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0세기 미술전

유준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경 과(1)
경 과(2)
프랑스20세기미술전(1975-1987)
「외부로부터의 위협」
프랑스 미술의 25년
평 가

 

◎ 경과(2)

필자는 1987년 5월11일부터 31일 사이인 20일간 프랑스외무성 APAPE초대로 프랑스에 갔다. 전기한「후편」의 실무접촉이 목적이었다. APAPE는 Association Pour I'Accueil des Personalites Etrangeres의 약자이며 외교의식의 전통을 존중하는 프랑스가 외국인을 국 비로 초빙할때 접대실무를 담당하는 외무성산하의 기관이다.

전편 전시가 끝난다음 재포장「전편」의 프랑스측 공로자인안토니오즈씨는「국립조형예술협회」(Association Nationale des Arts Graphiques et plasti-ques)에 개별연구실을 두고 퇴역후의 사무를 보고 있었다.

「전편」의 실무를 위해 내한했던 위드여사, 트랑드니앙여사(뒤뷔페재단사무국장), 외무성의 마벵과장과 코레트여사 그리고 피카소미술과장인 조르젤씨등을 방문 그간의 노고에 대해 치하했으며 앞으로의 문화우 호를 더욱 돈독히 해나갈 것을 당부했다.

87년의 파리는 89년 7월 14일의 프랑스혁명 이백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대대적인 개혁중에 있었으며, 그 하나 하나의 추진과정을 목 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즉 도불목적의 기본과제인 88년도의「후편」전시에 관한 실무협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전시의 프랑스측 총책임자는 도미니크·보조(M. Dominique Bozo)씨이며, 퐁 피두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바 있는 유능한 미술행정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현재의 공식직위는 문화성의 조형 예술국대표이며 한국식의 위계로 비유하면 차관급의 문화관 리인 셈이다.

프랑스의 미술행정은 미술관조직과 실무적인 연계로 되어 있으며, 1959년 드골행정부가 문화성을 신설함에 따라, 이제까지 독자적이며 방대한 기구였던 「미술관 총국」(Direction des Musees)의 관리, 자문, 감사, 재정관리의 기능과 연대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미술행정은 학문적 또는 기술적인 방법들은 아니며 오히려 응용과학에 가까운 처방술이라고 할때, 60년초의 프랑스는 전기한 레스타니의 말처럼 「외부의 위협」과 「내 부의 의구심」이라는 증세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한 년대였다.

50년대초 M·라공이 젊은 혈기로 파리의 근대기술관엔 칸딘스키가 한점도 없다고 한탄하면서, 파리가 세계적 경향 하고는 상관없이 아직도 예술의 중화사상에 빠져있는 걸 경고했던 것도 이 무렵의 프랑 스미술계의 사정을 증언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늦은감이 있으나 프랑스는 서둘러 「예술 활동협회」(Association Franceis d'Action Artistique)를 유발적으로 조직하게 되며, 파리를 중심으로하는 중앙집약적인 미술계를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는등의 예술정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펴나갔던 것이었다.

5공화국 이래의 역대의 대통령은 프랑스미술의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힘쓰게 되며 퐁피두대통령의 발의로 오늘의 퐁피두센터가 탄생됨은 주지하는 대로이다. D·보조씨는 이것을 추진했던 실무진의 한 멤버였다.「전편」 추진당시 그는 퐁피두현대미술관장이었으며, 필자가 여기를 방문하여 목격하게 된 전시구성을 그의 입안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H·카잘즈(Henri de Cazals)학예원이 일러주는 것이었다.

87년당시의 퐁피두현대미술관은 약 이만점 가량의 현대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거며, 상설 전시된 것은 천점가량이고 해마다 같은 수량의 작품을 구입한다고 했다. 하루 평균 삼 천명정도의 관람객이 찾아온다는 거며, 현재의 전시구성은 전기한바처럼 보조씨가 육년 간의 관장재직시 기본계획은 작성하여 설치했다고 한다.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ㄱ) 작가단위 (인간)
  (ㄴ) 유파별 (작품)
  (ㄷ) 조명효과를 고려한 전시구성
  (ㄹ) 백색, 회색, 베지색으로 전시공간구별
  (ㅁ) 화재에 대비 스푸링쿨러장치(까스는 인체에 해롭다는 이유로 배제)

보조씨는 능동적인 관장이었다고 하며 육년간의 재직당시 전시품을 직접설치 하다가 사다리위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는 등의 적극성을 보였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약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Dominique Bozo(1935 아렝송에서 출생)
  1969-72 퐁피두센터설립기획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보존기획)
  1975 피카소미술관 기획책임(85년 개관)
  1980-86 퐁피두국립현대미술관장 재임
 《참 고》 퐁피두센터의 구성

 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
 ① Le Musee National d'Art Modeme
 ② Le Centre de Creation Industrielle
 ③ La Bibliontheque Publique d'Information
 ④ L'Institut de Recherche et de Coordination Acoustlque/Musique

퐁피두센터는 이상에서 보는바처럼 복합적인 문화기구이며 국립현대미술관(MNAM)은 이 가운데의 한 기구인 셈이다. 산업디자인연구소, 자료도서실, 청음각연구소등으로 복합 구성되는 퐁피두센터는 독립자율분과로서의 특수전문기관이라기보다, 예술에 관한 제반 속성을 하나의 종합현상으로 다루는 연구, 조사, 보존, 전시의 기구기능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금세기초 미술, 음악, 연극, 무용등으로 분화(consubstance)되었던 독자적인 역사가 다시 「인간정신의 단일의 역사」 (P. 바레리)로 재구성되리라는 프랑스적 지성의 예언을 실제로 종합하려는 문화현상으로 받아들여지며, 앞으로의 예술사회학이 문화기호 또는 문화정보의 통제기능으로 제시된다는 전제모형으로 이해된다고 하겠다.

전시회유형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







1987년 1월내한한 D.보조 (중앙)씨와 전시회유형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기능 기구의 준비요원으로 보조씨는 70년대초부터 활동했다는거며 80-86간의 6년간 관장재직시 현재의 퐁피두현대미술관의 전시기획프로그램의 기본계획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재직시의 그는 적극적인 활동가여서 가변성의 이동벽면의 개발에 힘썼다고 전하며, 작품설치를 직접 지휘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는 등의 실천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의 전시업적은 나움·가보, 부라우너, 로드코, 마티스, 무어, 피카소(70년대전)등이며, 80년대인 관장재임시 부라크, 마티쓰, 몽드리앙, 미로, 보나르, 쟈코메티, 크레, 베이컨, 발튀스, 뒤뷔폐, 마타, 세라등을 새로운 전시유형으로 소개했었다고 전한다. 또한 활발한 매입정책을 펴서 50-60년대의 작품과 최근경향을 수집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조직구성을 명확히 규정짓는데 업적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1986년 7훨 현재의 직책인 문화성조형예술국(차관보대우)의 책임자로 부임했다. 이러한 보조씨가「전편」의 전시효과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신축건물과 한국의 미술행정의 실제를 직접 체험하기 위 해 1987년 1월 17일∼24일인 일주간의 예정으로 내한한바 있었다.「후편」의 기본계획은 이때 상의된바 있으며 보조의 정식초청을 받아 필자는 전기한 바처럼 87년 5월 도불했던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