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0세기 미술전
유준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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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0세기미술전(1975-1987)
「외부로부터의 위협」
프랑스 미술의 25년
평 가
⊙ 프랑스 미술의 25년
「내부의 의구심」은 1960년부터 85년사이인 25년간의 프랑스미술의 공과를 재검토한다는
입장에서 정리된적이 있다. 이 정리작업엔 공적직책의 미술행정, 평론, 학예직들이 참가했으며, 다음의 유형들을 떠올려 유형별로 검토된바 있다.
1) 1950년대의 프랑스미술의 전통과 시대성
2) G.L.M.T.C (위상. 빛. 운동. 기술. 개념)
3) 누보·리얼리즘
4) 신구상
5) 새로움의 표지
6) 오브제의 주변
7) 실제로서의 회화(les pratigues de peiture)
8) 비디오아트
9) 조각(1970-1985)
10) 25년간의 표상
이상 10개항의 유형으로 분류된 「후편」의 후보작을 놓고 필자는 프랑스측의 담당관인
P. 파르씨와 구체적인 협의를 교환한바 있었다.
1)은 50년대에 활약한 프랑스적인 회화
작가들……마네씨에, 바젠느, 에스테브, 피뇽, 뷔폐, 발튀스, 에리옹, 바사르리, 비씨에르,
리오펠, 브라이앙, 스타엘 그리고 쟈코메티, 뒤뷔폐, 포트리에, 폴리아코프, 스라지등등이
었는데 「전편」에서 이러한 유형은 이미 소개한바 있기 때문에 선정범위에선 배제하기로
했다.
G. L. M. T. C.는 프랑스적인 공간직관으로서의 위상학의 그룹이며, 기하학적인
조형감각이 뛰어난 그룹으로 인정되지만, 대부분이 다루기 어려운 작품들로 구성되는
공간조형물들이며, 전시의 기술적인 조건을 들어 다른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되는 작가들로 아감(이슬라엘), 부리(벨지움), 소토(베네주엘 라), 팅그리(스위스)등이
지목되지만 모두 외국인들이며 호네거, 코발스키, 모르네등이 있으나 역시 기술적 조건등
으로 어려웠다.
3)인 누보·리얼리즘은 주지하는 대로 이브·크라인, 세잘, 아르망, 크리
스토, 래이세, 스포에리등 이지만 크리스토와 아르망은 오히려 미국작가로서 오늘날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다른 작가들은 보험, 설치등의 어려움등이 역시 선정대상이 될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4)인「신구상」은 1960년대의 프랑스미술을 대표했던 유형들이며, 1965던 아이오, 아로요,
르칼카티의 세작가에 의해서 공동제작된 「M.듀샹의 비극적인 죽음」이 예언적으로 상징
한바 있듯이, 「회화의 복권」을 통해 프랑스미술의 구상적전통을 되살린다는 복고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지하는 대로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구상화를 존중하는 나라이며, 표현
주의와 추상주의와는 상용될 수 없는 감성적 요인을 토양으로해서 미술표지를 발전시켜온
나라로 알려져 있다.「신구상」을 계보적 맥락으로 추적하면 마네, 인상파, 드가, 세잔등으로
계승되며, 고호, 고갱, 야수파, 로트렉, 루오등의 회화에서 나타나고 시적으로 조형세계를
재현하는 의지로 파악해볼 수 있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세잔적인 규율과 마티
스적인 구성에다 예술충동의 근저로 되어있는 표현주의의 뉘앙스를 가미한 것으로 생
각해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추상파」라는 호칭보다도「비구상파」라는 호칭으로 이것의
유형을 일반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추상파」는 「구상파」의 대응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
다는 뜻인데, 이러한 언어습관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추상화 또는 표현주의의 경향은
프랑스적인 미술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운동은 「청년화가전」이라든가 68년 5월 봉기의 여파로 대두된 정치적 성향의 젊은
작가들, 가령 「인민공방」의 작가들과 거리의 화가 혹은 집단제작팀등에 의해서 시도된바
있으며, 전기한 아이요, 아로요, 르칼카티 그리고 테레마크, 모노리, 랑시아크, 프로망제,
에로, 아다미등이 있는데 「후편」에선 모두 제외되었다.
5)인 「새로움의 표지」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전달되고 메시지의 형식을 포괄적인
공간해석의 입장에서 새롭게 모색한다는 프랑스적(명료성과 선명함)인 예술 발상을 보
여줬던 모임이며, B.M.P.T.(B의 Buren은 88년 서울프랑스문화원에서 대대적인 개인발표
회를 가졌다)가 이들의 대표적인 위상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쟝·드라크의 사진기록,
크리스찬·볼탄스키, 사르키스, 베르트랑·라비에, 쟝피엘·베르트랑, M·쥬니알, T·무
루우, 쟝폴·테노등을 들 수 있겠다. 이번 「후편엔」볼탄스키와 베르트락의 작품이 출품
되었다. 볼탄스키는 70년대까지 사진으로 된 기록자료들을 가지고 인간의식의 변천에 관한
되찾기를 시도한바 있는데, M·푸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애독자로 알려
져 있다.
이번 서울전에선 작은 극화(劇化)로서의 (마법사들)을 작은 구멍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B·라비에는 (정신적인 것)(cosa mentale)과 그것을 틀잡는 (제일질료)(materia
prima)의 의미론적인 어프로치를 통해 회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J·P 베르트랑은
기하학적인 토포로지의 조형성과 그것이 놓이는 공간성의 문제를 발생학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생각되기를 프랑카스텔의 공간위상학의 영향을 받은듯 싶으며, 그의 상상적 패러
다임은 공간형식으로서의 조형예술은 인간의식의 여러 구조단위들…… 따라서 공간위
상으로서의 조형성은 반듯이 어떤 모양이나 표상만이 아니라, 개념, 기호, 수치 심지어는
꿀, 소금, 레몬의 즙까지가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공간은
만상을 종합하는 기본형식으로서의 기하학의 토포로지로부터 발생 혹은 소급된다는게
되겠다.
이상 세사람의 경우를 우선 예시했는데 이들의 작업태도는 매우 현학적이며 분석적이고
신경기호학적이어서 그야말로 데카르트적(명료성과 선명함)이라고 하겠다. 좋게 말해서
고도로 농축된 지적레벨로서의 이들의 작품은 예술학적으로는 높이 평가되겠는지 몰라도,
이처럼 고원한 레벨로 통하는 길목은 일반관중에겐 하나의 미로(迷路)일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세계미술로부터 경원되는 원인이 아닌가고도 생각되기도 했다.
6)의 유형인 오브제의 주변작가 가운데서 「후편」에 참가한건 푸레상스·팡슈네트이다.
팡슈네트는 어떤 특정인의 이름은 아니며 은유적인 가공의 호칭인데 푸레상스(특정한
장소에 존재한다는 뜻)가 말해주고 있듯이 (무명의 실체)들로 조직된 그룹의 명칭이다.
이들은 남부지방인 보르도의, 이른바 지방작가들의 모임이며, 스스로를 (프레상스·팡슈
네트는 다다가 쮜리히 출신인데 반해, 보르도 출신이다)고 자처한다. 말하자면 프랑스판
다다이스트들인 셈인데, 플아스미술의 관례였다. 파리중심의 미술여론으로 부상한 그룹이 아니라는 데에 특색이 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또는 러시아의 미술이 베르린, 뮨헨, 카셀등
지역을 단위로 해서 자생적으로 발전해온 데 비해 프랑스미술은 중앙집권적인 연역체계에
의해서 늘 조성되어 왔다는 점을 여기서 명심해야겠다.
이러한 집약현상을 분화해야 한다는
문화정책을 근자의 프랑스는 시도하고 있으며, 「후편」에 팡슈네트가 선정된 까닭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이들은 이발소의 낡은 의자, 시멘트 혼합기와
불이 켜진 샹데리아 그리고 아프리카흑인 조각들을 첩첩이 쌓아올린 여행트렁크 위에 올려놓는등의 오브제환경을 구성해보였다.
7)의 실제로서의 회화는 두말할 나위없이 L·비알라가 출품되고 있었다. 이른바 <시각
적인 형태와 물질적인 현실의 양면에서 포착 가능한 새로운 회화>인 비알라의 업적은
슈폴·쉴파스(지지체와 표면)인데 이미 70년대초부터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프
랑스가 공식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가운데의 한사람이 비알라이다. 한편
비디오아트와 조각은 출품되지 않았는데 조각의 경우 푸리드만, 토니·그랑, B·파제,
안느와 패트릭부부등이 지목될 수 있겠는데 운송과 설치등의 문제로 제외된 것 같다.
끝으로 25년간의 표상들로 지목될 수 있는 작가로 J·M 알베로라와 R·콩바가 있었다.
여기서 잠깐 80년대초의 프랑스미술계의 국내사정으로 소급하여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81년 파리의「시립근대미술관」(국립근대미술관이 퐁피두센터로 편입된 다음
시립으로 개칭된 미술관이며, 상설관의 성격에서보다 기획전과 실험전을 활발히 하고 있다.
(S·파제여사가 여기의 큐레이터) 이곳에서 「바로크 81전」이라는게 개최되었는데, 뉴
페인팅의 슈나벨, 크레멘테, 사로메등이 비로서 파리에서 소개되는 전시회였다. 이무렵
프랑스에선 프랑스식의 뉴페인팅 그룹이랄 수 있는「자유구상파」 (피규라시옹·리브르)가
대두되고 있었으며, 콩바, 브레, 보와롱, 로자, 브랑샬등인 20대 초반이 그 중핵이었다.
앞에서도 누차 말했듯이 프랑스의 중화사상은 표현주의(이 말은 프랑스인이 게르만적인
표현양식을 비웃는 뜻으로 처음 사용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형인 뉴페인팅의
국내이입을 거부하고 있었으나 세계적 추세를 끝까지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장미셀 ·알베로라 : 에노슈베르그 (머리벗 겨진 사람)와 협동작업을 벌리고 있는 알 베로라는 세계도처를 여행하면서 문화비 교사적인 기록물을 제작하고 있다.
이들은 「방향잃은 나침판」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으며, 이번 한국전에선 제5집을 출간했다.
끌로드·비알라 :「그물」
유젠느·르루아:「작은 숙녀」
푸레상스,팡슈네크 : 바터zp no.3
특히 경제적 성과로서의 미술시장이라는 현실요인을 감안할 때 내심 초조했었다고도 한다. 그렇듯
「자유구상」은 처음 뉴욕의 그라피티(낙서미술)를 본뜨고 이태리의 트랑스·아방가르드
그리고 독일의 빌데 마라라이와 유사함을 보였으나 콩바의 경우 그 생래적인 순수무구함과 오리엔트적 색채(회교권적인)로 표현되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으며, 듀피의
투명성과 피가피아의 중첩이미지의 기법이 독자적인 표지로 인정된다.
알베로라는 81년
봄 비평가 라마르슈·바델(Bernard Lamarche-Vadel)에 의해 조직된 (Finir en beaut )를
통해 데뷰한 작가로서 50년대의 앵포르멜 또는 추상표현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기라고
한다면, 알베로라가 새롭게 편입되는 뉴페인팅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후기로 비유되겠다.
이들의 공적은 회화표현의 가능성의 확대라기보다 그 회복이라고 하겠으며, 알베로라는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한 변형화면으로 신선미를 보여주는 작가였다. 그러나 이번 후편에선
회화가 아닌 사진기록물들을 가지고 왔으며, 요즈음의 그는 파리대학의 경제학교수인 M·
에노슈베르그(Michel Henochsbers)와 공동제작하고 있으며 「방향잃은 나침반」(D r gle-
ment de Comptes)이라는게 주제이다.
끝으로 E·르루아인데 이번「후편」작가 가운데선 제일 연장자이다. (1910년생) 그러나
그의 작품이 어째서 1975-1987년을 대표하는 「프랑스20세기미술」이어야 하는가고 강한
「내부의 의구」를 나타냈던 건 다름아닌 프랑스인이었으며,「후편」의 구성책임자는 침묵
으로 대답을 끝까지 대신하고 있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주제가 암시하고 있듯이 현대는 방향잃은 나침판
처럼 표류하고 있다는 거며, 이러한 표류증세를 현장에서 진단하기 위해 세계도처의 문
화권을 전기 두사람은 찾아다니며 그 시리즈를 사진기록의 매체물을 통한 서술적 전시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후편」을 위해 두사람은 미리 한국에 와서 여러 유적지를
답사한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