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

임대근(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I. 머리말
II. 백남준과 비디오
  1.Video-Videa-Vidiot-Videology
  2.비디오와의 만남
III. 다다익선(多多益善)
  1. 역사적 모형
  2. <다다익선>
Ⅳ. 결론
  * 참고문헌 및 도판

III. 다다익선(多多益善)

2. <다다익선>

<다다익선>이 처음부터 ’88서울올림픽의 개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는 1986년 10월 23일 이 작품의 설치계획을 상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백남준은 설치시기를 단지 “1987년 8월 이후를 최적시기로 생각한다. 단, 만약 미술관측의 사정이 불가피할 경우 87년 4월도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16)

당시 문건에는 TV수상기와 설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미술관에서 부담할 것과 설치를 위한 기술감독으로 당시 동경에 거주하던 슈야 아베를 추천하는 등 백남준의 요구사항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백남준 자신은 일체의 경비부담을 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점이나 경비문제로 <다다익선>의 디자인이 변경되는 경우가 없도록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점 등으로 미루어 작가는 이 시기 경제적인 측면에 특별히 민감했던 듯 하다.

이는 아마도 84년과 86년에 연이어 제작한 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바이바이 키플링>이 남겨준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 자리에서 백남준은 이 프로젝트가 ‘한국 정부측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반해, 2년 후인 88년 유준상은 “당초 이 프로젝트를 발의한 건 백남준 자신인 것이었다”라고 증언하고 있어 구체적인 사실은 다소 모호하다.17)

어쨌든 프로젝트는 진행되었고 당시 무료봉사를 자원한 건축사무소 아람광장의 대표 김원의 구조설계를 바탕으로 1988년 6월부터 8월말까지 철골공사를 완료하고 9월10일까지 TV수상기 설치까지 마무리되었고, 몇 차례 시험방영을 거친 후 9월 15일 마침내 그 거대한 모습을 일반에 공개하기에 이른다.

<다다익선>은 세 개의 채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작품을 위해 백남준이 자신의 기존 영상이미지들을 새롭게 편집하여 녹화한 작업들을 상영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총 8개로 “다다익선 1,2,3,4”와 “오리엔탈 페인팅 1,2,3” “다다익선-아치”로 구성되어 있다.

백남준은 다다익선 작품을 위하여 새로운 영상을 만들지는 않았고 그 때까지 이미 발표한 영상들을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1974년 제작된 이래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 대부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 비디오 클립들을 비롯하여,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위성프로젝트의 주요 영상 클립들과 , 등 주요 비디오 작업들, 샬로트 무어만과의 각종 공연 장면 등이 백남준 특유의 정신없는 속도로 한 데 엮어진다.

이 정도 기념비적인 작품에 상응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백남준 비디오 예술의 한 획을 긋는 일종의 비망록과 같은 작품성격을 고려해보면 기존의 작업들로 엮여지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16)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신축·이전한 것이 1986년 8월25일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매우 일찍부터 백남준의 작품으로 이 공간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김진용 소장 “다다익선 자료집” 참고)
17)유준상, 앞의 글,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