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Ⅳ. 李仲燮의 作品世界
1. 이중섭 작품의 特徵
李仲燮의 작품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살피고자 하는데, 예를 들어 소를 주제로 한 그림,
인물화(가족그림, 아이들그림) 등으로 나누어 보았다. 李仲燮이 남긴 그림이 모두 짧은 기간
안에 그려진 것이어서 시기 구분은 거의 무의미하다. 주제별 분류 외에도 재료에 따른 분류도
가능하지만, 주제에 따라그의 화풍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필까 한다.
우선 李仲燮 화풍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겠다. 첫째,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유화의
경우 반드시 캔버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합판에 유채로
그린다든지, 종이에 유채, 혹은 유채와 수채를 섞어 그렸고, 일반적으로 페인트라 불리우는 도
료용 에나멜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합판에 유채로 그린 홍익대학교 소장의 <흰소>(도판 9)가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일본 유학시절 한지에 먹을 듬뿍 묻힌 후 날카
로운 도구를 이용해 긁어내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특히 담배갑의 은지를 사용해서 銀紙畵를
만들어낸 것은 가장 특기할 만한 일이다. 재료나 매체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것은 다양한 재료
를 사용하는 꼴라쥬작업이 현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처럼, 상당히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李仲燮의 화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線이다.
이 선은 일반적으로 李仲燮과 비교되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의 선과도 다르고, 그가 초기에 그리던 루오(Georges Rouault)적인 선
과도 다르다. 표면에 두터운 질감을 나타내며, 선의 반복을 통해 면을 만드는 점에 있어서는
차라리 반 고흐의 선과 유사한 점이 보인다.
러나 반 고흐는 線을 짧게 짧게 끊어주어 강렬
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李仲燮은 線을 길게 힘있게 그어줌으로써 선
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선을 통해 운동감과 量感(mass)을 표현하는 점에 있어서도, 평면으
로 처리되는 반 고흐나 루오의 선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
앞서도 밝혔듯이, 이러한 선은 전
통에 맥이 닿아있는 것이며, 좀 더 나아가 수묵화의 번짐 효과와의 비교도 가능하다. 화면의
일정 부분을 색면으로 메꾸는 경우에도 균질한 채색효과는 보이지 않으며, 여러번 덧칠하는
선을 이용해서 면을 표현한다. (달과 까마귀)(도판 22)를 보면 이중섭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
물게 넓은 면의 분할로 화면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노란 달이나 파란 하늘에는 붓질의 흔
적이 線의 형태로 남아 있고, 이는 마치 수묵화의 번짐과도 유사한 효과를 주고 있다.
세째, 밀도 높고 치밀한 구성력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 중에는 더러 객관적이고 원근법적
인 구도를 보여주는 풍경화도 있지만, 거의 모든 작품들은 사물을 평면화하여 재구성한 것이
다. 특히 線만으로 모든 것을 구성하는 은지화의 경우는 더욱 평면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을 조금 더 들여다 보면 평면화된 인물들 사이로 3차원의 공간이 존재하고 됐다.
평면화된 것
같으나 그 안에 공간을 지니고 있는, 화면은 작으나 화면 속의 공간은 넓게 느껴지는 상반되
는 모순의 논리가 이중섭의 작품에 내재하는 것은 바로 그의 치밀한 구성력에서 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의 표현에서 이중섭의 특징이 나타난다. 과감한 歪曲과 要約을 통해 인체의
형태를 자유롭게 나타내고 있어, 정상적인 인물의 형상에서 벗어나고 있음에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얼굴의 형태는 간략하게 樣式化하고 典型化시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특징들이 그의 작품에서 어떠한 효과를 거두며 사용되고 있는지 직접 개개의
작품들을 통해 살펴 볼 것이다.
이중섭의 작품을 직접 살피기에 앞서 그의 작품세계에서 특이한 영역을 이루고 있는 은지화
를 살펴 보려 한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재료의 확대라는 측면 외에도 기법면에서 중요한 의미
를 갖고 있다. 은지는 표면에 알루미늄막이 얇게 입혀져서 종이의 특성과 금속의 특성이 함께
나타나는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활용한 것이 이중섭의 은지화이다. 종
이 위에 그림을 그리듯 가는 철필로 은지 위에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표면에 안료를 발라 가
는 홈으로 파인 선에 들어가게 한 후, 표면의 안료를 살짝 닦아내어, 나타내고자 하는 부분을
음각으로 나타내는 기법이다.
이때 알루미늄의 특성으로 인해 안료가 종이에 스며들지 않아
판화의 효과가 나는 것이다. 이렇게 살짝 파인 홈에 안료를 밀어 넣는 기법은 금속공예의 銀
入絲技法이나 도자기의 象談技法 등과 맥이 달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고려청자의 상감기
법은 고려시대에 세계 최초로 발명해 낸 기법으로 유명하다.
종이의 부드러움과 알루미늄의
비흡습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재료인 은지 위에 그림을 그리려면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찢
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표면을 긁어내야 하고, 긁어낸 홈 안에 안료가 적당히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지화는 현대미술의 재료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미
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 새 점이 영구 소장되었다.
2. 소그림
이중섭의 소에 대한 집착은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린 소그림으로 가장 이른
것은 1940년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했던 것으로, 이후 1941년작인 <연못이 있는 풍경>이
나, <소와 어린이>등의 작품 등에 꾸준히 소가 등장하고 있다.
주위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 유
학 이전부터도 소를 그렸으며 이에 얽힌 일화도 있어 이중섭의 작화 태도를 알 수 있다.
1940년작인 <작품>(도판 1)의 경우, 물론 흑백도판으로 볼 수 밖에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루오의 영향이 보이고 있다. 소의 몸에 굵은 테두리를 그어 면을 분할하고 있어 아직은 이중
섭 특유의 선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호암미술관 소장의 <횐 소>(도판7)를 보면 더 이상 면의 분할을 위한 기능적 의미
의 선은 사용되지 않는다. 소의 목줄기를 굵은 선을 그어 나타내고 있으며, 엉켜 굳은 안료가
소의 관절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횐 소라고 해도 샤갈의 횐 암소는 사물의 근원을 나타
내고자 했던 것에 비해 이중섭의 휜 소는 훨씬 더 현실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중섭은
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좀 덕 나아가 소의 특성을 통해 우리 민족을 그리
고자 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붉은 화면을 바탕으로 고개를 쳐들거나, 옆을 쳐다보고
있는 소의 頭狀을 그리는 등, 이중섭의 황소들은 거의가 움직이는 상태로 그려져 있다.
호암
미술관 소장의 <황소>(도판 8)는 붉은 바탕의 배경에 곡선으로 획 둘러진 선에 의해 소가 머리
를 쳐드는 기운이 나타난다. 홍익대학교 소장의 <휜 소>(도판 9)는 걷기 위해 오른 쪽 앞발을
쳐들고 있는 순간을 잡고 있는데, 소의 몸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발의 관절부위나 주름 등의
튀어 나온 부분을 흰색 안료를 이용해 굵직굵직한 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배경은 생략하고 있
지만 소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을 반드시 그려주고 있으며, 소의 뒷 배경으로는 거친 선이 그대
로 드러나는 어두운 색조를 사용해 된 선으로 강조된 소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된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이중섭과 거의 동시기의 화가인 金耕이 소그림을 남기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김 경의 경우, 목가풍의 실제적인 소를 그린다든지, 전체 화면과 동일한 표면 질감을
갖는 표현적인 소를 그리고 있어, 정착된 양식을 갖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중섭처럼
자신만의 양식으로 정착된 소를 그렸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50년대의 분위기였던 풍속적 소
재의 탐닉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3. 인물화(家族圖, 群童畵)
이중섭의 인물화에는 이중섭 자신의 가족이 소재로 등장하나, 눈, 코, 입 등을 소략하게 처
리하여 인물의 典型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李仲燮의 가족도는 개인의 가족사에서 탈피하여
일반적인 가족을 그린 그림으로 의미를 넓히게 된다.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이중섭의 환경이
가족도를 제작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겠지만, 그는 이를 한단계 발전시켜 인류애로 승화시킨
것이다. 아이들 그림도 가족도와 같은 맥락에서 혜어진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그려진 것이다.
결국은 모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도나 아이들그림은 주로 원형구도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원형구도는 인물화를 그릴
때 아주 적절한 구도이다. 원형구도로 인물을 배치하게 되면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
게 고르게 시선이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도판 10,11)
이중섭의 인물화에 나타나는 모든
인물들은 서로 얼기설기 얽혀 있고 신체의 일부끼리, 흑은 줄을 통해 서로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어, 마치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그림이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사지를 꽁꽁 묶어 놓은 은지화이다. (도판 12) 이 은지
화는 의사소통의 단절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춤추는 가족>은 구성에 있어서나 인물의 표현에 있어 마티스의 <춤>을 연상시켜 주는 작품
이다. 그러나 마티스의 작품은 정돈되어 춤을 추고 있는 운동감이 덜 느껴지는데 반해, 이중섭
의 인물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고 있는 운동감이 잘 느껴지고 있다.
특히 배경에 밝은
노란색과 파란색을 번갈아 칠하고 인물들의 발치에는 초록색을 칠해 땅을 나타내고 있는데, 번
갈아 칠해진 노란색과 파란색이 인물의 움직임을 강조하고 있다. (도판 5) 우리는 이러한 점에
서, 이미 소그림에서도 확인했거니와, 이중섭이 배경을 처리할 며, 주제의 강조를 위해 색채나
붓질의 효과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왼쪽 끝에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 은지화에는 화면의 거의 반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캔버스가 그려져 있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도판 13) 이렇게
작품의 화면에 작업하고 있는 화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이미 서양에서 르네상스
이후로 종종 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중섭의 은지화가 갖는 의미는 이와 다르다. 이 경우
에는 채색은 얼이 선만을 이용한 은지화에서 이러한 구성을 통해 화면의 대상물들을 평면으로
재구성하면서 캔버스 뒤의 공간을 시사하고 있다. 작은 화면 속의 널은 공간감이라는 이중섭 은지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화면구성이다.
이 밖에도 인물화를 통해 이상향을 그려낸 작품들이 있어 어려운 시기를 넘기기 위한 작가
의 안간힘이 보이는 것 같다. <서귀포의 幻想>(도판14)과 <桃園>(도판15)의 경우가 그러한
데, 특히 <도원>은 은지화로도 거의 같은 구도와 표현을 한 작품이 있어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무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 엎드린 형상의 아이, 나무를 끌어 안듯이 매달린 아이,
막 복숭아를 따기 위해 복숭아를 잡고 매달려 흔들거리는 아이, 화면의 중앙에 그려진 산의
주름 등등, 세부 표현 약간을 제외하고는 똑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은지화의 선이 휠씬 부드
럽고 유연하며 표현대상의 질감이 잘 살아 있어 이중섭이 선을 활용하는데 뛰어났음을 보여준
다.
이러한 선의 대사는 아이 둘이 서로 끌어안고 있는 은지화에서도 보인다
화면 가득히 서로 끌어 안은 아이 둘의 모습을 소위 상감法으로 그리고 있는태, 서로의 어깨에 두
른 출의 곡선 처리와 온화한 표정에서 넘치는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시 (도훤)으로 되
돌아 가서 보면 나무를 끌어 안은 아이나, 산의 형태는 도자기의 동자나, 고구려 却淵 산 표
첨과도 일치하고 있어,. 이중섭이 작품의 소재를 꾸준히 전통으로부터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부터 계속 인물의 전헝화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이중섭과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들
중 이러한 인물의 전형화를 이룬 작가들이 있어 주목된다. 이렇게 한국적인 인물의 전형화는
해방 이후, 우리의 것을 찾고자 했던 노력의 결실로 볼수 있다. 다수의 작가들이 향토적 소재
주의로 표면적인 작품 제작에 그쳤던데 반해, 이중넙이나 짜壽繼, 梁達錫의 경우는 확고한 자
신의 표현 양식을 확림시켰던 작가들이다.
여기서 잠깐 박수근의 線과 이중섭의 선의 차이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간단히 말해, 이중
섭의 선은 적극적인 의미의 선이고, 박수근의 선은 소극적인 의미의 선이다.
이중섭은 선을
통해 구상적 형태를 적극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반면, 박수근은 구상적 형태를 지각할 수 있게
끔 바탕과 대상물을 구분짓는 소극적인 의미의 선으로 볼 수 있다.
박수근의 화면은 모노크롬
(단색조)의 균질화된 표면에 바탕과 거의 차이가 없는 색으로 인물이나 표현대상이 그려진다.
말하자면, 박수근의 선은 바탕과 대상 사이의 미묘한 색채의 차별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
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선묘는 형태면에서 완전한 곡선은 퍼하고 약간 각
이 지는 듯 처리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이중섭이 1940년대 초반에, 훗날 자신의 부인이 될 마사로(山本方子)쉐게 戀書를 대신해
냈던 그림엽서에서도 형태가 생략되고 세부의 묘사는 전혀 없는 선으로 이루어진 인물들이
타난다.(도판 19)
그런데 이러한 인물의 형태는 후에 동양화가 李應魯의 인물 추상에서 발견
할 수 있어 이채롭다. 물론 이응로가 이중섭의 엽서화에서 그 모티브를 발견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형태의 유사성이나 인물이 서로 얽히게 되는 점이 비슷하다.
4. 風景畵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풍경화이다. 화면을 재구성하고 평면화
시키는 점에서 이중섭의 특징을 찾는다면 어느 정도는 그러한 특징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풍경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근법을 사용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풍경화에서
도 거친 필선을 이용해 만들어진 면으로 대상물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른 작품들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중섭은 후기 인상파의 다양한 화풍에 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지는
그 중, 풍경화에 있어서 세잔느의 초기 풍경화와 그 느낌이 유사한 작품이 있다. 전경에 나타
나는 거친 나뭇가지들의 표현이 특히 그러하다. 세잔느는 이중섭이 존경하는 마티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중섭의 풍경화에서 이중섭
의 그림다운 특징을 찾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중섭의 작품 제작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중섭은 한 가지 주제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되풀이
하여 그려냄으로써 자기화 해내는 경우였다. 그러나 통영이나 부산 등지는 그가 잠시 머물던
피난지로 이곳의 풍경을 자기화 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5.기 타
이상에서 살펴 본 여러가지의 작품들 이외에도 초기의 스케치 작품과 닭이나 비둘기, 까마
귀를 그린 작품들이 있다. 여인을 그린 작품과 세 명의 남자가 앉거나 누워 있는 스케치 작품
이 남아 전하는데,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작품들로 거친 선을 통한量感(mass)의 표현을 중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인을 스케치한 작품은 1942년의 작품으로(도판20) , 뒷모습을 그
리고 있으나 인체 비례에서나 둥근 어깨, 옆 얼굴에서 다분히 한국적인 여인상을 발견할 수
있다. 1941년 작인 (소와 여인)(도판2)에서 보이던 이국적인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이중섭이 유학 시절 자신의 화풍을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화풍을 시도했었고, 1941년의 작품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사람>(도판 21)은 화면의 맨 아래에 팔을 베고 누운 인물, 그 인물의 오른쪽 팔에 다리
를 절쳐지게 모으고 오른쪽 화면 끝에 안은 인물, 이 인물의 오른쪽 어깨 뒤로 다리를 뻗으며
엎드린 인물 등의 세 남자틀 스케치한 작품이다.
세 인물의 배치를 통해 왁 차인 화면 내부에
만들어진 공간을 시사하고 있어 이중섭의 특징적인 공간감의 시도는 이른 시기부터 있어 왔음
을 알 수 있다. 특히 맨 아래 누운 인물의 왼 손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어 손의 표현에도 관
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손의 처리에 고민을 한 흔적은 앞에 보았던 여인의 스케치
에도 보이고 있다. 또한 오른 쪽에 앉아 있는 인물은 눈을 감고 있는데, 얼굴의 표현에 훗날
전형화하게 되는 인물의 始源樣式이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달과 까마귀>(도판22)는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곱히기도 하는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달이 빛나고, 중앙에 세 줄의 전깃줄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그 위에 안아 있거나 날아드는
까마귀들을 그린 작품이다. 노랑과 파랑의 대비는 <춤추는 가족>(도판 5)에서도 보았듯이 상
당히 눈에 두드러지는 배색이다. 그 위에 까마귀를 그려서 색의 대비 효과가 더 확실히 살아
나고 있다.
이 작품도 이중섭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처음 보아서는 평면화된 것처럼 보이
나, 까마귀의 날개를 서로 엇갈리게 나타내는 등, 암시된 공간을 느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작품이 <나무와 달과 하얀 새>(도판 23)이다. 석기에는 까마귀 대신에 하얀 새가 그려지고 있
는데, 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 평면적인 처리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공간감을 느낄 수 없
다. 전체 화면의 바탕에 노란색을 칠한후, 그 위에 횐색, 회색을 덧칠하고 있으며, 바닥의 노
란색이 부분부분 보이고 있어 마치 달빛이 비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밖에도 닭을 그린 그림들이 남아 있는데, 닭을 그리는데 있어서도 이중섭의 특징은 잘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수탉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고 있는 암
탉을 그린 이 그림은 수직의 상숭감을 느끼게 해 주며, 이러한 수직구도는 두 마리의 닭이
개를 원형으로 펼침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되며 원형구도화 되어 균형감과 운동감이 더해지게
된다. (도판2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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