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일상 속의 추상


김지원, <맨드라미>, 2006년 / <정물화 2>, 2000년


김지원(1961- )은 1990년대 말부터 <비슷한 벽, 똑같은 벽>, <일상>, <무거운 그림, 무거운 풍경>, <비닐그림> 연작들을 통해 작가와 일상, 사물과 사물간의 질서, 회화의 본질적인 요소와 그려진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독백과도 같은 복합적인 질문을 통해 그림과 대화하며 사유하는 방식의 회화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맨드라미> 연작은 2003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정물 연작으로, 작가의 작업실 앞마당에서 수북이 자라고 있는 맨드라미는 작가에게 생성에서 성장, 소멸에 이르는 단계의 압축적인 과정을 보여주었다. <맨드라미>(2006)는 2007년 개인전을 통해 신작과 함께 전시된 <맨드라미> 연작 중 대표작 중 한 점이다. 흐드러지게 핀 맨드라미 꽃밭에는 개미처럼 작아진 작가가 탐스러운 꽃 봉우리 위에 앉아 있다.

정물화 연작은 주로 일상의 하찮고 쓸모 없는 것들인 지압기, 장난감, 꽃병 등을 그린 것들이다. 여기 소개된 <정물화 2>(2000)의 지압기는 사실적이지만 세부 묘사를 대부분 생략하여 경쾌한 터치로 그린 작품이다. 조그마한 오브제(Object)가 화면 가득 채워지고 배경은 생략됨으로써 사물성이 강조된 이 작품은 공간에 정물이 떠있는 듯한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준다.

김지원의 시선 속에 포착되는 대상들은 평범하다 못해 그저 스쳐지나가고 말았을 것 같은 사물들이다. 들에 핀 맨드라미나 손에 쥐는 지압기는 아마도 작가의 일상 주변에 널려 있던 것들이었으리라. 작가는 이 사물들을 화면 가득히 그림으로써 관객의 주의를 그것들 위에 모으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작가의 주목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맨드라미꽃 혹은 지압기는 작가의 회화적 상상 속에서 알 수 없는 또 다른 대상 혹은 공간으로 바뀐다. 아마도 작가 스스로 잠시 몰입했던 상념의 공간일 것이다. 드로잉처럼 빠른 필치와 채 마르지 않은 물감의 섞임은 이 상념의 짧은 순간을 잘 보여준다. 검은 진과 티셔츠를 입고 작품에 등장하곤 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은 회화적 과정과 일상의 사색이 밀접하게 동기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작가에게 있어 세계는 일상 속에서 매 순간 그것의 존재를 알려오는 대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가시화하는 작가의 시선을 추상적인 눈(abstractive ey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곽덕준, <덫에 걸린 왕>, 1969년


곽덕준(1937- )은 일본 태생의 작가로 평면, 입체, 퍼포먼스, 설치, 사진, 비디오 등 다양한 조형 영역을 넘나드는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일본 화단에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1960년대에는 마티에르(Matière)와 선이 강조된 회화나 원시적, 만화적 형상을 도입하기도 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삶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였다. 이 후 곽덕준은 <타임>, <무의미> 연작 등을 통해 작가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허구성과 무의미함을 탐구하고 있다. <덫에 걸린 왕>(1969)은 당시 폐결핵에서 살아나온 경험과 생계를 위해 기모노(着物) 염색 일을 한 삶의 편린이 잘 반영된 작품이다. 화면을 호분과 연마된 모래 등을 써서 마치 석고나 본드를 발라 올려 만든 광택이 나는 도기처럼 표현하고, 그 위에 못으로 무수한 선을 긁어내었다.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작품 속에 눈이나 입 같은 얼굴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곽덕준의 '정체성'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학적으로 그려진 인간형상 아래 놓여 있는 고독감과 특정의 이미지에 대한 얽매임과 반복은 오늘날까지 일관해오는 그의 작품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기도 하다.


장화진, <Gate series>, 2004년


장화진(1949- )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장화진의 작품은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추상적인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기존의 평면 회화 작업은 가장자리에 선묘나 색면을 그려 넣어 감상자의 시선을 그림의 틀, 프레임(Frame)에 집중시킨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래된 사진이미지와 필름, 시멘트, 파편, 부식된 철판, 시멘트 벽의 부스러기 같은 산업폐기물을 화면 안에 도입하여 사회-문화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 그려진 '문'은 실제 문의 위치에 놓이도록 그려진 그림이다. 문에는 사실적인 환영을 불러일으키도록 손잡이와 열쇠구멍까지 장치되어 있다. 추상회화의 전형적인 제스츄얼한 붓질들로 덮여있는 캔버스의 표면과 단순한 선묘로 표시되어 있는 2개의 문 이미지는 단적으로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자주 여러 개의 화면을 이어서 그리는 등의 화면분할을 시도하는 장화진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하나의 화면에 두 개의 문이라는 장방형 형태를 대입하여 화면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있다. 여기 그려진 문은 그림이면서 동시에 관념적인 재현이기도 하고, 실제의 문의 환영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감상자는 기억과 언어적 습관, 심미적 판단을 동시에 떠올린다. 회화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공간으로 작용한다.

I. 모호함과 비가시성    II. 일상 속의 추상    III. 추상의 기술    IV. 추상적인 면 혹은 바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