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연구 제 4 집

현대사회와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 최태만(학예연구사)

	Ⅰ. 현댸사회의 문화적 징후들 Ⅱ. 미술관의 역사 Ⅲ. 미술관학의 역사와 이념	Ⅳ. 문화적 참여제도:개방적 미술관의 요청 Ⅴ. 미술관문화 정립의 몇 가지 조건들 Ⅵ. 문화발전론에서 본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관의미래

Ⅵ. 문화발전론에서 본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관의 미래 다시 현대사회에 있어서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논의해 보자. 유네스코가 마련한 문화발전 원탁회의의 각종 보고서에 의하자면 현대사회는 일반대중들의 문 화 참여권리를 적극적으로 신장하고, 각계각층의 문화적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정 책의 개발을 권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1982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 된 (세계문화정책회의)에서 제안된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안"을 보면 문화발전과 창조적 기량에 대한 자극 못지 않게 보편적인 일상생활에 있어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회의는 또한 문화발전을 위한 실행지침으로서 다음과 같이 다섯 항목에 대해 제안하였다. 첫째, 문화발전정책은 환경과 삶의 질적 수준의 향상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만큼 경제, 사회, 과학정책 등과 문화정책의 상호관계 혹은 잠재적 상호보완 능력을 인정 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과학이 문화발전의 요소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문화는 휴머니즘 의 매개체이고 과학은 순수한 공업기술이기 때문에 문화와 과학은 서로 그 범위에 있어서 상반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수정되어야 한다. 세째, 문화적 주체성의 강화 네째, 문화생활에의 참여기회의 확대 다섯째, 전통적인 예술표현 뿐만 아니라 영화, 사진, TV, 음반 등 대중예술의 보급이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대중예술을 순수, 고급예술과 대립되는 것으로만 분류할 수 없으며 게다가 최근 비디오예술, 레이져사진술(홀로그램 등), 컴퓨터를 이용한 작곡과 같은 응용과학을 이용한 예술 역시 급신장하는 추세에 있 으므로 이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문화발전이란 문화 활동에의 참여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일반대중들의 삶의 질을 고양시킨다는 정책적전략의 표현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발전의 철학과 관련하여 이미 오래전에 "문화발 전이라는 것은 이제 사회나 개인에 있어서 굳이 필요가 없는 사치, 풍요의 장식물은 아니다. 그것은 전체 (사회)발전의 조건 그 자체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문화발전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의 특정한 철학적 개념에서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직면한 사회의 깊은 요청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정의한 오귀스탱 지라의 말은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지라는 여기에 덧붙여 문화활동을 철학적 또는 미학적 관점, 따라서 필연적 으로 주관적 관점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그릇된 관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즉 문 화활동의 목적성은 선험적인 이론에서가 아니라 관찰된 현실에서부터 규정지어지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닐 수 있고 따라서 모든 이념적 분열을 뛰어넘는 대상 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문화 발전론이나 문화정책의 입안자가 현실 대한 구체적인 조사연구없이 책상 위에서 그 계획을 수립하려고 할 때 그것은 필연적 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점은 미술관운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렇게 볼 때 문화제도속의 제도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활동의 방향과 목표 역 시 문화발전의 맥락에서 추구될 때 그 존립의 근거를 보다 확고하게 할 수 있으며, 단순히 예술작품의 보존기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궁극적으로는 대중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고 자발적으로 문화 활동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협력하여야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이한 것 은 문화란 정부의 간섭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분명 아니지만 문화개발국의 경우 정 부의 강력한 지원이 일반국민들의 문화향수권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경우 문화행정의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지원은 하 되 간섭하지 않는다'란 전제가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의 미래와 관련하여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뀌어가 고 있는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미술관이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또한 적극적 인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미술은 자체의 놀라운 자기갱신력에 의해 과거의 미술을 언제나 뛰어넘어 왔다. 즉 회화와 조각의 전시에 걸맞는 건축설계를 해놓았는데 건물을 완공해 놓고 보니 현대미술은 설치니 퍼포먼스니 대지예술이니 테크놀로지 아트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 극단적으로 는 미술관 건물자체를 리노베이션 해야 할 때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웅장하 고 아름다운 건축미에 비해 '고전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으며 더구나 석조건 물의 육중함이 비현대적으로 느껴진다. 현대미술관에 인접한 서울랜드의 놀이기구 가 뿜어내는 형형색색의 원색의 물결과 굉음을 내며 요란스러운 대중가요와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대한 장난감'의 몽환의 세계, 그 디즈니랜드적 환상의 세계를 보노라면 묘한 대비를 느낄 경우가 많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두 세계 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부조화의 절묘한 병치가 바로 오늘날 우리 문화의 지도라는 점이다. 미술관은 오늘날의 문화가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술관이 엄숙해야 한다는 사고는 보수적이다. 경우에 따라 미술관은 시끄러워야 하며 문화적 활력으로 넘쳐나야 한다. 특히 현대미술관은 당대의 문화현상을 적극 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굳이 문화적 절충주의로 매도한다면 미술관은 영원히 미술의 공동묘지로 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문화엘리트주의 이념의 파수꾼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앞으 로 설립될 현대미술관이 집중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 부연컨대 현대미술관은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차야 하며(그런 점에 서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 다. 게다가 미술관에 들어서기 위해 멀고 긴 진입로를 통과하거나 서울대공원을 관 통하여야 한다. 부지의 선정문제 때문에 미술관의 입지를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정했 다고 하더라도 미술관 진입로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현재 유 일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용산쯤에도 한개 있으며 나아가 부산, 대구, 광주 등의 대도 시에도 그 지역의 문화적 환경에 부합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이 설릴되었으면 하는 기 대를 해본다), 당대의 문화를 생산, 소통, 교환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미술관장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일꾼으로, 큐레이터는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촉매자로 인정받고 또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