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주의 연구 - 들뢰즈와 가타리를 중심으로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I. 서론 II. 본론
  1.욕망하는 기계
  2.기관없는신체
  3.유목민과 탈주
Ⅲ. 결론
  * 참고문헌

II. 본론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은 크게 보아 196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포스트구조주의라는 테두리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소위 포스트구조주의는 로고스에 기초한 플라톤의 형이상학에 반대하며 이성, 주체, 합리성, 진보 등의 개념을 비판하는데, 특히 탈중심, 탈주체, 비이성, 미시적인 것에 주목하면서 동일자 철학을 해체하고 차이의 철학을 정립시킨다.

하지만 끊임없는 생성, 변이, 탈주를 추구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은 일반적인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이 지니는 비판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대안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논의가 왜 생산적인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들뢰즈의 경우 초창기 니체, 베르그송, 스피노자 등 선배철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비판철학을 형성하는데 다음의 언급에서 그의 관심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들뢰즈의 기획이 갖는 두 가지 근본적인 요소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공격을 하나의 정치적 과제로서 지적하고 있는 것과 철학의 중심적인 생산적 목적을 순수하게 적극적이고도 창조적인 사회의 건설로서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3)
“니체의 주요 목표는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는 것이며, 힘의 물리학에 기반한 생성의 철학을 개발하는 것, 긍정의 철학을 통해서 헤겔의 ‘부정의 부정’을 파기하는 것 ··· 이러한 시도는 들뢰즈 자신에게도 발견되는 시도이다.”4)


들뢰즈는 사물들과 사건들의 환원불가능한 차이와 복수성을 인정하고, 이를 총체성이나 보편성과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일종의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즉 그는 이데아와 같은 보편적인 일자와 그것의 그림자인 현실 세계로 양분하고 전자에 우월성을 부여한 서구철학의 초월적 형이상학을 공격한다. 플라톤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동일자 철학에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차이를 설명할 수 없고, 결국 그러한 차이는 동일성으로 환원되고 만다.5)

들뢰즈의 초기 저작들은 넓은 의미에서 플라톤에 맞서고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모순에 의해 발전하는 부정의 철학, 즉 헤겔의 변증법과 대립한다고 볼 수 있다. 헤겔과의 단절 또는 헤겔에 대한 타자는 언제든지 다시 헤겔의 변증법 테두리 안에서 다시 타자로 포함되기 때문에 그의 변증법적 틀을 총체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그 지반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헤겔 비판의 핵심과제이다.

그것을 위해 들뢰즈는 아무런 부정 없이 서로에 대한 긍정만을 사고하는 니체의 철학을 선택하며, 나아가 전통철학의 외부 또는 그것을 넘어선 사상가들을 주목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지니고 있던 들뢰즈는 프랑스 ‘68년 5월 사건’을 경험하고, 1969년 참여지식인이자 정신의학자인 가타리6)를 만나면서 그의 철학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사회·정치적으로 변환되었다. 이후 들뢰즈는 가타리와의 공동작업인 』안티-외디푸스』(1972), 』카프카』(1975), 』천의 고원』(1980),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 등을 통해, 소위 ‘유목주의’ 혹은 ‘탈주의 철학’이라 불리는 독특한 사유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 저작은 언어학, 정치학, 지질학, 문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학문들을 넘나들고, 또한 새롭게 창안한 여러 철학적 개념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거칠게 이들 사상을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욕망하는 기계’, ‘기관 없는 신체', ‘유목민적 주체’가 그것이다.7)

따라서 본고에서는 위의 세 요소를 중심으로 이들 사유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욕망하는 기계

‘욕망하는 기계(machine desirante)’라는 개념에 있어 중요한 특징은 욕망을 ‘결여’가 아닌 ‘생산’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이들 사상이 근본적으로 생산적인 성격을 가지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기계’8)의 개념을 통해 고정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운동, 변화, 흐름 등 생동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사유한다.

이 개념들은 이들의 첫 번째 공동저작인 "안티-외디푸스"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르게 욕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데, 들뢰즈는 “정신분석학의 이론과 실제 그 자체”9)에 대한 공격이라 말하듯, 책 전체를 통해 정신분석학과 프로이트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프로이트는 욕망의 대상들과 목표들의 표상 전체의 원리로서 양적 리비도를 발견함으로써 욕망하는 경제학의 기초를 세웠다”10)라고 지적하며, 욕망과 그 밑바닥에서 작동하고 있는 리비도에 접근한 프로이트의 성과를 인정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욕망이라 범주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데는 실패하였으며, 오히려 욕망을 단순히 가족 안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진정한 생산력을 단순한 표상적 징표로 대체함으로써 연극적으로 연출해 놓았습니다. ···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프로이트는 리비도로서의 욕망, 즉 생산하는 욕망을 발견하였지만, 그것을 외디푸스라는 가족적 표상 속에 가두어 놓았다는 것입니다.”11)

프로이트는 욕망 혹은 무의식의 근저를 거칠게 말해 성욕으로 여기며, 모든 욕망을 남근으로 귀착시킨다. 따라서 그의 도식 속에서 욕망의 문제는 ‘아버지-어머니-아이’의 삼각관계 속에서 해석되고 있으며, 그는 문제가 발생하는 시점으로 유아기를 지목하고, 문제의 내용을 환자와 아버지/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찾는다.

또한 프로이트는 욕망을 자기에게서 없는 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을 완전히 획득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욕망은 충족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따라 소위 정신분석학에서 결여로서의 무의식 개념이 도출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되게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 자체를 생산으로, 즉 실재를 생산하는 현실적 생산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욕망은 처음부터 결여를 모르며, 오히려 결여는 억압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내가 말하는 욕망은 어떤 결핍도 내포하지 않는다."12)
“인간에게 있어 욕망한다는 것은 생산한다는 것이며, 현실의 영역 내에서 생산한다는 것이다.”13)

따라서 이들은 욕망과 생산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나아가 욕망은 구조적인 것도 인물에 관한 것도 아니며, 더불어 상징적이지 않으며 표상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하는 생산은 사회적 생산과 다른 것이 아니다”14)라고 말하듯이, 욕망이 상징계 속에서 언어처럼 구조화된다는 라캉의 이론에 강하게 반대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욕망이 단순히 가족적인 것이 아니라 가족 외적인 것, 즉 사회전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15) 이러한 시도는 프로이트가 발견하고 라캉이 발전시킨 무의식과 욕망이라는 탈근대적 개념을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시키고자 함이며, 그 안에서 능동적인 전복의 힘으로써 욕망 개념을 위치 지우고자 함이다.

가타리는 “욕망은 반드시 교란자,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17)라고 지적하듯이, 욕망이 곧바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무절제한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무책임한 욕망의 발산은 사회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암적인 존재가 되겠지만, 반대로 사회를 탈주시켜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적 힘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한다.

욕망은 이들 철학을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소로서 작동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홀대 받아온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면서 그 욕망을 어떤 부정적인 것, 개인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욕망이 가지는 순수한 생성적 힘과 사회성에 주목한다. 바로 이것이 이들의 이론과 기타 현대 이론이 차별성을 보이는 지점이다.


3)마이클 하트, 위의 책, p.26.
4)로널드 보그, 이정우 역, 『들뢰즈와 가타리』, 새길, 1995, p.30.
5)김필호,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욕망이론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6, pp.6-7.
6)가타리는 1953년부터 자크 라캉(Jacques Lacan)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정신분석학을 연구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라캉주의자 쟝 우리(Jean Oury)가 설립한 보르드 진료소(Clinique de la Borde)에서 ‘제도적 정신요법(institutional psychiatry)’을 실험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후 영국의 로널드 랭(Ronald Laing), 데이빗 쿠퍼(David Cooper)와 함께 ‘반정신의학 운동(anti-psychiatry movement)’을 주도해 나갔다. 이를 통해 라캉의 정신분석학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하였으며, 특히 욕망이 상징계 속에서 언어처럼 구조화된다는 라캉의 이론을 거부한다.
7)로널드 보그, 앞의 책, p.150.
8)들뢰즈와 가타리는 기계와 욕망을 하나의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 기계는 정신분석학과 라캉의 용어로부터 벗어나 다른 길을 걷고자 하였던 가타리가 만든 용어로, 라캉의 구조 개념과 주체라는 혼란스런 개념을 기계로 대치한 것이다. 즉 구조는 정태적인 표상체계의 모델로서는 적절하지만, 역동적인 힘들의 관계로 구성된 무의식과 사회적 장에 적용시키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9) Gilles Deleuze(1990), Negotiations: 1972-1990, trans. Martin Joughi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5), pp.16-17. (앞으로 N으로 약칭)
10)Gilles Deleuze & Felix Guattari(1972), Anti-Oedip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Robert Hurley, Mark Seem and Helen R. Lan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77), p.299. (앞으로 AO로 약칭)
11) N, p.16.
12)질 들뢰즈, 이호영 역, 『욕망과 쾌락』,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 들뢰즈·가타리의 정치적 사유』, 푸른숲, 1997. p.110.
13) AO, p.27.
14)AO, p.30.
15)가타리는 대표적으로 메어리 반스 분석을 통해 정신분석학의 가족주의를 비판하며, 욕망은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펠릭스 가타리(1977), 윤수종 역, 『분자혁명』, 푸른숲, 1998, pp.143-157. 참조: 앞으로 RM으로 약칭)
16)김필호, 위의 책, p.2.
17)RM,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