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수집과 그 기록
-미술관의 소장품관리(Collection Management)
이인범(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릿말
Ⅱ-1 작품수집에 있어서의 고려사항들
Ⅱ-2 작품수집-정책 수립과 실제
Ⅱ-3 양식(1, 2)
Ⅲ-1 소장품 기록의 중요성
Ⅲ-2 소장품기록의 실제
도 표
Ⅱ-2 작품수집-정책 수립과 실제
실제로 작품수집업무에 착수하게 될 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미술관을 에워싼 특수한
지적 환경이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 미술관이란 물질적 사회적 토대를 바탕으로하여 문
화적이고 지적인 요구 속에 태어난다고 하는 점에서, 이미 발생론적인 근거에서부터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관엔 그것을 낳은 역사와 시대의 시대정신이
배어있게 마련이다. 단적인 예로, 근대적인 미술관 컬렉션의 출발에 기본틀을 제공했던
르네상스시대 미술관들의 지적인 환경은 바로 그 시대의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의 만물은 일자의 유출'이라고 보았던 신플라톤주의의 지성사적 배경 속에서, 인문
주의자들은 인간은 그 자신의 창작물을 통해서 필경 이해될 수 있고, 자연은 그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거쳐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바로 이러한 지적 환경 의
요청에서 연구목적을 위한 컬렉션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우 불행한 경우이지만,
19세기의 민족주의의 표출이 「나폴레옹미술관」이었다면, 20세기에 들어 히틀러의「린츠」
계획에 오면 가히 광기로 가득찬 민족주의적 과대망상의 발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술관은 실체적 사물로서의 예술작품들의 저장소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마찬
가지로 어떤 의미에서는 특수한 세계관과 지식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미술관의
컬렉션이 특정한 인간의 삶, 지식,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이 사실로 인하여 인문사회과학
안에서 미술관은 늘 의미있는 대상으로 받아 들여져 왔다.
미술관의 이러한 발생적 배경과 그것을 에워싼 지적 환경 역시 일반적으로 정관 속의
설립목적에 형식적으로 명문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의 예에서와 같이 미
술관의 주요활동목표로서 작품수집정책의 지표를 드러낸다.
우리 미술관은 고금에 걸친 이 지역의 모범적인 작품들을 수집·전시함으로써 우리지방의
순수예술을 촉진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우리 미술관은 공공의 교육과 즐거움을 위하여 서구라파 19세기 회화작품을 수집·보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작품수집업무에 착수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러한 정관등을 통하여 우선 미술관의
임무와 그 임무의 한계는 무엇인지 따져봐야 하고, 미술관의 그러한 설립목적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은 어떤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지름길일 것이다.
이 사회,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요청하는 미술관이란 어떠한 미술관인가에 대한 궁리와 함께 경험적으로 이미 주어져
있는 소장품의 연구와 소장품을 중심으로하여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 또한 작품수집정
책수립에 매우 중요한 기초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어떤 특수한 성격의 미술관을
요청하는 한 사회의 성격에 대한 논의와 분석이 이모든 것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경과하면서 채택되는 정책이란 결국 십중팔구 선택의 폭이 넓
혀지기 보다는 의미있게 압축되고 축소되어질 것이다. 자기규정을 독특하며 명확하게 하고,
준수해야 할 활동의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확정지음으로써 컬랙션이 특성있게 발전하고
미술관이 미술관다워질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의미에서든 미술관 활동은 미적 가치 의
선택활동이다. 그래서 그것은 엄격해야 한다. 그 엄격성은 명확한 자기규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단지 모으고 쌓되 무익하고 무용한 것이 되고 말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러한 엄격성에 열린다.
이러한 엄격성에 덧붙여질 일은 합리적인 절차이다. 엄격성은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서만
보장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계획과 실행의 모든 단계에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과정이 요구된다.
수집계획에는 어떤 종류의 작품과 자료들을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지,
누가 담당해서 그 일을 수행할지, 어디서 어느기간 동안에 해낼지 등등 기본적인 사항이
포함될 것이다. 문제들은 늘 예산이나 공간상의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며, 따라서, 미술관
컬렉션의 발전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전략적 계획에 의하지 않고서는 매우 어려운 경우에
처하기 십상이다.
제한된 가용한 자원들의 범위 안에서 취해야 할 최우선의 수집 전략은 수집되는 작품이
가상적인 광범위한 자료들을 대표하는 것이든가, 보다 한정된 분야의 범위 안에서 포괄적 인
것이든가, 아니면 그 둘을 잘 조화시킨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수집의 범위가
공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지나치게 편집되어질 때, 소수의 학문적 관심에는 부합될지
몰라도 미술관의 기본 목적을 흐뜨릴 위험이 있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에 의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컬렉션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일 것이다. 미
술관이 목적하는 바 특정한 지역, 특정한 시대의 대표적이고 모범적인 작품들 중 미술관이
소장하지 못한 작품을 수집하는 일이야말로 수집계획의 핵심목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미술관의 활동에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그 작품을 기존의
작품과 함께 큐레이팅하고 관리할 수 있는 미술관의 실제적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
상황을 무시한 채 소장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술관의 작품수집이 사려깊은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작품의 가치에 대한 온전한 인식에 기초해 판단이 되야
하지만, 반드시 다음의 두가지 전제에 기초해야만 한다.
하나는, 그 작품이 미술관의 목적에
부합되며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구히 소장품으로 유지 보존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상식적인 일이지만 단순히 전시를 하기 위해 보존할
수 없거나 미술관의 수용능력을 벗어나는 작품을 구입하거나 기증받아서는 안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획전시로 흡수하면 되며, 기획전시란 애초에 소장품이 근거가 된 상설전시가
갖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마련된 미술관사업이라는 상식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미술관이든 특히 작품수집에 대해 그 미술관이 지닌 고유한 철학과 기술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면에 있어서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은 매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미술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사실은 광범위하게 작품수
집활동에 대한 논의 내용을 담고 있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간행의 단행본 「추적,획득」
(「The Chase, The Captured,1975)등의 발간물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부분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 미술관마다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예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사용하고 있는 '작품구입추천서양식'(Recommended Purchase
Blank)과 '구입추천-큐레이터 보고서' (Recommended Purchase-Curator's Report)
같은 제도는 어느 미술관에나 보편화되어 있는 작품수집을 위한 장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