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머리말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多多益善)>(도판1,2,3)은 1988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의 나선형 램프에 처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이래 지금껏 변함없이 미술관의 초입을 지켜오고 있다.1) 이 요란한 탑을 지나지 않고서는 미술관에 들어설 수가 없으니, 무속이라면 천 자락 휘날리는 성황당이요 전통사찰이라면 일종의 천왕문과 같은 존재이다.
관람객들은 마치 성소(聖所)를 지나듯 1,003대의 TV모니터로 18미터 높이로 쌓아올린 이 탑을 거치면서 비로소 현대미술의 전당(殿堂)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램프코어의 나선형 복도를 오르는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전통적인 기복의례(祈福儀禮)인 탑돌이 의식을 행하는 셈이다.
관객을 일상의 틀로부터 현대미술의 초월적 시·공간으로 비약(飛躍)시키고, 전통과 첨단을 어지럽게 왕복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다다익선>은 현대의 무당 백남준의 ‘신장대’인 셈이다.2)
최근 15년 넘게 노후화된 모니터들을 전면 교체하면서 다시금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지만(도판4), 그 이전에도 <다다익선>은 일반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현대미술’ 작품을 묻는 설문에서 수위를 놓친 적이 없다. 여기에는 물론 작품이 놓인 지정학적(?) 위치가 큰 몫을 담당했음도 사실이지만, 이 반응은 무엇보다 TV모니터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그러나 웬만한 가정이라면 TV는 물론 캠코더 한 대쯤 가지는 것이 상식이고 수십 개에 달하는 채널과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 환경에 무한대로 노출되어 있는 관객들, 심지어 간단한 클릭 몇 번만으로도 백남준이 당시 어렵사리 만들어낸 동영상 효과를 재현해 볼 수도 있는 동시대의 관객들에게 이 TV 탑이 여전히 ‘현대적’이라는 사실은 <다다익선>의 의미가 단지 첨단 테크놀로지의 집합체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새로운 형식을 통하여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고전(古典)의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기술적인 기발함을 넘어 부단히 새로운 생명력을 퍼 올리는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1)제막식은 1988년9월15일 오후3시에 있었고 당시 관장은 이경성, 학예실장은 유준상(전 서울립미술관장)이었다.
2)김홍희는 “참여를 기본개념으로 삼는 백남준의 반(反)예술적 예술 역시 관객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예술, 즉 예술의 원형을 되찾기 위한 동종요법적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백남준은 가장 원초적인 무당으로서, 문명이전과 모더니즘 이후의 시대를 연결하는 통시적(通時的)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고 적고 있다. (김홍희, 『백남준 : 해프닝, 비디오아트』, 1999, 디자인하우스, 서울,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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