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사회 · 문화적 배경
1960년대 정치적으로 4.19혁명, 5.16 군사 구테타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던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도 50년대 말 발생한 세계 공항(1957-58)의 여파로 인하여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가 급감하고 이로 인해 경제침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새로 출범한 군사정권은 경제개발계획을 명분으로 본격적으로 성장전략을 채택하였고 이후 고도성장의 기본 틀을 구축하였다.3)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 달성과 새마을운동의 확산으로 한국은 낙후된 농업국가에서 중화학공업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 정부의 적극적 지원정책으로 중화학 공업에서 투자가 급속히 늘어났다. 1974, 75년 몇 차례 세계 공황으로 어려움은 있었으나 ‘중동 특수’로 한국경제는 호황으로 접어들면서 경제 계발의 고도성장이 이루어 졌다.4)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1972년 10월에 대통령 박정희가 수립한 유신(維新)헌법에 의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부정되고, 정치는 파행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5)
사회적으로 더욱 강압적으로 진행된 군사정권으로 인해 당시 불붙은 60-70년대 실험적인 창작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다. 특히 ‘제4집단’을 중심으로 한 체제 저항적인 작품 활동은 금지되어 작품을 통한 대 사회발언의 기회는 제어되고 순수한 창작활동만을 허용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갔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민중미술이 등장하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도 미술계는 순수 창작 활동의 범주 안에서 다양한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위적인 실험 미술의 단체이던 ‘AG’ 그룹이 해체되는 대신 ‘에꼴 드 서울’이 등장하는가 하면 ‘미협’이 주최한 《앙데팡당전》이 현대미술을 결집하는 실험 무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 한편에선 전국 단위의 《현대미술제》가 개최되어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6) 1970년대 중반에는 1968년 처음으로 동경에서 열린 《한국현대화화전》에 뒤이어 일본 및 해외에 한국 현대미술의 진출이 현저해졌다. 특히 한국현대미술의 일본 진출은 해방 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양국의 미술교류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과 국교 정상화 이후 1970년대 후반 한국현대미술이 일본에 구체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다.7) 75년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흰색,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전》과 79년 일본 동경 센트럴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 뿐만 아니라 유럽 쪽에서도 79년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현대국제미술전》, 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도 한국 미술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79년 미술회관의 《한국미술, 오늘의 방법전》, 79년 진 화랑의 《워크 온 페이퍼》, 82년 《한·일 종이의 작품전》 등 다양한 한국미술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되었으며 75년 이래 《카뉴 국제 회화제》의 한국 작품전과 80년대 들어오면서 주로 일본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전》, 《한국 현대미술, 70년대 후반의 한 양상전》 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른바 상업화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화랑이 출현하여 미술작품의 거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활기를 띠었다.8) 미술작품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과 비례하여 근대 작가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에 박차를 가한 것도 1970년대 들어와서 주목할 만한 미술계 현상으로 간주된다.
이른바 동양화의 6대가에 대한 재조명 작업과 아울러 전통 회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도 특기할 일이다. 이는 미술 작품의 상품화가 먼저 전통회화분야에서 이루어졌지만 그러나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는 서양화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서양화에 대한 거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서양화에 대한 기호의 증대는 새마을 운동 등으로 인한 생활 구조의 급격한 변모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전통적인 가옥구조에서 현대식 아파트 구조로의 변화가 생활 기물과 생활인의 의식을 변모시킨 주요 요인이 된 것이다.
경제 호황으로 인해 미술인구가 급증함으로써 신진 미술가 등용의 길을 더욱 넓혀야 했으며 또한 국전의 병폐를 극복하고자 민전 형식의 공모전이 속출하기도 하였다. 1978년 동아일보가 주체하는 민전인 《동아미술제》9)와 중앙일보의 《중앙미술대전》10)이 각각 열렸으며 한동안 중단되었던 한국일보의 《한국미술대상전》11)이 재개되었다.
70년대는 1979년 10월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한 유신체제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80년대 또한 신군부세력이 주도한 군사정권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역시 대규모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켜 1980년 4월 사북(舍北)탄광 노동자 파업, 5월 전국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 등이 뒤따랐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가운데 광주(光州)에 투입된 계엄군이 시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정치 불안 속에서도 경제는 저물가, 저금리 저환율의 3저(三低)정책과 부동산 투기억제 등 안정우선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부터 미술가들은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과는 별개로 한국적 미감의 정체성을 모색하면서 우리미술을 한 단계 높이 올리고 작업 내용을 강화해 나가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 가열되었던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 드로잉 작가들이 무대를 해외로 옮겨 전람회를 가졌다. 1981년에는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한국현대드로잉전》이 열려 현대미술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우리 미술을 선보였고 1984년에 타이베이 시립미술관에서는 《한국현대미술전》 등이 열려 일본에 이어 중국권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자본주의는 고 성장기를 맞으면서 ‘고성장의 결과, 개방은 불가피하며, 또 개방은 지속적인 고성장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개방론’이 대세를 장악했고 개방은 그 폭과 속도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속도가 붙어 진행되었다.12) 이때 치루어진 아시안 게임, 서울 올림픽 등은 문화, 미술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술인구와 미술 향수 층이 급증하였고 그에 따른 군소 화랑의 개관, 『월간미술』, 『계간미술평단』, 『가나아트』, 『미술세계』등 전문지의 발간이 대폭 이루어졌다. 또한 국제 교류가 활성화되어 본격화된 화랑 주관의 각종 아트 페어를 비롯하여 민간교류의 행사가 크게 증가하였다. 외국 작품전의 국내 개최가 현저해졌으며 일본 위주의 교류에서 유럽, 미국 그리고 아시아권에 이르기까지 접촉의 폭이 다각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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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현채 엮음,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 1945 -1991 고난과 희망의 민족사』, 소나무, 1998, p.245.
4) 박현채 엮음, 같은 책, p.250.
5)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선포, 1975년 1월 22일 유신찬반투표 실시, 1975년 4월 고려대에 군 투입, 1979년 10월 4일 김영삼 총재 제명, 1979년 10월 부산, 마산 지역에 계엄령 위수령 선포 등 유신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정치적 갈등이 계속되었다.
6) 오광수, 서성록 공저, 같은 책, pp.284-287참조.
7) 한국현대미술이 일본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68년 국립 동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이다. 권옥연, 김영주, 하종
현, 이세득, 이수재, 이우환,유영국,김종학,김상유,이성자,유강열, 윤명로 등 총 20명이 참가하였다.
8) 1960년대까지는 미술작품이 상품으로 인식되지 못했으며 이를 중재하는 화랑도 없었다. 현대화랑, 명동화랑, 조선화랑. 선화랑, 진화랑 등 본격적인 상업화랑이 대두하면서 미술작품의 거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상업화랑이 등장함으로써 미술의 대중보급이란 계몽의 역할이 행해졌으나 순수하게 창작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작가들이 등장함으로써 창작의 풍토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다.
9) 《동아미술제》는 출발에서부터 전시의 성격을 분명히 예시했는데 ‘새로운 형상성’이 그것이다. 새로운 형상성이란 우리미술이 안고 있는 추상 일변도의 불균형을 없애고 새로운 구상경향의 작품들을 발굴함으로써 균형감각을 회복하자는 의도를 지닌 것이다. 구상계열의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자는 취지를 내걸었다.
10) 《중앙미술대전》은 중앙일보가 추진한 것으로 극사실적 묘사의 작품이 등장하였다. 1회 《중앙미술대전》 수상자는 박대성, 홍정희, 신범승, 김호석, 이호철, 지석철 등이다.
11) 다른 민전과의 차별을 위해 지명초대와 공모로 이원화하였다. 지명초대에 더 중점을 두고 운영되었으며 초대작가를 지명하는 커미셔너 제도를 도입하여 이체를 띠었다. 첫 지명 커미셔너는 이경성이, 지명 공모 대상은 윤형근이 수상하였으며 일반 공모는 진옥선이 선정되었다.
12) 박현채 엮음, 같은 책,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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