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발전과 정부의 역할 - 프랑스의 경우 -

안 소 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Ⅰ. 머리말
Ⅱ. 국립미술관의 성립과 발전
Ⅲ. 미술관에 대한 국가정책의 정립
Ⅳ. 미술관 지원정책의 범위
Ⅴ. 맺음말
Ⅲ. 미술관에 대한 국가정책의 정립

인간의 능력을 발현시키는 여러 분야의 일 중에서 특히 예술분야 발전만큼은 그 일을 주 도하는 예술가들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국가의 지원정책 역시 어떠한 틀이나 가치관을 제시하는 대신 자유로운 창작의 분위기를 제공하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적극 수용하려는 태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이다.

관주도형의 예술이란 반드시 변종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도 미술관 지원의 정책이 정립되기 까지에는 오랜시간이 소 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관학주의(Acadanisme)가 만연했던 19세기에 프랑스정부는 현대미술의 여러 혁명적인 사조에 대해 무지하였으며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1818년 왕정복고기에 뤽상 부르그궁에 설립된 현대작가미술관은 명칭만이 현대적이었을 뿐 실제로는 아카데미의 강제적 인 규칙에 따라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미술관의 전형이었다.

즉 미술관의 신규 소장품들은 정 부가 관할하고 있던 작품구입사무소의 재가를 얻어야만 했으며 반드시 살롱에 전시되었던 작품 중에서 구입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서양미술사를 통해 주지하고 있는 19세기 미술의 찬 란한 발전은 이러할 관주도형의 미술제 굴종하지 않았던 몇몇 천재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한동안 프랑스에서 미술의 진보는 정부의 정책회로 밖에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1897년 화가 구스타브 까이유보뜨(Gustave Caillebotte)는 자신이 수집하였던 당대회화 67점을 국가에 기중하였는데 놀랍게도 당시 프랑스정부는 그중 27점의 인상파회화를 진열하 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네, 세잔, 르누와르, 피사로 등의 걸작이었으며 이들이 1928년 루브르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30여년간을 뤽상부르그궁의 골방에 파묻혀 있 어야만 했던 어두운 역사의 이면이 존재한다.

1905년 정부의 작품구입규정 개편이후 현대작가 미술관은 살롱출품작이 아닌 작품도 수집 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나 당시 새로운 조형실험은 계속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실제로 1930년이 될 때까지 뒤피나 들로네, 루오, 레제 심지어 피카소의 그 어떤 작품도 현대 작가 미술관에 수용되지 못했으며 이는 파리가 19세기 말부터 전위미술의 요람으로 명성을 드높이던 사실과는 사뭇 대조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술관을 위한 예산편성의 측면에 있어서도 프랑스 정부는 일관된 정책을 갖지 못했다. 예 를 들어 19세기에 루이·필림 시대나 나폴레옹 3세 때 문화사업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전체 국 가예산의 1%를 넘는 정도였지만 1900년대에 진입하고 나서는 겨우 0.4%에 머무르는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벨 에포크"가 일컬어지던 당시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볼 매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20세기 초 약30여년 간에 걸쳐 대다수의 미술관들은 들 라크루아의 화실이나 로댕의 작업실처럼 개인이 설립한 미술관이나 기념관이 국가에 기증형 식으로 넘어간 젓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국가의 적극적인 미술관 지원은 한동안 소강국면 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미술관이 진정으로 정책의 대상이 된 것은 국민연합 내각의 능력에 의해서이 다. 지식과 미를 누릴 권리는 노동의 권리만큼이나 국민들에게 소중한 것이라는 의식이 사회 에 팽배하게 되었고 특히 예술애호가로 유명했던 당시 교육부 장관 쟝 제이(Jean Zay)의 노력과 호소로 정부는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부르조아들의 전유들로 인식되었던 문화를 민주화시켜 대중층에게 개방하고 동시대의 예술적, 지적 실험의 소산을 수 용하려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1937년에 개최된 [예술과학 국제전]은 4개의 새로운 미술관, 박물관의 탄생을 예고하 였는데 이는 곧 파리 시립미술관과 국립근대미술관의 전신인 Palais de Tokyo와 과학 박물 관으로서의 Palais de la Decouverte 그리고 인류학 박물관과 국립 민속 빅물관이 바로 그것 이다.

1946년에 출범한 정부는 "만인의 문화에 대한 균등한 접근"을 공약으로 제시하였고 이때 가장 손쉬운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분야의 육성이었다. 따라서 이 시 기 이후 프랑스에서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강화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었던 과제라 할 수 있 다. 우선 전국에 산재한 미술관의 종류를 분류하고 등급에 따라 국가의 지원과 감독의 정도를 달리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이와함께 1802년부터 존속해온 프랑스 미술관총국을 「프랑스 미술관 관리국(Direction des Musee de France : DMF)으로 개선하여 프랑스 전역의 미술관을 정부차원에서 전담, 관리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최초로 문을 연 미술관으로서는 1947년에 개관한 국립 쥬드 폼므 미술관을 들 수 있지만 전후 미술계 최대의 관심사로서는 국립근대미술관의 체제정비를 손꼽을 수 있다.

당시 Palais de Tokyo에 소속되어 있던 국립근대미술관은 장식미술에 치중 했던 시립미술관과 공존하느라 근현대미술을 다루는 국립미술관으로서의 명실상부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출범한 프랑스 미술관 관리국과 문예진홍원, 그 리고 국립근대미술관이 협조 체계를 구축하고 특별예산을 책정하여 매우 적극적인 소장정책 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선 쥬드폼므 미술관에 있던 인상파 이외의 해외 작품들을 이관하였고 작가들과의 직접매 매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확보하였으며, 피카소나 브라크 등 중요작가의 작품을 기 증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펼쳐 나갔다. 1세기 반에 걸친 아카데미즘의 지배를 거쳐 프랑스는 마침내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미술 콜렉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재개편 후 초대 관장을 역임한 쟝 카수(Jean Cassou)는 현대미술전을 조직하여 유럽 각지에 순회전시 함으로써 프랑스 국립근대미술관이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는데 일조하였다. 프 랑스 국내에서는 1947년에 아비뇽 교황관저에서 개최한 현대미술전을 통해 그의 전시조직 능 력을 과시하였는데 막스 에른스트로 부터 마쏭과 클레, 레제, 브라쿠 피카소 그리고 브랑쿠지 와 아르프 등을 포괄했던 이 전시는 전후 가장 먼저 손꼽히는 중요 사건의 하나로서 미술의 지방분산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미술관 체제의 확장과 진정한 현대화를 위해 프랑스 정부가 결여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문화부의 부재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문화분야의 일들이 교육부에 의해 관장되었고 미술관의 업무 또한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1959년 7월 문화부를 새로이 창설하면서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앙드fp 말로는 제3공화국이 문화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일들은 교육적 범위 내에서의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이제 국가는 예술을 지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젠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단언하였다. 그에 따르면 문화란 일반정치에 사용되는 정책을 적용시킬 수 없는 분야이므로 정부는 창작의 조건을 마 련하고 예술작품의 배포 및 보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재임기간 중 문화원, 극장, 음악당 등 각종 문화기린 전국 각처에 개설되었고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항구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되어 진정으로 문화의 지방분화를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미술관이 앙드레 말로가 내세웠던 광범위한 문화시설의 기능을 즉각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은아니다. 60년대의 놀라운 사회적, 이념적, 문화적 변화의 기류 속에서 미 술관은 기존의 틀에 박힌 개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미술관의 경우는 현행의 창조작업과 직접적인 접촉을 가져야 하고 동시대의 이념적, 사회적, 기술적 현실과 상호 교류하도록 새로운 임무가 요구되고 있었다. 즉 복합문화센터로 서 확장된 문화중간의 개념이 미술관에게 부여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대부터 <20세기의 기원전>과 같은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면서 쟝 카수는 복합미술문 화센터의 필요성을 체험적으로 제시한 바 있으며, 현실적인 여건속에서 1967년에 창설된 국립 현대미술센터(CNAC)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국립근대 미술관의 변화를 더욱 촉구하게 되었다.

즉 동시대 미술의 발굴을 목적으로 설립된 CNAC의 역할로 말미암아 작품소장 경향에 있어 서도 CNAC에는 현존작가, 국립근대 미술관에는 작고작가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등식이 생겨 났으며, 그로 인해 발견하는 두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국립근대미술관의 의기소침이 심화되 어갔기 때문이다. 양기관의 이러한 갈등은 1977년 퐁피두 센터의 건립과 함께 마침내 종지부 를 찍게 된다.

"모든 예술이 만나는 장소'로서 기능하게 될 퐁피두 센터의 개관을 앞두고 초대관장으로 역임된 퐁투스훌텐은 '퐁피두 센터는 그 개념이나 건축에 있어서 현대문화의 이질적인 요소 들을 하나로 융합하는 독창적인 노력의 결과이다."라고 피력하였다. 이제 프랑스는 퐁피두 센터를 통해 작품의 보존과 관리는 물론, 새로운 작품의 창작을 진작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외에 특기할 만한 미술관 진흥사업으로서는 1%5년에 채택된 피카소 미술관 건립계획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앙드레 말로가 1968년에 반포한 법령에 의거하여 국가에 상속세를 작품 으로 대납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작가 유족에게는 물론 문화재 확보와 보 호차원에서 제정된 거시적인 안목의 법제라 할 수 있다.

작가 사후 2년만에 채택된 미술관 신 규설립계획에 의해 파리시는 17세기 건물인 1'Hotel Sale를 건축가 Roland Simounet로 하여 금 미술관으로 개조하도록 의뢰하였고 마침내 1983년 피카소 미술관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쥬드폼므와 오랑쥬리 및 루브르에 분산 배치되어 있던 19세기 미술품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19세기풍의 역사(驛舍)인 오르세이역을 개수하기로 결정하였다. 1978년 7월 11일에 발표한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하여 프랑스는 1978년부터 1982년 사이에 미술관 건축 및 보수를 위해 1,407,000,000프랑의 예산을 책정하였고 그중 오르세이 미술관 계획을 위 해서는 363,000,000프랑을 할당하였다.

이 엄청난 액수의 예산은 당시 문화부 전체 예산의 64%를 차지하는 것으로 이때부터 미술 관 지원은 프랑스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1982년 쟈크 랑 문화부 장관 은 72개 조항에 해당하는 미술창조 장려책을 발표하였다. 창조와 지방분산화, 공공차원의 주문증대, 그리고 정보와 교육강화로 집약할 수 있는 72개항의 시책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의 나라 프랑스는 미술창조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와 더불어 지방미술관의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그것은 문화원이나 극장, 음악원, 도서관 등을 성공적으로 이양 받은 지방자치단체가 파리와의 문화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방미 술관의 건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미술관을 통해 문화정책을 실현하는 이유로는 미술관이 문화를 향수하고 여 가를 즐기며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대중적 장소 가운데서 가장 선호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역에 산재해 있는 미술관의 관람 인원을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도에 연간 4천 만명 선이었던 것이 1988년도에 5천 백만명 그리고 1991년에 7천 백만명 선으로 증가일로에 있다.

이는 프랑스 전체 인구 중 30%가 여러 문화활동 중 미술관 관람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는 미술관 관람이 사적지' 방문이나 연극, 음악회 관람 등을 누르고 영화감상에 이어 2순위 를 차지한다는 통계를 통해서도 증명되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