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추상의 기술


고낙범, <셀 수 있는 셀 수 없는 1>, <셀 수 있는 셀 수 없는 5>, 2007년


고낙범(1960- )은 그의 작업에서 인물화(portrait)가 수직, 색띠가 수평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이 절대 평면의 세계에 Z축의 사선, 즉 입체적 맥락으로 전개되는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한다. 여기서 사선은 기존의 평면적 영역이 전혀 새로운 의미의 상호작용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오각형이라는 모티브에서 이 새로운 차원으로 이어지는 관념적 사선을 발견한다. 자주 인용되는 모닝글로리(나팔꽃) 역시 이 오각형의 차원과 연관된다. <셀 수 있는 셀 수 없는> 연작은 이 오각형의 세계를 기본 단위로 구성된다. 작가는 먼저 이 오각형을 기본 단위로 무한히 확장되는 평면을 디자인하고 각각의 꼭지점들에 하나의 구슬과 같은 색점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무질서한 배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팽창하는 은하계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무질서 속의 질서’를 지닌 자연의 구성 원리를 도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색점들은 시력검사표의 도형처럼 의도적인 현란함을 야기하거나 옵티컬 아트(Op-art)에서처럼 시각적 운동감(kinetism)을 불러일으킨다. 고낙범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각각의 색점은 세계의 상이한 조건과 상태들을 상징하는 스펙트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진 색의 구슬들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색다발(color thread)의 단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화면은 수없이 많은 색의 선, 시간적 흐름, Z축으로 이어지는 운동을 어느 순간 단면으로 잘라 정지시킨 것이다. 정지된 순간의 색점들은 셀 수 있지만 시간 속에서 이어지는 그것의 연속성은 헤아릴 수 없다. 그림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재현한다. 고낙범이 이제까지 그려온 수많은 단색의 인물화들을 떠올리는 것도 이 색채의 입자들이 구성하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색채는 추상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인 것이다.


정창섭, <귀 80-G>, 1980년


정창섭(1927- )은 1970년대 이후 ‘물아합일(物我合一)’을 지향하는 작품을 해 왔다. <귀 80-G>(1980)는《제2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80)에서 초대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1980년 초기부터 중기까지 지속된 <귀(歸)>연작 중 하나다. 그는 한지로 캔버스 전면을 싸고 화면을 몇 개의 단위로 구획하여 넓고 빠른 먹붓의 자국으로 화면을 구성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먹과 종이, 그리고 평면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연출하고자 하였다.

종이는 동양회화의 기본적 바탕이다. 표면과 깊이라는 두 개의 구조적 요소가 종이를 유화의 캔버스와 구분 짓는다. 서구의 유화나 드로잉 제작방식이 표면에 집중되어 있다면, 동양회화를 특징짓는 종이의 사용은 안료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시간과 농도의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재료의 조직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종이로 이루어진 화면은 재현을 위한 바탕(support)일 뿐 아니라 구조를 지닌 입체적 사물인 것이다. <귀(歸)>는 이러한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회화적 제스츄어는 사물로서의 화면과 빠르게 상호작용한 사건의 결과로서 화면의 구조 안에 기록된다. 그것은 환영처럼 보이지만 실은 물리적이고 입체적인 사건의 잔해로서 거기에 있다. 추상은 분명함과 냉정한 객관성에서 파생된다. <닥> 연작에서 보듯, 정창섭의 이후 작품은 종이라는 역사적 구조를 객관적으로 더욱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김홍주, <무제>, 2008년


김홍주(1945-)는 1970년대 중반, 당시 주류미술로 자리한 모노크롬과 동시에 전개된 소위 ‘극사실주의화’라 불리는 경향의 작업을 선보이며 미술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최근에 완성된 신작으로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 증식, 확장하는 듯 한 구성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그림의 경계 역할을 하던 프레임이 사라지고 캔버스 천 전체가 프레임이 된다. 1990년대 중반의 풍경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최근의 추상적 풍경화 그림들은 작가 특유의 꼼꼼한 세필로 깊이와 평면을 오가며 미묘한 공간감과 촉감을 불러일으킨다. 거대한 유기적 덩어리처럼 보여지는 추상적 풍경 속에는 산이 있고, 골짜기가 있고, 집이 있고, 사람이 있고, 나무가, 길이 있다. 미시적 세계 속에 삼라만상을 품고 있는 것이다.


박서보, <묘법 No.16-78-81>, 1981년


박서보(1931-)는 1970년대에 들어서 <묘법>연작을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를 일컬어 '백색 모노크롬 시대'라고 한다. 1982년 이전의 작품들은 크림색에 가까운 유채를 화면 전반에 바르고 그 색이 마르기 전에 위 아래로 선을 그려 화면을 채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묘법>연작은 자연을 완전히 소유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투명한 상태로 무화(無化)시키는 데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작품으로부터 형태, 형상, 구성, 색채 등 일체의 인위적 요소를 배제하고 거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듯한 무작위의 세계를 그려 나간다. 여기서 색채와 선은 회화적 극소화에 도달하고 칠하기와 긋기는 하나가 된다.


최인수, <Path>, 2004년


최인수(1946- )는 언뜻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구조물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작품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파내 자국을 남김으로써 미니멀(Minimal) 조각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구조물적인 성격을 이탈하고 있다. 따라서 매우 촉각적으로 인식되는 이 작품은 오히려 반(反)미니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점토 덩어리, 석고, 철 작품을 바닥에 굴림으로써 확장된 공간성을 인식하게 하는데, 작가는 그 표면을 마치 부드러운 재질로 제작한 것처럼 처리함으로써 구조물의 인상을 지워버리고 있다. 최인수는 "형태는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다"라고 하여 조각물이 굴러다니는 소리를 관람객들이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렇듯 그의 작업은 사유를 통해 단순한 시각적 대상물일 수 있는 조각의 지평을 한 단계 더 넓히고 있다.

I. 모호함과 비가시성    II. 일상 속의 추상    III. 추상의 기술    IV. 추상적인 면 혹은 바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