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본론
1. 6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전개
학계에서 ‘모던아트협회’와 ‘현대미술가협회’, ‘창작미술협회’, ‘신조형파’ 등이 결성되고 조선일보사 주최의 《현대작가초대전》등이 열린 1957년을 우리 현대미술의 기점으로 상정하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보다 급격하고 다양한 조형 실험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1960년대 초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청년작가들은 기존의 미술형식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조형의식을 주창하고 이로써 스스로를 무장시키고자 하였으며 미술에 있어서의 여러 관습들을 타파함으로써 금기시된 조형의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였다. 전후의 피폐한 경제적 상황과 4.19, 5.16이라는 정치적 혼란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작가들의 창작 열기를 더욱 북돋아 그 어느 때 보다도 결실 있는 미술운동과 현상들을 야기시켰다.
1960년에는 ‘60년미술가협회’와 ‘현대미술가연합’이 결성되었고 1962년에는 ‘무동인’이 창립되었으며 같은해 ‘60년미협’과 ‘현대미협’이 연합한 ‘악뛰엘’이 창립되었으며 1963년에는 ‘오리진’ 그룹이 창립되었다.1) 청년작가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서구와 일본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험들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나름대로 소화시키면서 오브제와 설치, 행위 등을 새로운 조형언어로서 채택해 나갔다.
특히 1954년에 결성되어 1972년까지 지속적으로 그룹활동을 벌인 ‘具體美術協會’는 초기 앵포르멜회화의 영향을 수용하였다가 이후 수년간 해프닝, 액션, 설치, 소리나 영상에서부터 여러 가지 물체를 직접 작업에 도입하여 소재의 확장과 환경과 작품과의 관계를 개척하는 가능성으로 일본과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자극하였다.2)
대표적 작가들로는 金山明, 田中敦子, 白髮一雄, 村上三郞, 吉原通雄, 元永定正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서구의 다다와 네오다다적 성향을 일본적으로 해석하여 일본의 반예술 동향을 주도하였고 이후 70년대에 등장한 개념미술 및 모노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3)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실험미술은 비록 그것이 과도기적이며 잠정적이긴 하였지만 가치 있는 결과를 기대하면서 많은 시행착오 속에 활발히 전개되어 나갔다.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한국의 실험미술』의 저자인 김미경은 특히 ‘악뛰엘’ 그룹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현대미술가협회’와 ‘60년미술가협회’가 1961년 연합전을 가진 뒤 1962년 ‘악뛰엘’로 합쳐져 1962년 중앙공보관, 1964년 현대미술관에서 단지 2회의 전시를 가졌을 뿐이지만 우리 미술이 ‘앵포르멜’에서 ‘오브제’를 도입하는 경향으로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박서보, 장성순, 정상화, 김봉태, 김대우 등은 밧줄, 스티로폼, 흰 광목 등을 오브제로 적극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4)
‘악뛰엘’이 결성된 해에 안상철이 본격적인 오브제 작품인 <영62-2>(도1)을 발표하였다는 사실은 당시의 정황을 감안할 때 더욱 의미심장하다. 화선지로 층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부착하는 충격적인 방식은 ‘악뛰엘’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관찰 또는 교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화에서 현대화를 모색한 작가는 김기창, 김정현, 민경갑, 박래현, 서세옥, 성재휴, 송수남, 송영방, 안동숙, 안상철, 이규선, 이응로, 이종상, 장선백, 전영화, 정탁영등이 있다.5) 이 중에서 안동숙과 안상철은 오브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화면에 도입한 작가들이다. 안동숙은 <무제63>(도2)라는 작품에서 대자리를 직접 오려 화면에 부착하는 방식을 택하였고 안상철은 <영>의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자신의 작업세계를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한국의 실험미술은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으로 절정의 시기를 맞이한다.《청년작가연립전》은 이미 결성된 ‘무동인’과 ‘오리진’ 그리고 1965년 ‘신작가협회창립전(이하 신전)’의 합동전시회로서 조직되었다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6) 각각의 그룹은 개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김영남, 김영자, 김상영, 문복철, 석난희, 이태현, 최붕현, 황일지, 설영조로 구성된 ‘무동인’은 다다에서 뿌리를 내린 반예술적 성향이 강하였고 권영우, 김수익, 서승원, 최명영, 최창홍, 이상락, 신기옥, 이승조 등으로 구성된 ‘오리진’은 옵아트와 기하추상의 경향을 띄었고 김구림, 하인두, 최관도, 이종학, 손찬성, 신영헌으로 구성된 ‘신전’은 팝아트를 도입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아무튼 이 세 그룹의 연합전 성격으로 개최된 《청년작가연립전》은 오브제, 네오 다다, 팝아트, 옵아트, 테크놀로지아트, 해프닝 등을 도입하여 우리 현대미술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안상철의 작업에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실험들이 연대기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화면에서 도출된 오브제의 사용에서부터 완전입체의 추구 나아가 키네틱 아트와 라이트 아트, 사운드 아트 등의 실험이 6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계속되었다는 점은 그가 얼마나 현대적 조형의식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고자 하였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1)한국현대미술의 시원, 국립현대미술관 편저, 삶과 꿈, 2000, pp. 291-294 연표 참조
2)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 시공사, 2003, p.32
1950년대 말 우리나라의 청년작가들은 앵포르멜사조의 도입으로 서구현대미술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청년작가들은 일본 전위미술에 관심을 기울여 「美術手帖」등 일본에서 발행되는 미술 전문잡지를 구해 보기도 하고 소극적으로나마 작가간 교류를 통해 일본 현대미술의 동향을 감지해 내려 노력하였다고 전해진다.
3) 현재 일본의 중요 비평가의 한사람인 치바 시게오(千葉成夫)는 『美術の現在地點』이라는 책에서 일본의 전위미술운동을 1920년대의 “전위미술운동(大正期아방가르드)”과 1930년대의 “昭和期 전위미술” 그리고 “1950년대 이후 전위미술"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 千葉成夫, 美術の現在地點, 五柳叢書18, 五柳書院, 東京,1990, pp.75-78
4)김미경, 앞의 책, pp.25-27
5)한국현대미술의 시원, 국립현대미술관 편저, 삶과꿈, 2000, 서울 pp. 216- 243
6)김미경, 앞의 책, pp.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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