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연구 제 6 집

미술관의 발전과 정부의 역할 - 프랑스의 경우 - 안 소 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Ⅰ. 머리말 Ⅱ. 국립미술관의 성립과 발전 Ⅲ. 미술관에 대한 국가정책의 정립	Ⅳ. 미술관 지원정책의 범위 Ⅴ. 맺음말

Ⅱ. 국립미술관의 성립과 발전 프랑스에서 국립미술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8세기 중엽의 일이다. 기록에 의하면 1747년 Lafont de Saint-Yenne라는 필명의 저자가 「프랑스에서 회화의 현황 에 관한 몇 가지 요인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문화유산으로서의 미술품을 국가차원 에서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부터이다. 그에 따르면, 당시 회화작품들의 보존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고, 그 과오는 루이 15세로 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루이 15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사저화 했기 때문에 왕실소유의 걸 작품들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대신 가구 보관창고에서 썩고 있거나 상당수 중신들에게 대여되 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들은 그 본연의 역할, 다시 말해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교훈을 주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와 같은 논문은 당시에 만연했던 왕정비판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출현한 수많은 저술활동 가운데 한편으로 간주할 수도 있 지만, 점증하고 있던 대중의 사회, 문화적 욕구를 반영하였고 특히 선구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그는 베르사이유궁의 건축으로 말미암아 방치되다시피 한 루브르궁에 왕실소유의 작품들을 모아 별도로 전시함으로써 문화유산의 효과적인 보존과 더불어, 국민의 문화향수권을 충족시키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사실 왕실소장품의 경우, 루이 14세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중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였다. 물론 18세기에 진입하고 나서부터 유럽전역에 걸쳐 나타난 미술시장의 발전과 미술품 수집의 열기는 부르조아들이 그들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드러낸 일종의 기현상으로, 오히려 국가 차원의 문화정책을 소극화 시킨 결과를 낳았지만, 루이 14세 때까지는 새로 건립한 베르 사이유궁이 대중의 장소라는 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부분적으로나마 개방된 궁전은 대중에게 미술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기술하였다시피 루이 15세 집권 이후부터는 베르사이유궁의 사저화가 시행되고 더불어 왕실소유의 미술품 또한 철 저하게 사유화되었다. 루브르에 국립미술관을 건립하자는 Lafont de Saint Yenne의 주장은 발표 직후 즉각 받아 들여지지 않고 약 30년간 변질되어 통용된다. 즉, 오를레앙 가문의 소장품만을 Palais Royal 회랑에 전시함으로써 국가는 하나의 미봉책을 마련하였고, 1750년부터는 뤽상부르그궁의 4개 의 쌀롱을 전시장으로 대신하였기 때문이다. 자리에 세워진 최초의 공공미술관이라 할 이 전시장에는 국왕소유의 걸작품 100점이 전시됨 으로써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작품진열이나 보존적 측면에서는 미술관학적인 배려가 전혀 얼었던 단순한 전시장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미술품감상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해소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측면에서 특 기할 만한 일이었으며 이후 소규모의 사설미술관 건립의 붐을 일으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Lafont de Saint-Yenne의 제안이 마침내 실현되게 된 계기는 루이 16세 즉위 후 뤽상부르 그궁이 왕의 동생인 프로방스 공작에게 수여됨으로써 그나마 미술품전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때와 함께 한다. 더불어 디드로가 그의 백과전서를 통해 루브르를 왕립미술관으로 발전시키자는 Lafont de Saint-Yenne의 의견을 재론함으로써 공식적인 미술관 설립의 논의가 가속화되었다. 또한 미술관의 설립은 새로운 작가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대중과의 소통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므로 이는 당시에 만연했던 역사화 제작의 붐을 이용하여 애국사상을 고 취하려는 집권충의 정치적 의도와도 부합되는 일이었다. 1774년 루브르 미술관 건설총감으로 지명된 앙기빌리에 공작은 루브르궁을 단순히 왕실소 장품을 전시하는 전시관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기존의 소장품을 보존하고 그것을 보충할 수 있도록 고미술품을 추가로 구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또한 조 명, 공간, 보안 등 미술관학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문제해결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나갔다. 그의 계획은 1788년 3월 왕실로부터 공식적인 인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1789년 대혁 명 이후 루브르미술관 건립계획은 잠시 폐지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1790년부터 전국을 휩쓴 일종의 성상파괴의 물결이 왕실의 소장품들마저도 위협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만과 편 견과 압제를 앙양하는 구체제의 잔재" 가운데 하나로서 척결의 대상이었으며 실제로 혁명정 부의 국민공회는 1792년 8월 14일 왕실소장품의 전면적인 파괴를 명령하였다. 그러나 예술품 을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거니와 명령을 집행해야 할 위임관들조차도 자신들이 저지르게 될지 모를 역사적 오류 앞에서 주저할 수 밖에 얼었다. 마침내 국민공회는 당초의 결정을 번복하고 같은 해 9월 16일에 "자유인민의 여가를 영예롭게 지켜줄 위엄 있는 예술품 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칙령을 발표하게 된다. 1793년 8월 10일 마침내 중앙미술관이란 명칭으로 개관하게된 루브르미술관은 혁명공화국 이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명하게 타협한 눈부신 결과물로서 역사에 기록되었다. 시대의 종말이 란 그 시대의 예술품에 부과되었던 모든 상징적인 기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결국 작 품들은 예술성만을 지닌 하나의 문화재로서 남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루브르미술관의 개관은 과거로부터 탈피하여 새 역사를 시작하려한 혁명공화국이 과거의 유산을 적절하게 해석하고 수용한 성공적인 역사이행의 일례라고 하겠다. 과거 왕실소장품을 중심으로 개관한 루브르미술관이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나폴 레옹이 추진한 정복사업과도 무관하지 않다.9)그는 파리를 유럽의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중심 지로 만들겠다는 계획 하에 전 유럽에 걸쳐 혁명사상을 유포함과 동시에 각국의 문화유산을 파리에 집결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세운 일종의 문화정책이란 정복이후 전리품으로 미 술품을 장악하는 것이었는데 예를 들어 1794년 앤트워프로 부터 루벤스 작품을 대량 유입하 는 것을 비롯하여 다음 해에는 홀랜드 거장들의 작품을 그리고 파르마, 모데나, 볼로냐 지방 에 휴전을 가져온 댓가로 이태리에 걸작품 양도를 종용한 일 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로마 및 베니스에서 약탈한 작품들을 1798년 7월 승전행사 때 루브르에 추가 반입함 으로써 루브르는 전례없이 풍성한 소장품을 소유하게 되었다. 루브르의 비약적인 발전은 오히 려 지방미술관들의 쇠락을 가져오는 역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프랑스 전역에 산재한 주요작품을 루브르에 중앙집중 시키려는 목표 하에 심지어 지방미술관들의 소장품을 강제로 수집하는 사례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과도한 중앙미술관 진흥계획은 지방유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나플레옹은 1798년 9월 15개 지방미술관의 창설을 명령하고 루브르와 베르사이 유가 소장하였던 작품들을 이들 미술관에 분배하게 되었다. 또한 1802년 11월 19일에는 프랑 스 미술관 총국(Direction Generale des Musees de France)을 창설함으로써 프랑스 전역 의 미술관, 박물관을 총괄, 지도하는 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미술관의 발전은 시대의 변혁과 함께 발전의 양상을 달리했다. 정치적으로 많은 변모가 있었던 19세기의 경우, 먼저 전반기에는 고고학적인 발굴이 왕정복고라는 정치상황 과 맞물려 장려되었지만 유럽각국과의 각축에서 루브르는 판테옹의 대리석 몇 점과 1821년 밀로의 비너스를 입수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후 프랑스는 현실적으로 입수가능한 자국내의 문화재로 관심을 돌려 역사속에 망각되어 있던 중세기 작품들을 수집하게 되었고 이는 새로 운 성격의 미술관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미개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중세의 미술품들은 당시 만연했던 무신 론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각광받게 되고 특히 계몽주의에 반발한 낭만주의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얼었다. 당시까지 가격형성이 힘들고 매우 낮은 가격으로 매매되던 중세 물품들을 전직 재무부 참사관이었던 Alexandre du Sommerand가 대거 매입하여 1832년에 이 모두를 국가에 헌납했을 뿐만아니라 1832년에는 자신의 소유였던 Hotel de Cluny를 전시 장소로 제공함으로써 마침내 프랑스는 국립중세미술관을 갖게 되었다. 중세유물에 대한 낭만주의적 열정은 강력한 국수주의 감정과도 병행했던 것으로 루이 필립 왕은 이 감정을 자극하여 혁명이후 쇠락해진 베르사이유궁을 복원하였다. 또한 줄리어스 시저 에게 매료되었던 나폴레옹 3세는 제르고비와 알레지아를 발굴하였고 Saint-German en Laye에 설립한 국립고고학 박물관은 그 발굴의 결과를 모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1'1여기에는 골루와족의 유적들이 잘 보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