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

최태만(학예연구사)

Ⅰ. 현댸사회의 문화적 징후들
Ⅱ. 미술관의 역사
Ⅲ. 미술관학의 역사와 이념		 Ⅳ. 문화적 참여제도:개방적 미술관의 요청
Ⅴ. 미술관문화 정립의 몇 가지 조건들
Ⅵ. 문화발전론에서 본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관의미래
Ⅳ. 문화적 참여제도 : 개방적 미술관의 요청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주로 미국이나 일본, 유럽제국(諸國) 등의 선진자본주의를 중심으로 미술관이 폭발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 혹은 기업의 개입과 후원 에 의한 문화시설 건립 분위기의 고조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오페라좌, 독일의 국립 스투트가르트미술관의 건립, 영국 바비칸센터, 미국의 카네기센터와 링컨기념 관, 전후 일본에 엄청나게 설립된 시·현립 및 사설미술관,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양차대전 이후 설립한 수많은 문화센터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와 일반시민들의 문화향수권의 신장이 란 명분 아래 거의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으나 미술관은 여 전히 수집, 보존, 전시 연구란 전통적인 기능의 수행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전시장과 수장고를 갖춘 공간이라는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운영방식에 기초한 미술 관이 과연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청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 며, 전통적인 개념에 입각한 미술관이 일반공중을 위한 문화적 기구로 정립될 수 있 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맡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미술관 설립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시기부터 미술관은 그 활동의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때 문에 비판받아 왔으며, 특히 오늘날처럼 순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이분법적 구 분이 제도적으로 확연해진 사회에서 미술관이 단지 순수미술만을 위한 파수꾼임을 자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화 계획의 실천과 함께 나타난 예술의 전문화현상과 더불어 1750년대만 하더라도 미술품만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 이후 미술관은 국가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 자체를 동일시하는 관점에 따라 대중들에게 그 민족 국 가의 찬란한 업적을 주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것이다.

이런 유형 의 전문화된 미술관중 가장 잘 알려진 예가 루브르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정확하 게 예술의 체험을 격식화시키고, 왕실이나 교회의 영역에서 보존했던 가치들 즉 복 종, 고양된 정신성, 역사적 불가피성을 예술에 부여하도록 조직했다.

 또한 미술 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고 시기를 구분하여 배치하고 합리화시키는 일에 전념하는 하나의 전문지식체계로서의 미술사라는 전문영역 역시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며 나타났다.

따라서 현대미술관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미술관의 계승자이며, 예술문화의 전 문화를 입증하는 가장 최근의 증거물이다. 그것은 또한 미술에 관한 '담론'을 일관 된 문화적 체험으로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미술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얀 벽으로 이루어진 표본상자 혹은 위생적으로 진공된 공간같은 미술관 인테리어는 개 별 예술착품들을 삶의 맥락과 분리되어 있는 사물로서 또한 현대 미술의 주관성을 옹호하는 도상들로 경험하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의 이러한 권위주의적 상태를 극복하고 지역문화의 독자성과 다양성을 보 장하기 위한 시도로서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임명되었던 말로가 벌였던 사 업 중에서 각 지역에 설립하였던 문화원(Maison de la Culture)을 들 수 있다.

이 문화원은 문화의 중앙집권화, 미술관의 부르주아적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으며, 각 지역치 모든 문화활등을 조장, 지원, 육성하는 거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사례로 손꼽을만 하다.

이 문화원이 지향하는 목표는 1)많은 국민들이 스스로 창조적인 문화활동에 참여하며 2)지역간의 문화격차를 해 소하고 3)한 지역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변지역으로 확산하는 지역문화의 거점 을 확보한다는 것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설립되는 대규모 문화시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사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취향과 욕구, 성향 등을 조사한 후 이를 문화활 동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방식은 보다 민주적인 문화행정의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말로의 문화원과는 달리 국가의 집중적인 관심과 개입을 배경으로 실현된 것이 바 로 퐁피두센터이다.

다른 미술관들과 구별되는 건물의 현대적 외양에서 주목받고 있는 퐁피두는 국립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서관, 산업미술창조센터(C.C.I), 시청 각자료센터(IRCAM), 도서실 복합전시공간 등을 갖추고 있어 조형예술을 포함하 여 음악, 문학, 연극, 영화 등 현대적 문화활동을 창조, 수용, 교류, 소통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술관 설립은 한 나라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인 사업으로까지 인식되었으며 이러 한 분위기는 퐁피두대통령이 계획한 새로운 유형의 문화공간의 설립이 국가적 차원 에서 실행된 경우나 도심속에 위치한 역사(驛舍)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것과 루브르 미술관의 대대적인 개보수가 중앙집권적으로 이루어진 프랑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빈민가가 밀집해 있던 보부르(Beaubourg) 지역의 재개발사업으로 이루어진 퐁피 두센터(Centre Georges ,Pompidou)의 설립과 기타 미술관들의 개보수 프로젝트는 주변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명백하게 중앙집권적인 프랑스의 문화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이 센터가 보여주는 기념비적 대중적, 생동적, 현대적, 시끌벅적함 등의 특 징은 만국박람회의 거대한 도상(icon)으로서, 파리의 앰블렘으로서 조성된 에펠탑이 수행하였던 역할에 대해 상기하도록 만든다.  이미 미국에서 설립된 문화센터의 사례를 주목하고 있던 퐁피두대통령은 1969년 당시 문화담당 비서관이었던 미셀레 (E, Michelet)에게 동시대의 지표(landmark)가 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시설의 설립 계획을 지시하였다.

그의 관심은 르 몽드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 다. 즉 퐁피두대통령은 미국에서 설립된 문화센터와 비슷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술 관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창조적 활동을 수용, 소통,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 의 문화센터에 대한 그의 포부를 천명하였던 것이다.

 루브르가 고대와 근세미술 의 진수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라면 역사를 개조한 오르세미술관(Musee d'Orsay)은 19세기 프랑스미술의 위대성을 강조한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미술관의 성격과 완전히 대조되는 것이 퐁피두센터이다.

외견상 퐁피두는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작 품보다 시대적으로 더 현대에 가까운 것, 즉 현대미술의 전당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 제로는 퐁피두대통령이 구상했던 것처럼 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등의 공연예술, 도서관, 시청각자료실 등 인간의 모든 창조적 활동을 포괄하는 복합문화 센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렇듯 퐁피두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긍정적 인 측면은 무엇보다 미술은 미술관이, 음악이나 무용 연극은 공연장이, 영화는 극 장이 하는 식의 문화공간의 분리를 극복하고 모든 창조적 예술활동이 이 공간 속에 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순수미술만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미술관의 '운명적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예술도 폭넓게 수용하려는 문화 적 개방의식 역시 주목하여야 한다.

퐁피두와 더불어 영국의 바비칸 역시 한 문화시 설 속에서 미술, 음악, 연극 등 여러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며 우리나라의 예술의 전당이 이러한 모범적인 선혜를 따라 건립되었지 않나 생각한 다. (그렇다고 예술의 전당이 그 역할을 온당히 수행하고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에서 미술관은 전통적인 기능을 포용하면서 현대사회가 요청하 는 문화적 참여를 촉매하는 제도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현대예술에 있어서 개별영역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보편화된 만큼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모더니즘 회화론처럼 자기영역의 고유성을 엄격하 게 고수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게다가 현대미술 자체가 탈장르적 징후를 드러 내고 있는 만큼 미술관에 대한 전퉁적인 관점 역시 수정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회화나 조각의 완전에 가까운 보존과 감상을 위해 갖추어야 할 시설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제 미술관은 단지 미술작품만의 전당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의 생산, 유통, 교류, 소통 전반에 걸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제도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피터 스타크(Peter Stark)란 한 문화행정가가 정리해 놓은 예술센터의 바람직한 여섯가지의 상호관련된 기능은 현대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하나의 참 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주목할만 하다.

그는 현대사회가 요청하는 예술센터의 여섯가지 기능으로

1)창조적 여가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와 필 요에 가장 어울리는 활동을 찾아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일(참여의 장 제공)

2)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가능한 한 많은 대중들에게 제시하고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이해와 감상의 폭을 확장하는 작업(개방성)

3)첫째 및 둘째 목표를 위해 일반대중들 에게 적절한 사회적 환경을 제공하는 일(사회성)

4)창조적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정 보, 자료, 전문적인 자문분야의 자원을 제공하는 일(자원센터로서의 기능)

5)청소년 과 청년세대들이 창조적 과정 속에 참가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우며 그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청년문화 육성)

6)예술가의 창작활동 지원 등을 들고 있다.

스타크의 이 보고서가 지역문화센터를 고려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현대 사회에서 미술관이 설정해야 할 방향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