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0세기 미술전
유준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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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0세기미술전(1975-1987)
「외부로부터의 위협」
프랑스 미술의 25년
평 가
⊙「외부로부터의 위협」
한국인의 의식속에 잠재하는 프랑스미술에 대한 동경심은 거의 숙명적이라고 할만큼
뿌리깊은 컴플렉스로 작용한다는걸 먼저 인정해야겠다.
이것은 한국미술의 근대화과정
에서 파종된 의식의 일반적분포로서 상금에도 그 노스탈지는 무의식의 부식토처럼 깊은
것을 볼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통상관념으로 한국인의 미의식을 독과품목처럼 관리하고
있으며 다른 선입견과 혼합되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으로선 처음 파리로 진
출했던 1926년(이종우)은, 그것이 근대미술의 파종으로 비유할때, 이미 철늦은 파종시기
였다는데 대해서 바른 인식으로 깨우치려는 사람은 아직도 희소하다. 1926년의 프랑스미
술은 세계미술의 중화지로서의 역할을 이미 상실하기 시작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며, 레스
타니의 말처럼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음성적인 빌미로서가 아니라 통계적인 증거로서
선고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북방적(게르만.스라브적)인 예술의욕의 남하로 해석하려는게
일반화된 견해이다. 평자에 따라서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대위로 설명되기도 하며, 지
중해연안의 문화권이 늘 「고전」의 모형(규범)을 근거로 해서 회귀했던 합리주의와 감각
적 섬세성으로 대표되었던 이천년간의 관례가, 게르만의 정신주의와 스라브의 환상성에
의해 「위협」을 받기 시작했던 경과를 여기서는 가리키고 있다.
표현주의 또는 추상주의는
원래 라틴적인 것은 아니다. (M.지우르). 이 명칭은 1910년대의 베를린에서 주로 「질풍
노도」(H.발덴)파에 의해서 보급되었으며, 조형적이면서 정신적인 표현주의는 비극적이고
고뇌에 찬 실존주의적인 네오·로맨티시즘의 경향을 가리키는 예술용어라고 하겠다.
표현주의가 라틴적인게 아니라는건 그것이 하나의 규율이 아니라는 점에서 거부되었던
거며, 민족적 컴풀렉스가 강하게 작용하는 이 운동은 개인사상의 강렬한 표현으로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주의적이고 객관적이며, 고전, 전통, 논리, 점진등인 이른바 데카르트
적인 프랑스기질에겐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표현주의는 1885년부터 주로 북방민족
에 의해서 제기되었으며, 인상주의, 구성주의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상징주의와 네오·모
더니즘적인 양식의 영향하에 있는게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강렬한 색채, 모뉴멘틀한 포름,
그라픽한 분방성등에 의해 표현되는 극적인 테마들이 그것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들이
표현주의로 부르는건 대체적으로 1905년경부터 발생했던거며, 고흐, 뭉크, 키르히너등으로
대표되는 키에르케골적인 고뇌철학의 생명관을 가리킨다.
지중해연안의 고전주의를 기조로 했던 규범적인 미학은 르네상스, 네오 크라시시즘등
에서 보는 바처럼 유럽미술의 범례로 작용해 왔고, 서양미술사의 기초도 이러한 경과를
재확인하는 해석으로 꾸며져 있었다는건 주지하는 대로이다. 상대적으로 게르만, 스라브
혹은 노르딕의 요인들은 상당기간동안 부식토의 침정처럼 깊은 침묵을 지켜왔던거며,
바로크의 전성기로부터 여명을 맞이했던 프랑스미술은 19세기의 계몽개혁주의의 성과와
더불어 미술의 태양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로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술여론의
중화현상이 굳어지게 되며, 19세기말 인상파의 미술사적 승리는 파리를 세계도처미술가들인
코스모포리턴들의 예술적 고향으로 만든다. 에콜·드·파리는 이것의 간판이었던거며, 환
상적 노스탈지로서 미술가들의 마음속에 살게 된다.
그러나 전기한 게르만, 스라브적인
요인의 급진적인 남하현상은 이러한 감성적 히에라르키의 기득권을 여지없이 와해시키게
된다. 20세기 초두의 일이었다. 레스타니의 「외부의 위협」은 그러나 이러한 초기증세는
아니며 만성화된 증세를 뜻하려는 것이었다.
60년대초 그가 이끄는 누보·리얼리즘이
미국을 방문했을때, 그의 산업소비사회 미학은 이미 팝아트라는 명실상부한 산업소비사회
미학으로서의 미국적인 것으로 양산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프랑스미술은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아보려 할수륵 비례하여 역사적 미련학파로 남게 된다는 현실요인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여기서 제기되는게 「내부의 의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