속에서 식인풍습의 전통을 추출하여 ‘식인풍습과 역사의 핵으로서의 카니발리즘(Antropofagia and Histories of Cannibalism of the Nucleo Historico)’을 주제로 삼은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는 브라질 원주민들이 행했던 피와 살의 의식(儀式)을 오늘의 국제적 정세에 대입하여 해석하고자 했던 것이다.
제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육을 먹는 의식은 공동체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고 혼탁해진 영혼과 삶을 정화시키기 위한 기제이다. 그것은 봉헌의식에서 연유한다. 브라질 원주민들은 그러한 식인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헤르켄호프는 이 점에 착안했던 것이다. 그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중동·유럽·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 각 권역의 큐레이터들에게 식인풍습을 과제로 주어 세계 문화의 새로운 ‘지도그리기(cartographing)’를 시도하였다.
유럽인의 방식에 익숙한 ‘메르카토식’ 지도작성법이 아닌, 자국의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순전히 자신의 시선으로 ‘길(Roteiros)’을 찾아 나가자고 제안하였다. 그 결과, 아시아 지역을 큐레이팅한 태국의 미술사가 아피난 포샤난다(Apinan Poshananda)는 카니발리즘을 후기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나섰다. 즉, 인육을 ‘먹는(to eat)’ 카니발리즘의 특성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금융기관이 아시아의 통화(通貨)에 가하는 공략이나 약탈에 비견될 수 있다는 정치적 해석을 가했던 것이다.
‘먹는다’는 가학적 행위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의 막강한 금융자본에 의한 무차별적 탐식이 숨겨져 있다는 식이다.
헤르켄호프의 뒤를 이어 제25회 상파울로 비엔날레(2002)를 기획한 알퐁스 후그(Alfons Fug) 역시 남미가 처한 정치·문화적 현실에 주목한다. 그는 비유럽권의 문화에 기획의 초점을 맞추었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정치·경제가 분리, 심화되는 현시점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역설한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두 개의 반구(hemispheres)를 묶는 본드의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유러피안·아프리칸·인디안·아시아인들이 혼재한 가운데 생산활동을 벌이는 상파울로 시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남-남의 통로(South-South Track)를 따라 비유럽 문화 사이에 다리를 건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후그는 이전 비엔날레보다 더욱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을 초대하였던 것이다.3)
헤르켄호프와 알퐁스 후그의 시각의 공통점은 유럽과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비단 중남미뿐만 아니라 아시아 내지 아프리카 제국이 경험했던 뼈아픈 상흔이 존재한다. 소위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의 수용으로 대변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모더니즘의 수용사를 돌이켜 볼 때,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역사적 경험은 기묘한 데가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럽과 같은 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후대에 와서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해야 하는 역설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의 문화적 뿌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의 유럽문화이다. 이는 현재 중남미 권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미루어 볼 때 자명한 사실이다.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로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유럽이 이 권역의 문화적 토양임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보르헤스와 마르께스는 스페인어로 창작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설 속에는 역사를 통해 배태된 남미 특유의 정신과 문화적 전통이 꿈틀대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미의 문학과 예술에는 작가들의 현실참여 내지 사회의식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19세기 말엽, 독립군주제 하에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브라질을 제외한 대다수의 라틴 아메리카 제국은 시민전쟁과 폭력, 독재로 얼룩져 있었다.
그 와중에서 시인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예술상의 테크닉을 차분히 연마하기보다는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예술의 현실참여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유럽과 남미의 예술을 비교해 볼 때, 유럽의 예술사가 테크닉의 전승사인 반면, 라틴 아메리카의 그것이 그때 그때마다 섬광처럼 나타나는, 진 프랑코의 표현을 빌리면 ‘신선한 출발(fresh start)’인 까닭은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예술이 지닌 독특한 역사와 환경에 기인한다. 이러한 양상은 유럽과 매우 상반되는 것이다. 가령, 유럽의 미술사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단선적 역사이다.
희랍에서 출발하여 중세, 르네상스, 근대, 현대를 거치는 동안 유럽의 미술은 선대의 유파가 후대의 유파에 영향을 미쳐 분명한 계보를 형성한다. 알프레드 주니어 바(Alfred Jr. Bar)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유파의 퍼레이드는 마치 덩굴성 식물의 뿌리처럼 후대로 내려올수록 곁가지를 쳐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반면에 서구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미술사는 파편화된 미술사이다. 그것은 외부적 충격이나 내부적 동인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불연속선을 이룬다.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얼마 후 또 다른 섬광이 이는 충격의 연속선을 그린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모더니즘, 신세계주의, 인디안주의의 사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적으로 사회적 태도에 기인한다.4)
기댈 전통이 없다는 사실은 결국 ‘모태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하는 요인이다. 전통의 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반대급부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갈증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경우,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마치 신원을 모르는 고아가 스스로 출생증명서를 만드는 것처럼 힘겹고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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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하순, 『서양사총론』, 탐구당, 1982, pp.289-191.
3) 윤진섭, 「상파울로비엔날레, 라틴문화의 거점」, 『Art in Culture』, 2002. 7월호 pp.135-136.
4) Jean Franco, The Modern Culture of Latin America, Praeger, p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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