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최태만(학예연구사)
Ⅱ. 미술관의 역사
Ⅲ. 미술관학의 역사와 이념
Ⅴ. 미술관문화 정립의 몇 가지 조건들
Ⅵ. 문화발전론에서 본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관의미래
미술관의 발생맥락을 주목해 볼 때 미술관은 그 출발에서부터 보존의 가치가 있
는 귀중한 물건의 수집과 밀접한·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굳이 ICOM의
헌장을 반복하지 않더라도 미술관은 당대는 물론 후세에게 물려줄 필요가 있는 인
간의 정신적, 물질적 노력의 산물들을 수집, 보존, 조사연구, 전시하는 행위를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개인의 보물에 불과했던 미술관 수
장품의 수가 증대함에 따라 이것을 합리적으로 분류하고 보존하기 위한 방법의 필
요성이 대두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이른바 '미술관학'이란 것이 태동하게 된다.
미술품의 수집에 있어서 가치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 준 최초의 인물은 이탈리
아 르네상스시대의 바사리(G,Vasari)였다. 그의 「당대의 뛰어난 화가·조각가 ·
건축가 열전」은 미술품 수집의 기준으로서 사료정리(historiography)의 중요성을 알
려주고 있으며, 르네상스 이후 많은 왕후장상들이 바사리가 정리한 바에 따라 고전
주의 작품을 수집함으로써 유럽에서 고전주의가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그가 설계한 우피치미술관은 미술품의 효과적인 분류와 전시를 고려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전시방법론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주의 시대를 넘어서
서 귀족계급들에 의한 미술품 수집이 활발해진 18세기에 수적으로 증대된 미술품을
분류하기 위한 방법이 본격적으로 창안되기 시작했던 바 1781년에 비엔나미술관은
유파(school)에 따른 연대기적 분류방법에 따라 회화를 전시하였고, 1882년 뉘른베
르크미술관도 각 시대별로 분류된 6개의 전시실을 선택된 특정인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하였다.
소장품을 어떤 기준으로 수집하고 분류 ·보존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은 미
술관방법론(Museogaphy)의 발달을 촉발시켰는데 그것은 특히 프랑스의 혁명정부
가 일반시민에게 교화, 계몽적 차원에서 중앙미술관을 개방하였으나 이 전시물에 대
한 아무런 자료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짧은 기간동안 수많은 문화재들이 도난당
하자 서둘러 각 문화재들의 시대적·양식적 특징을 기록·정리함으로써 작품관리의
근거인 소장품목록(Inventory)의 발달을 가능케 했다.
그후 나폴레옹은 패전국에 대
한 평화협정의 조건으로 배상금 대신에 예술품을 요구했고 많은 미술품들이 전리품
으로서 중앙미술관에 몰리자 이를 각 나라별로 분류하여 전시하였다. 특히 그는
1802년 미술관의 명칭조차 나폴레옹미술관으로 바꾸어버렸으나 훗날 이 미술관은
루브르미술관으로 정립되었다.
수장품을 국가, 지역, 시대, 유파, 양식, 작가, 기능별로 분류하여 정리하고 그것
을 기록으로 남기며 전시를 퉁해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현재까지
소장품관리의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관이 작품의 수집, 보존, 조사연구, 전시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효
과는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미술관을 포함한 박물관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으로부
터 인간에게 지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전리품과 무기류의 진열장으로, 축재
의 수단으로, 진귀한 물건을 분류해 놓은 곳으로, 진실과 허구를 재구성해 놓은 공
간으로, 축소모형(maquette)과 모델의 전시장으로,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을 불러일
으키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물론 이러한 역할들은 그 성격에 따라
미술관, 역사, 자연사, 문화인류학, 생태학, 전쟁, 민속박물관 등으로 나뉜다. 그러
나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그 원천적인 활동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가 말하고 있는 미술관학(Museology)은 미술관의 여러가지 사회적 역할들 예컨대,
문화적 가치가 있는 물건의 수집, 보존, 분류, 전시를 통해 그것에 활력을 불러넣고
전파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방법-미술관건축과 전시조직 및 전시디자인을 포함
하여- 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역사와 그 역할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응용
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수집, 보존, 전시 등에 따른 실제적이고 분명한
기술학 또는 방법론을 미술관기술학(Museogaphy)이라고 정의한다면 미술관의 역사
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철학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설립과 발전을 촉발
시키는 목표와 정책, 그리고 미술관의 교육적, 정치적 역할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
보, 제시하는 것은 미술관학(Museology)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박물
관학이란 새로운 학문체계 속에 이 양자를 다음 도표와 같이 분류하고 있다.
| 기술학(Museography) | 이론학(Museology) | ||
| 박물관의 존재 박물관학Museum Studies |
박물관학총론/개론/통론 | 박물관학이론 | |
|
박물관과 사회에 관련한 조사법 박물관 이용자의 생리실험 박물관 이용자의 심리실험 박물관교육활동법 |
현대박물관론 박물관발달사 박물관사회학 박물관윤리학 박물관생리학 박물관심리학 박물관교육학 박물관정보공학 |
박물관학각론 | |
| 박물관자료취급법 박물관자료수집법(활동) 박물관자료 분류 목록법 정보처리법 박물관자료보존과학법 인문자연과학 조사연구법 전시기법 박물관시청각법 박물관자료제작법 박물관자료수리법 |
박물관자료론 박물관자료수집론 박물관자료정리론(분류학) 박물관자료보관법 인문자연과학조사연구론 전시학 박물관시청각론 박물관자료제작론 박물관자료수리론 |
박물관기능론 | |
| 박물관행정 및 재정론 박물관직원론(학예원/관장) 박물관시설론 박물관관리운영 박물관관련법규 |
박물관시설 관리운영론 |
||
그러나 미술관은 물론 미술관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자칫 그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한 나머지 현대사회에서 미술관이 수행하는 기능은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놓치게 만들 위험이 있으며, 이글의 목표가 현대사회에서 미술관의 역할인 점을 주목해 볼 때, 우리는 보다 우리 현실에 가까운 시간대로 되돌아와야 할 필요 가 있다.
미술관에 대한 ICOM의 정의에서든 미술관학에서 다루는 한 부분에서든 현대에 있어서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암시해 주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 은 다름아닌 '보급'이란 차원이다.
이때 보급이란 단순히 미술작품의 전달이란 맥락 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미술의 이해 및 소통을 위한 노력이 큰 부분 을 차지하겠지만 그것보다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미술관을 찾는 행위가 문화참여활 동의 하나임을, 그리고 그 참여를 통해 스스로 문화를 향수함은 물론 재창조 행위에 개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넣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미술관학을 제안한 영국의 피터 버고(Peter Vergo)가 과거의 미술관학 들이 대체로 방법론에만 치중한 나머지 미술관의 실제적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도외시했다는 주장을 신중하게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