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백남준과 비디오
“... 존 케이지와 해프닝, 팝아트, 플럭서스 운동의 출현은 60년대의 도래를 알렸다. 무엇이 70년대를 예고하겠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비디오’이다”3)
“지난 10년간의 나의 TV작업은 관객의 참여를 위한 노력으로 일관되어 있었다.”4)
1. “Video-Videa-Vidiot-Videology”
백남준은 1972년 발표한 한 소논문의 제목을 “Video-Videa-Vidiot-Videology”라고 붙였다. 두운(頭韻)을 맞추어 배열해 놓은 이 제목은 비디오에 대한 백남준 자신의 시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이것을 앞에서부터 두 글자씩 끊어서 “Video-Videa”, “Vidiot-Videology”라는 두개의 대립쌍으로 독립시켜 보면 자연스럽게 백남준의 선택의 문제가 드러난다.
“Video-Videa”라는 첫 번째 쌍은 현실태(現實態)로서의 ‘비디오’와 그 이상태(理想態)로서의 ‘비데아’라는 서구철학의 플라톤식 해석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백남준이 어디까지나 철학자가 아니고 예술가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여기서는 이 용어를 철학적 문맥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비디오의 구체적인 활용가능성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즉 비디오를 현실 속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무한히 변용과 적용이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매체 자체에 대한 탐구를 통해 결과적으로 비디오의 존재론적 특질을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으로 구체화시켜 살펴보자는 것이다. 표현을 바꾸어 보면, 전자가 대상 외연의 세계에 대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확장’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모더니즘 미술의 철저한 자기반성에 따른 ‘수렴’을 뜻한다.
물론 작가의 실제적인 제작양상이 이중 어느 하나의 측면에만 고정될 리는 없지만, 굳이 백남준의 비디오 세계를 구분해 보자면 아무래도 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실제로 제작되는 비디오 작업의 대부분이 후자에 가깝다는 점을 볼 때 백남준의 작업이 여전히 독특한 지위를 가진다.
두 번째 대립쌍 “Vidiot-Videology”는 비디오라는 매체에 접근하는 태도에 있어서의 백남준의 선택과 연결된다. 즉, ‘바보상자’라 부르는 TV의 대중적 특성을 굳이 부인하지 않은 채 스스로 어릿광대와 같은 유희적인 몸짓으로 가볍게 비디오에 접근하는가 아니면 TV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염두에 두고 비디오라는 매체의 새로운 사회적 ·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하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백남준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는 듯 보인다.
TV에 대한 그의 초기 태도는 역시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3)백남준, “Video-Videa-Vidiot-Videology”, Binghanmton Letter(1972)중에서, Nam June Paik: Videa ‘n' Videology 1964-1973(Syracuse:Everson Museum of Art), (김홍희, 앞의 책, p.17에서 재인용)
4)김홍희, 앞의 책, p.57에서 재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