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열린 구조로서의 미술 작품
관람자의 참여라는 측면에서 미술작품을 살펴볼 때, 작품의 감상이 본질적으로 관람자의 시각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모든 미술 작품이 참여의 특성을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통상적인 감상이 관조적(contemplative)으로 이루어지며 인터액티브 아트의 경우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2)
현대미술의 변화가 야기한 정신적인 관조로부터 시각적인 참여, 구체적인 움직임을 통한 참여로의 변화는 관람자가 작품의 창조과정에까지 개입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였으며 미술작품의 구조를 열린 개념으로 인식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모더니즘 미술의 옹호자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는 ‘흡수와 연극성 : 디드로 시대의 회화와 관객(Absortion and Theatricality : Painting and Beholder in the Age of Diderot)’에서 미술작품을 자기 완성도와 자존적 존재방식을 갖춘 작품과 의도적으로 관람자 설정하고 관람자에 대한 직접적 의존을 전제로 하는 작품으로 구분하였다.
예를 들면 쟝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Batiste Simeon Chardin)의 <카드의 집 House of Card>(도판3) 속에 인물은 카드에 열중하여 있어 그림 속에 관람자를 흡수하지만 쟝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의 <허버트 로버트의 초상 Portrait of Herbert Robert>(도판4)의 인물은 화면 밖의 공간을 의식하고 관람객에게 시선을 던짐으로써 상당히 연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대전제인 작품자체의 완결성이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로 간주되는 이 작품은 참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외부적인 요소를 의식하고 이것이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람자의 개입의 여지를 담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미술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1420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리스키(Fillippo Brunelleschi)에 의해 창안된 선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재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공간의 재현을 통해 환영을 일으키는 뛰어난 고안책이었으며,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ista Alberti)에 의하면 회화의 평면은 창(window)이 되어 그것을 통해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회화 속에 펼쳐지는 광경은 관람자와 거리를 두고 일어나는 사건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자체로 완결되는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작품의 형식을 통해 외부로 열려지기 시작한 것은 거울이라는 소재가 도입되면서부터이다. 거울은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성질 때문에 실질적인 크기를 넘어서 확장된 공간을 내포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한 외부공간으로의 침투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의 <지오반니 아르놀피니 부부 The Arnolfini Marriage>(도판5)이다. 이 작품은 젊은 남녀가 엄숙하게 결혼선서를 교환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예수를 상징하는 한 가닥의 촛불, 중세이래 결혼을 상징하는 샹들리에(배경이 낮임에도 불구하고), 성소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신랑, 충성을 상징하는 개, 원죄이전의 아담과 이브의 순결을 의미하는 과일을 비롯한 다양한 상징이 숨겨져 있어 많은 미술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데 두 인물만이 등장하는 듯한 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외에 두 명의 인물을 더 발견하게 된다. 배경 한가운데에 그려진 거울 속에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화가 자신과 또 다른 인물이 이 선서 장면을 지켜보고 있으며, 또한 거울 위에는 장식글자로 ‘얀 반 아이크 여기에 있다(Johannes de eyck fruit hie)’라는 문구와 1434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쓰여져 있다.
화가는 이 결혼식의 증인이며, 이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결혼증명인 셈이다. 이와 같이 작품이 작품 속에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까지 포함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현대미술에서와 같이 직접적인 관람자의 참여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의 완결된 구조에도 불구하고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잠재적인 공간 확장, 즉 관찰자의 공간까지 고려함으로써 잠재적으로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밧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의 경우는 거울과 같은 매개물을 빌지 않고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방식을 통해 외부공간으로 침투함으로써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성 바울의 개종 Conversion of St. Peter>(도판6)은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는데 앞장섰던 로마병사 바울이 하느님의 꾸짖음을 듣고 말에서 떨어지고 난 후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일화를 담은 작품이다. 세속적인 인간으로 표현된 성인이 말에서 떨어지는 극적인 장면을 포착한 이 작품에서 강한 빛의 표현은 극적인 요소를 더하고 있다.
더구나 바울의 내뻗쳐진 손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관람자에게 구원을 청하려는 듯한 ‘연극적’ 요소를 내포하는데 이것은 후에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요소로 해석되었다.
열린 구조로서의 특성은 장르간의 혼합을 통해 더욱 강조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이후 교회의 권위를 되찾고자 장엄함과 성스러움을 강조하던 바로크미술양식은 회화, 조각, 건축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가 결합되어 나타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성 테레지아의 법열 Ecstasy of St. Teresa>(도판7)에서 이질적인 장르간의 혼합을 보여주었던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경우 관람자는 성스러운 광경을 목도하는 증인과 같이 실제광경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소멸되는 경험을 하는 그 순간 시공간을 초월하여 뛰어난 눈속임 효과를 통해 관찰자를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참여라는 관점에서 전통적인 회화 작품의 경우와 달리 관람자의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잠재적인 방식으로서 미술작품의 열린 구조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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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난지, 「움직이는 미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1,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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