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 방법론

안소연(학예연구관)

Ⅰ. 머릿말

Ⅱ. 전시회의 기획
     1. 자료조사 및 연구
     2. 전시회 개념설정
     3. 개최 타당성 검토 및 예비조사		 Ⅲ. 전시회의 추진

Ⅳ. 맺음말

2. 전시회 개념설정

미술관의 기능은 미술품을 수집, 보관, 연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르 게 전시함으로써 완성된다 이때 올바로 전시한다고 하는 것은 그 작품에 대해 관객 이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륵 최상의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전시회의 성립 조건으로서 제일 먼저 전시품(작품)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전시회의 개념이나 의도 가 설정된 후 그 범위 내에서 작품의 의미가 조명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예술가가 창조해낸 미술품이 그 자체로서 관객들에게 상상력과 지적 이해의 원천이 되 므로 전시 기획자의 주관적인 의도와 설명이 때로는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작품이 기획자가 설정한 전시회 개념의 테두리 내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전시회 기획자(큐레이터)에게 창조적 사고가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제2의 창조를 완성하기 위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기에 앞서서 큐레이터는 앞 절에서 지적한 바 와 같이 자료조사와 연구를 통해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역사적 중요도, 다른 작가, 작품들과의 상호 연관성 등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며 작품과 그 배후 에 내재해 있는 작가의 정신, 또는 시대 배경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검토를 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시회란 특정한 주제나 지역, 작가, 연대등을 설정하고 그 에 부합되는 미술작품을 선별하여 제시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국 가별 전시, 시대별 전시, 유파별 전시, 부문별 전시, 작가별 전시 등의 계통적, 역 사적 전시구성이 기본적 방법론이 될 수 있고, 이것을 상호 비교, 대조하거나, 회고 전, 유작전, 선발전 등의 형식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보편화 되어 있는 방법 에 속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전시회 담당 큐레이터가 미술사에 대한 특별한 안 목과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특정 테마에 맞추어 작품을 수집하고 상호 대조, 비교함 으로써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작품을 재해석 하는 전시방법을 우리는 비평적 방법 론에 입각한 전시구성 이라 일컫는다.

예를 들어 몇 년전에 프랑스 퐁피두 센터에서 동·서양의 설치작가를 비교전시한 <대지의 마법사(Magiciens de la Terre)>전이라든가 최근 일본의 미도(水戶)아트 타 워에서 동서고금의 작가들을 선별하여 한데 모은 <異世界에로의 여행(Another World)>전 등이 그러한 전시유형에 속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후기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라든가 그 가치관, 하이테크에 관한 관심들이 폭주하고 있는 현 미술계에서, 그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죽음 이후의 세 계 또는 정신계의 존재확인을 시도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작가들을 선별하여 전시한 경우였다.

이러한 유형의 전시회는 그것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에게 있어서는 가장 흥미있고 보람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만킁 본인의 능력과 연구실적, 재정적 지 원 가능성, 미술관 전체의 의욕등과 직결되는 까닭에 사전에 철저한 준비단계를 거 쳐야 한다.

또한 그것은 작품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미술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 최대의 당면과제로 남는다. 따라서 비 평적 방법에 입각한 전시회를 구상하려는 큐레이터는 그만큼 자신의 시도에 대한 철저한 책임의식도 아울러 겸비해야 할 것이다.

전시회의 개념을 설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앞서 말한 바대로 큐레이터 개인의 창 조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반조건이 갖추어져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 서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전시 구상에 따른 의무를 분담하기 위하여 위원회를 구성 하여 운영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전시 개념에서부터 작가 및 작품선정을 의뢰하 여 전시기획의 주관성과 편파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방법인데 이는 미술관 자체 내 의 가치관 정립과 인력의 전문화를 지연시키는 단점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제도 라 할 것이다.

전시기획의 또다른 방법중의 하나로 아예 외부에서 기획된 전시회를 그대로 수용 하는 것이 있다. 이는 일본 내 중·소 지방미술관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방법으로서, 개별 미술관의 여건상 자체 기획이 불가능할 경우, 미술정보를 다량으로 입수하고 있는 개인이나 기관(주로 언론기관)이 만들어 놓은 전시 기획안을 참가비 또는 행정 비 명목으로 일정금액을 지불한 뒤 구입하여 전시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는 최소한 의 노력으로 손쉽게 기획전시를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으나 미술관의 자율 성이 회생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수적인 성향의 전시회를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전시회를 보고 받아들인 충격이 제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관람객에게 있어서 그 경험은 장차 더 맡은 것을 알게 되기 위한 준비과정에 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개념의 전시라 할지라도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뭔가 미진한 점이 있다면 관객들은 곧 좌절하거나 소극적으로 태도 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큐레이터는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관객의 심리 와 그것을 운용할 기술 또한 습득하여, 전시회로 인해 유발된 흥미와 관심이 그들의 앞으로의 지속적인 연구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서 전시회는 가치있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 시키 고, 쉽게 이해되고 정확하게 수용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