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본론
2. 기관 없는 신체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기관 없는 신체는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내재적 실체’를 나타내며, 『천의 고원』에서는 ‘욕망의 내재성의 장(champ d'immanence)’, ‘욕망의 일관성의 구도(plan de consistence)’, ‘지구’ 등과 동일한 의미로 기술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알(卵)’에 비유하는데, 알은 말 그대로 아직 세포 분열이 일정 단계를 넘지 않아서 어떤 기관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를 지시한다. 기관은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조직된 신체이며, 그것은 제도화, 관습화, 안정화되어 있다. 알에 담겨 있는 에너지가 상이한 ‘강렬도(intensite)’18)에 따라 신체의 분화가 이루어지며 기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들뢰즈는 힘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혹은 무언가를 생성시키는 것을 뜻하고, 의지란 하고자 하는 것으로 의미한다고 그의 니체 연구에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강렬도가 힘에 해당된다면, 욕망은 의지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으며, 욕망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성분이 강렬도라면, 욕망은 그러한 강렬도의 힘에 속성과 양태를 부여하는 성분이다.19) 그러므로 욕망은 기관 없는 신체 위에서 강렬도를 조정하는 요소이며, 강렬도의 분포에 따라 기관이 새롭게 생기고 또는 사라지기도 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강렬도=0’의 상태를 말하는데 강렬도의 숫자가 올라간다는 것은 기관화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기관 없는 신체는 욕망과 강렬도에 따라 앞으로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하나의 잠재적 장이다.
“한마디로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의 부재에 의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결정되지 않은 기관의 존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결국은 결정된 기관들이 잠정적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해 정의된다.”20)
기관 없는 신체의 적이 단지 기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욕망의 흐름이 고착화되고 통일되어 한 기관이 고정된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며, 나아가 “유기체라 불리는 기관들의 조직화에 대립”21)하는 것이다. 즉 유기체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으로 통합시키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여 하나의 역할만 강요하는 것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들의 첫 번째 우려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욕망의 억압과 통제를 통한 표준화, 체계화, 조직화 등에 대한 경계심이다. 결국 흐름이 자유로운 기관 없는 신체와 흐름이 고정된 유기체의 대립이 중요하며, 이 둘의 성질을 분석하여 그 장단점을 찾고자 함이 이들의 기본적 목표이다.
다음으로 기관 없는 신체는 유기체뿐만 아니라 실존하는 모든 것들보다도 먼저 실존한다. 왜냐하면 기관 없는 신체가 없다면 욕망의 흐름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가 없는 셈이고, 그에 따라 기관도 분화되지 않을뿐더러 유기체도 형성될 수 없다.
이러한 기관 없는 신체의 우선성은 탈주선(linge de fuite)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사실과 동일한 맥락이며, 이에 대해선 다음절에서 다루고자 한다. 또한 기관 없는 신체 위에는 욕망의 흐름만이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기관이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탈영토화된 상태와 비교될 수도 있다.22)
하지만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드는 과정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그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점이다. 바로 이것이 기관 없는 신체에 대해 우리가 경계해야할 고유의 위험성이며, 저자들이 기관 없는 신체에 대해 두 번째로 우려하는 점이다.
“기관 없는 신체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경우, 또는 어떻게든 그것을 생산해내더라도 이 기관 없는 신체 위에서 아무 것도 생산되지 못해 강렬함들이 지나가지 못하거나 봉쇄된 경우. ··· 기관 없는 신체를 너무 격렬한 동작으로 해방하거나 신중하지 못하게 지층들을 건너뛰면 판을 그려내기는커녕 당신 자신을 죽이게 되고, 검은 구멍에 빠지고, 심지어 파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23)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기관 없는 신체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자는 것도 아니다. 기관 없는 신체는 새로운 기관의 형성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기관 없는 신체를 만드는 이유는 고정된 기관화에서 벗어나, 강렬도가 자유롭게 순환하고 통과하게 만들어 무언가가 새롭게 생성되고 변이할 수 있는 ‘충만한 기관 없는 신체’를 구성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기관 없는 신체, 탈영토화, 탈주 등의 개념은 일차적으로 획일화, 고착화에 대한 거부를 뜻하며, 이차적으로 끊임없는 창조와 변이를 준비하는 것이다.
기관 없는 신체에 있어서 문자 그대로 기관에 대한 파괴만이 그 목적이 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의 해체가 목표는 아니다. 이런 경우 생성의 순수한 잠재성마저 붕괴되고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사라져 우리의 몸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황폐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기관 없는 신체 만들기는 ‘텅빈 기관 없는 신체’만을 낳을 뿐이며, 죽음 혹은 파괴의 이미지로 바뀔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가장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욕망 그 자체가 어떤 이유로 부정적인 것으로 변질되는가에 대한 것이며, 이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이들의 과제인 셈이다.
18)강렬도는 강도, 강밀도 등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발생학자인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물리적으로는 준안정적인 상태에서 안정적인 상태로 이행하게 하는 잠재된 에너지이다. 따라서 힘의 강도 또는 힘이 집약되거나 응축된 정도를 의미하며, 힘의 변환을 통해 생성과 변이를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즉 강렬도의 분포에 따라 하나의 기관이 다른 기관이 되는 것이 가능한 실재적 이유를 보여준다.(이진경, 『노마디즘1』, 휴머니스트, 2002, pp.460-461.)
19)이진경, 앞의 책, p.465.
20)질 들뢰즈(1981), 하태환 역,『감각의 논리』, 민음사, 1995, p.78.
21)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1980), 김재인 역, 『천개의 고원』, 새물결, 2001, p.304. (앞으로 MP로 약칭)
22)동물의 행동에서 나온 개념으로 동물이 영토(territoire)를 형성하고 그것을 버리고 혹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행태로부터 들뢰즈와 가타리는 ‘영토화(territorialisation)’와 ‘탈영토화(deterritorialisation)’의 개념을 추출한다. 그리고 또 다른 성질의 무언가 위에서 새로운 영토를 재확보하는 행동으로부터 ‘재영토화(reterritorialisation)’의 개념을 만든다. 따라서 탈영토화는 어떤 영토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영토를 다른 것의 영토로 만들거나 다른 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것을 재영토화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이 개념들을 다른 분야로 확장시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태어나는 행위에서부터 그의 앞다리를 탈영토화하며, 그것을 땅으로부터 거두어내어 손으로 삼고, 나뭇가지들이나 연장들 사용하기 위해 그것을 다시 재영토화한다.(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1991), 이정임·윤정임 역, 『철학이란 무엇인가』, 현대미학사, 1995, p.100.)
23)MP, pp.30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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