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로 비엔날레에 관한 소고(小考)

윤진섭(미술평론가, 호남대교수)

 I. 서 론
 II. 남미 문화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정체성
Ⅲ.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성공 전략
Ⅳ. 나오는 말
* 참고문헌 및 도 판

Ⅲ.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성공 전략

제1회 상파울로 비엔날레가 열리기 전만 해도 브라질의 미술은 시대적 조류에 뒤쳐져 있었다. 브라질에 추상미술이 수입된 것은 1940년대에 이르러서였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브라질 미술은 전통적인 아카데미시즘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미술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의 분수령을 이룬 것은 1951년의 비엔날레 개최였다. 1951년 10월 20일, 비엔날레가 오픈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브라질의 현대미술은 점차 ‘코스모폴리턴’한 시각을 지닐 수 있게 되었고, 여타의 산업국가들과 더불어 현대성에 대한 동반자 의식을 갖게 되었다.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인 평균적인 감각은 브라질인들로 하여금 적어도 다른 나라에 뒤쳐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에 관해 1970년 마리오 페드로사(Mario Pedrosa)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업적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 브라질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록 베니스 비엔날레를 본 따 만들기는 했지만, 브라질 미술을 가두고 있던 좁은 틀, 즉 지역적인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비엔날레의 장점이 세계각지에서 미술관계자들이 모여 서로 소통을 하고 친교와 더불어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제1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는 1,854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프랑스를 대표하여 피카소, 알베르토 쟈코메티, 앙드레 마송 등이 참가했으며, 벨지움의 르네 마그리뜨와 폴 델보의 작품들이 선보였다.

이러한 세계적 거장들의 참가는 미국의 게오르그 그로츠를 비롯하여 리오넬 파이닝거, 에드워드 호퍼, 스튜어트 데이비스, 마크 로드코,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의 작품들과 더불어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권위를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이 전시회에서 브라질이 거둔 실익은 초대작가 부문에 라사 세갈, 칸디도 포르티나리,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 리비오 아브라모와 같은, 당시로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브라질 작가들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것이 개최국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인데, 이 점은 우리도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제1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는 오스트리아, 벨지움, 일본, 캐나다를 비롯한 23개국에서 729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는데, 이 숫자는 건축 32명, 음악 3명, 영화 5명이 포함된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체 숫자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40 명이 브라질 작가라는 점이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비엔날레의 설립자인 시실로 마타라초와 그의 부인 욜란다는 넬슨 록펠러의 소개에 의해 뉴욕 근대미술관(MoMA)의 멤버가 되었다.5)

세계적인 명작들을 선보이는 일은 초기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기획 전략이었다. 1953년에 개최된 제2회 비엔날레에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과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초대한 것과 같은 사례가 그것이다. <게르니카>는 이 전시 이후에 안전과 보존을 이유로 현재의 소장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밖을 떠난 적이 없으니, 이 또한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파울로 시 설립 400주년 기념에 맞춰 2회 행사의 오픈은 1953년 12월로 연기되었다. 장소는 이비라푸에라 공원 안에 오스카 니메이어의 설계로 지은 ‘시실로 마타라초’관이었다. 이후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줄곧 이 전시관에서 개최되게 된다.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세계적 거장들을 위한 특별전시실을 마련하였는데, 2회에는 폴 클레, 피에트 몬드리안, 에드바르 뭉크, 알렉산더 컬더, 제임스 앙소르, 오스카 코코슈카 등이 출품하였다.

이 짧은 지면에 50년에 이르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2회 행사에 초대된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왜 상파울로 비엔날레가 세계적인 비엔날레로 성장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해소하게 된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피카소와 브라크를 비롯하여 후안 그리, 페르낭 레제, 소니아와 로버트 들로네, 마르셀 뒤샹과 같은 입체파의 거장들의 작품 57점을 콘스탄틴 브랑쿠시, 쟈크 립시츠, 오시프 자드킨의 작품들과 함께 제시한 프랑스, 움베르트 보치오니, 카를로 카라, 쟈코모 발라, 루이지 루솔로, 지노 세베리니 등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 40여 점을 출품한 이태리, 저명한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가 선정한 헨리 무어의 작품을 출품한 영국 등으로 인하여 비엔날레는 가히 현대미술을 등에 업은 각 국의 경연장을 방불케 하였다.

이상의 기술에서 알 수 있듯이,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각 시기의 현대미술 조류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거나, 미술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인지도와 중요성을 높여 나갔다.

바넷트 뉴만, 재스퍼 존스, 세자르, 죠셉 앨버스, 앤소니 카로, 바실리 칸딘스키, 시그마 폴케, 필립 거스통, 피에르 만조니, 펭크, 조나단 보로프스키, 재니스 쿠넬리스 등 미술의 중요한 시기에 등장한 작가들을 초대함으로써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역사가 곧 현대미술의 역사라는 점을 암암리에 각인시켰던 것이다. 50년에 걸친 역사상 24회의 전시에 148개의 참가국, 연인원 10,600명의 초대작가, 56,400점의 출품작이 이 점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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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ienal 50 Anos,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