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현대미술관 상호작용
인터액티브 아트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인터넷과 같은 최신의 과학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은 특정한 문제의 모델을 설정하고 실제와 비슷한 상태를 만들어 모의적 연산을 되풀이함으로써 그 특성을 파악하는 것으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제공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허구의 환경을 3차원으로 만들어 직접 들어가보고 만져보는 실제와 같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가상현실은 1960년대 비행기 조종사들이 비행훈련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명료한 도시>와 같은 많은 인터액티브 아트 작품이 이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게다가 1969년 미국 국방부에 의해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컴퓨터 네트워크로 시스템이 인터넷으로 대중화되고 여기에 1980년대 미군과 미항공우주국이 상호작용성이 뛰어난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웹상에서의 강력한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관람자가 작품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창조과정에 참여하게되는 현상은 과학기술의 발달 외에도 사회문화적인 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인문학적 영역에서 과거의 예술로부터 공간과 환영의 문제를 청산하고 작품에서 소외당한 관객의 수동적인 위치를 과감하게 중심에 놓은 것은 작가에 대한 상징적, 관념적 의미에 의문을 제기했던 미쉘 푸코(Paul Michel Foucault)의 『저자란 무엇인가』와 롤랑 바르트(Roland Bartes)의 『저자의 죽음』에서 제기된 논지와 연관성을 가진다.
작가라는 의미가 사회 내에서 과장되어 왔기 때문에 전통적 기능을 해체하고 허상적 의미를 간파하고자하였던 푸코와, 작가에게 부여된 의미가 결코 독자보다 중요하지 않고 완결된 작품의 존재성도 부인되며 작품을 읽고 받아들이는 독자가 그것을 완성한다는 열린 개념을 제시한 바르트의 주장은 현대미술의 경우에도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발달된 미디어의 수용 태도에 관한 논의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바톨트 브레히트(Bartolt Brecht)가 미디어에 대한 낙관론적 수용자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 보다 먼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에 이미 미디어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던 브레히트는 라디오와 같은 장치가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선(善을) 위한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소통을 전제로 미디어가 존재한다면 자연 주체가 의도하는 소통행위의 목적에 의문을 갖게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로부터 찾을 수 있다.
그는 사회적 관계 속에 활동하는 행위자는 그 행위에 있어 소통을 근간으로 하며 그러한 소통을 통해 자아정체감을 획득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의사소통행위론에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개념을 강조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와 논의 속에 인터액티브 아트는 미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최근의 미술경향을 보면 관람자가 직접 작품에 개입하여 변화를 가져오고 이를 경험하는 인터액티비티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가장 최신의 경향으로 디지털아트를 들 수 있다.
컴퓨터 파일 상태로 존재하는 디지털 아트는 흔히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나 웹에서 구현되곤 하는데 관람자들이 마우스로 컴퓨터를 조작함으로써 일정한 시각-청각적 경험을 하게 하는 상호작용성을 특징으로 한다. 인터넷을 통하여 파일상태로 교환되기도 하는 디지털 아트는 급속한 전파력과 동시성을 가지고 현실의 소통과 교환체계를 넘는 새로운 소통공간을 창출함으로써 가상 공간이 현실 공간보다 더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나아가 인터넷상에서의 예술이나 관람자의 체험을 유도하는 디지털 작품들은 미술관에서 행해지는 감상의 방식과 달리 상호작용의 과정이 중시되는 소통방식과 내용에서 전혀 다른 차원을 얻어낸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전의 미술이 시각적 문제에만 집중되었다면 오늘날의 미술은 이제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차원에서 시각적 소통의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이 생성되고 소통되는 공간을 새롭게 규정할 뿐만 아니라 미술의 개념이나 존재론적 의미까지도 새롭게 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이제 관람자의 개입을 통하여 점차 변형, 생성되는 열린 구조로서의 미술이 미술 자체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인식의 주체로 하여금 정체성의 획득에 도달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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