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서론
<안상철 : 수묵과 오브제>(2003. 7. 2 ～ 9. 7,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전을 준비하면서 안상철(然靜 安相喆, 1927-1993)이라는 작가가 제시했던 한국화에서의 선행적 실험들이 어떤 맥락에서 시도되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안상철의 조형적 실험이 발아되기 시작하던 1960년대 초반의 한국 현대미술의 여러 양상을 다룬 연구성과들이 출판물과 전시회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 둘씩 발표되면서 이 작가의 작업이 당시의 화단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고 성숙되어 나갔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가장 도움을 준 것은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제현상들을 심도 있게 연구해온 미술사학자인 김미경의 『한국의 실험미술』이라는 저서의 발간과 2000년부터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련의 기획전시인 《한국현대미술의 시원(1950년대와 60년대)》(2000. 6. 8～7. 27)과 《전환과 역동의 시대(1960년대 중반-70년대 중반)》(2001.6. 21～8. 1), 《사유와 감성의 시대(19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2002. 11. 21～2003. 2. 2)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앞의 저서와 뒤의 전시들은 당시 한국의 청년작가들이 어떤 생각에 골몰했으며 그것을 예술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보여 준 몸부림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서로에게 어떠한 실제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료와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이 시기부터 한국미술은 전통적인 화선지와 캔버스를 이탈하고 오브제를 도입하며 행위를 예술적 표현의 한 갈래로서 이해하는 적극적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안상철은 개별적인 활동을 벌인 작가였다. 안상철은 자신과 뜻이 맞는 동료를 찾아 나선다거나 그들과 함께 그룹활동을 벌이는 등의 일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작가였음을 여러 정황을 통해 알 수 있다. 1960년대 수많은 그룹들이 결성되고 해체되는 와중에서 안상철의 그룹활동은 단지 1962년에 결성된 ‘청토회’ 창립전에 참여한 것으로 국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에서 안상철은 자신의 향후 작업경향을 예견시키는 <영 62-2>를 출품하였다. 이전의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화선지를 뚫거나 돌을 붙이는 혁신적인 작품의 형식에 대해 어느 누구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끌어 내기 어려웠던 안상철은 이후 더욱 개인적이고 내밀하게 자신의 작업을 진행시켜야만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안상철은 우리의 접근을 용이하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흔적에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안상철이라는 작가가 지니고 있었던 자신의 예술에 대한 확신과 그 확신을 지탱시켜 준 탐구적 태도와 만날 수 있다.
그는 당대의 미술현상을 치밀하게 관찰했으며 이를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우리 한국화단에서 오브제미술의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가 되었다.
이 글은 안상철의 작품 중에서 1960년 이후에 제작된 오브제 작품들을 당시 실험미술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주목하였거나 자극 받았던 당시의 실험적 기류를 짚어보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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