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서언
미술관의 작품 수집은 당대의 미술 문화를 향유하고, 미술 작품을 보존 관리하여 문화유산으로서 후세에 물려주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 그러므로 각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행해지는 작품의 수집은 국내외의 우수한 미술 작품에 대한 조사 연구 및 객관적인 수집 절차를 통해 미술관의 수준 높은 상설 전시를 구성하고 나아가 작가 및 작품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 확보는 물론 긍국적인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작품의 수집이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은 미술품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 때문이다. 미술관이 작품을 수장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삶의 흔적을 소중한 장소에 보관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행위와 같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궤적이 머물렀던 장소에 징표로써 수 만년의 역사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기를 원한다. 여기에 더하여 우수한 문화와 교양과 지성을 겸비했던 이들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미술관이 역사 속에서 처음 등장하였을 당시 그 수장품의 의미는 집권자나 지배층의 신대륙이나 미개척지로의 여행이나 전쟁 등을 통해 얻게 된 귀중한 물건 등 을 모아 자신의 힘과 재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이후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미술관이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근대적인 개념의 미술관이 성립되면서 미술관의 작품 수집은 당대 문화의 우수성을 서로 즐기고 향유하며 이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문화라는 유전인자를 통해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종족 보존 본능’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하나의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미술관의 소장 작품이다.
미술관은 당대 문화의 우수하거나 독특한 면모의 상징물을 추리고 가려내어 수집함으로써 그 시대 문화를 후대에 남기는 기초 자료를 마련하는 동시에, 당대 문화 현상을 파악하고 집대성하며, 시대적 문화의 주역들과 감상자들을 매개한다는 일차적인 미술관의 소임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미술품 수집의 의미는 그러나 미술과 사회와의 연관성에 관한 이해와 연구가 깊어지면 깊어 질 수록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미술과 사회는 크게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1950년대 서구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의 미술사에 대한 연구와 그 학문적 업적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사회와 유리된 별개의 현상으로 보았고 전체적인 삶과는 관련이 없는 고립된 분야라고 인식되고 있었고 이러한 견해는 아직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술과 사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회화가, 미술이 한 사회 집단의 문화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나아가 미술 작품도 평가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읽을 수’ 있다는 엄청난 확신을 주기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미술관은 바로 미술을 사회적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로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우리에게 많은 이해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미래의 발전된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국가 구성원들이 사회의 흐름을 읽고 우리의 후손들이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당대의 문화유산인 미술품을 수집해야 한다. 미술관의 책무를 재정의 부족과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 어렵지만 계속해서 이 일을 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교육, 오락, 실용을 위해 수집, 분류된 물건들의 집합체”인 미술관의 수장품 들을 통한 미술관 문화의 정립을 위해서도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 정책은 시대적인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면서 나름의 일정한 계획과 방향, 시간과 경비의 확보가 전제된 가운데 투명하면서도 나름의 미감을 충분하게 반영한 미술관의 올곧은 시각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와 시대를 읽기 위한 미술관의 수집품은 오직 미술품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시할 수 있는 실물뿐 만 아니라 모형이나 모사, 사진 등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 보조 자료가 없이 그 자료, 작품 자체만으로 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작가와 관련한 유품이나 기타 자료들도 미술사적인 사실들을 증거 해 줄 따라서 일반적으로 전시에 사용되지는 않지만 미술관에서 길이 보존해야 할 성질의 자료들도 많이 있다.
고로 미술관의 자료라 함은 작품과 그 방계 자료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경우 작품이 더 중요하고 보조 자료로 구분된 것은 소홀히 취급해도 된다는 인식은 적절하지 않다. 미술관의 수장고에 들어온 모든 작품, 자료는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포함하고 있다,
미술관의 작품을 획득하기 위한 정책은 미술관의 기본적인 설립 목적을 반영해야 하며, 미술관의 존재의 이유는 소장품 확보와 이의 과학적인 보관, 관리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제로 현실에 반영 해야 하는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오늘의 사회를 ‘읽을’ 수 있는 미술품 수집은 사실은 매우 어렵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의 사회와 문화를 당장 분석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품 수집을 위해 이를 발굴하고 조사 연구해야 하는 학예연구원들의 경우 우리의 근 현대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고 또 연대기로 분절시킬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성으로 인해 향후 5년 뒤, 10년 뒤의 사회적 평가를 예감해 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항상 따른다.
이는 향후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될 현재의 사회현상, 미술현상을 판별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수집을 위한 조사 연구는 다름 아닌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중요한가 뿐 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이 , 어떤 사조나 화파가 또 작품이 중요한 사회현상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 중 가장 큰 것은 인간의 독특한 성징으로 인해 미래를 예측하고 가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저러한 사조나 유파, 운동들 중에서 어느 것을 가려내어, 미래의 관점에서 ‘중요하다’라고 단언해야 한다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을 해 내야 한다는 것은 항상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은유하고 상징하는 작품들을 가려낸 결과물을 전시라는 행위를 통해 또 다시 가려내야 한다는 한계 때문에 일부만을 만날 수밖에 없음에 아쉬움이 남지만 그 가려내기의 곤혹스러움의 일단을 이번 신 소장품 전시회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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