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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해방과 종군
해방 후 부산에서 등사업과 사진현상소 등을 운영하면서 임응식은 1946년 ‘부산광화회(釜山光畵會)’를 조직(이후 1948년 ‘부산사진예술연구회’로 확대개칭)하여 그 해 8월 미문화원에서 첫 번째 발표전을 가진다. 당시 서울에서는 ‘조선사진예술연구회’(1945.9), ‘예술사진 동호회’(1948.10), ‘조광사진구락부’(1945.9), ‘대구의 경북사진문화연맹’(1945.10), ‘대구사우회’(1946.10), 인천의 ‘은영회’(1949.1)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10)
해방 후 사진계는 좌우 이념의 충돌로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임응식은 “정치에 밀접히 관련된 사진가와 예술에 밀접한 사진가가 맞붙어 다투는 그런 시대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최인진 역시 해방 후 한국 사진계가 구태의연한 작품 제작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당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사진들이 주로 다룬 소재는 노동현장과 헐벗은 민중들, 학대받는 하층민의 모습 등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정복자와 지배자의 예술, 혁명의식을 마비시키는 예술, 현실 도피적인 음풍농월적 예술”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었다.11) 임응식은 기존의 예술이 갖고 있었던 이러한 구태의연한 소재와 작품제작 방식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으나, 사회주의 계열의 작품들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다는 느낌을 받게되어 거부감을 느끼게된다.
임응식의 일생과 작품세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은 6.25전쟁의 발발과 종군기자로서의 참전이었다.12) 당시 부산은 전국에서 피난 온 인파들로 가득 찼었는데 ‘피난민 수용소’를 돌아 본 임응식은 이전까지 ‘취미’의 수준을 넘지 못했던 자신의 사진에 대한 회의와 ‘현실’에 대한 기록으로서 사진의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시 임응식은 “그때까지 나는 ‘기록자’로서의 사진인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사진인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회고한다.13) 임응식을 ‘기록자’로서의 사진인으로 바꾼 사건이 곧 일어났다. 당시 임응식이 잘 알고 지내던, 미문화원장 유진 크네즈(Eugene Knerz)로 부터 종군기자로의 참전을 권유받은 것이다.
그의 회고를 인용하면, “나는 전쟁의 위험 같은 불행한 상상보다는 새로이 내 눈앞에 펼쳐질 상황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나라가 지금 풍전등화의 위험 상황에 있지만, 부산에서 잘살고 있는 나로서는 전쟁을 실감할 수 없었다. 멀리서 대포소리가 들려왔고, 피난민들과 부상자들이 몰려오는 정도로는 전쟁의 비참함을 체감할 수 없었다.”14)
이렇게 하며 임응식은 1950년 9월 미 군함 마운트 머킨리 호에 승선하여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에 종군기자로 참가하게 된다. 미군들과 서울에 입성한 임응식은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맞닥뜨리게된다.
“폭격으로 부서진 서울은 그야말로 유령의 도시였다. 인민군이 숨어 있을 만한 건물은 거의 부서져 있었고, 그 속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너무 끔찍하고 소름이 끼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고사하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서울에 입성한 후 사흘간은 사진을 한 장도 찍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대상만을 아름답게 찍어대던 나의 카메라 버릇을 사흘 동안 극복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끔찍하고 참혹한 대상을 향해 카메라는 겨누는 것은 흡사 거기에 사격을 가하는 것처럼 여겨졌다.”15)
임응식의 회고에서도 알 수 있듯, 전쟁의 참전과 폭격에 의한 부상으로 스웨덴 야전병원에 입원했던 사건들은 그에게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경험은 사진이 가진 진실의 측면, 역사의 현장을 사실로 기록하는 사진가의 임무에 대해 자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인천의 모습(도판7,8)과, 9월 28일의 서울 수복 현장(도판9,10)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임응식은 참전한달 후인 10월 9일 부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귀향 후 임응식은 당시 찍은 사진을 갖고 부산 광복동 거리와 미문화원 전시실에서 《경인전선 보도사진전》(도판11)을 개최하여 당시 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임응식의 ‘생활주의 리얼리즘’ 경향을 보여주는 첫 번째 전시였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은 커녕 라디오도 귀한 시절이었던 만큼, 이 사진전은 부산의 피난민들에게 전쟁의 진행상황과 참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당시 제작된 사진 중 임응식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전쟁고아>(도판12)와 <피난 어린이들>(도판13), <피난길>(도판14), <구직>(도판15), <입모(해후)>(도판16) 등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빚어진 비참한 전쟁의 피해자가 누구인지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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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방 이후의 사진계는 불안정 속에서도 사단(寫檀)을 재구성하고 의욕적인 활동들을 계획했다. 1945년 해방 직후 9월에 ‘조선사진예술연구회’가 창립된 것을 시발로, 서울 ‘인상사진연구회’, ‘서울사진가협회’, ‘전국사진가연합회’ 등이 서울에서, 그리고 ‘평양사진가협회’, ‘경북사진문화연맹’, ‘부산예술사진연구회’, ‘전남사진연구회’ 등이 지방에서 창립되었다. 이중에서 전국적인 영향력이나 규모 면에서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전 사단의 힘이 집합되었다.
최인진, 「사진의 재구성과 사진표현의 다양화」, 『한국현대미술사(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78, p.91.
11) 임응식, 앞의 책, p.76.
12) “한국전쟁 중 사진인들의 종군은 UN 종군기자단의 외신구락부나 국방부 정훈국 산하 종국기자단에의 소속이나 개별적인 친분을 통해 부대를 따라 이루어졌다. 원래 사회부의 베테랑 기자였던 허승균은......중략......가장 활발하고 본격적인 종군을 감행했다. 미8군내에 있는 외신구락부에 소속한 윤승규는 외국기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종군하였다. 이밖에 부대를 따라 개별적으로 종군한 사진가는 최수목, 임응식, 이건중, 홍사영, 정도선, 임윤창, 이명동, 이동모, 최창희, 최경덕, 김정래, 김한강, 성두경, 이형록 등이 있었다.” 육명심, 「50년대 사진의 동향」, 『한국현대미술사(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78, p.102.
13) 임응식, 앞의 책, p.81.
14) 임응식, 위의 책, pp.82-83.
15) 임응식, 위의 책,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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