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DER BEVOLKERUNG을 둘러싼 논란
처음부터 이 작품의 실현이 난항에 부딪친 것은 아니었다. ‘예술적 자유’를 그 무엇보다 신봉했고, 어떻게든 세계 현대미술의 경향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자랑하고 싶었던 예술자문위원회 회원들은 하케의 기안을 별다른 반대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작품이 곧 실행될 시점을 앞두고 2000년 2월 CDU/CSU의 문화언론정치 대변인 노버르트 라머트(Norbert Lammert)가 이 계획에 대한 당의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2000년 3월에는 이 계획의 반대를 주장하며 초당적 의원으로 구성된 142명이 작품설치반대안에 서명했다. 결국 이 안은 국회의 공식의안으로 제출되어 2000년 4월 5일 코소보사태의 독일파병동의안 바로 전에 토론석상에 올랐고 찬반투표로 이어졌다.
인터넷상에 하케의 작품과 함께 제공되는 그 날의 국회의정서를 살펴보면2) 역설적이게도 하케 작품의 반대자들이 오히려 그의 작품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혹은 그 정치적 함축을 ‘직감’)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 작품을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CDU/CSU의 라머트(N. Lammert)는 하케가 날카롭게 공격하는 부분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지적했던 사람 중의 하나이다. 즉 그는 1916년 국회의사당의 정문 박공에 새겨진 헌사, ‘Dem deutschen Volke(독일 국민에게)’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Der Bevolkerung’이 쓰였다는 것은 독일헌법이 지정하는 국민의 최대범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의 리타 쥐스무트(Rita Suessmuth)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이 작품이 지닌 정치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렇다면 황인종, 흑인종, 터키인, 집시들도 여기에(국민의 범주에) 속한단 말인가? 이는 조국에 대한 반역이 될 것이다.“
하케의 작품을 열렬히 반대했던 F.D.P.의 의원 한스-요아힘 오토(Hans-Joachim Otto)는 그의 작품이 정치적으로 ‘은유’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게 발견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가지고 온 흙을 붓게 하는 행위는 1940년 히틀러가 크베틀린부르거 교회(Quedlinburger Stiftskirche)의 나치 성배지에 독일의 전지역 주민들이 가지고 온 흙이 든 항아리를 보관하게 했던 일과 비교된다고 지적하였다.
즉 하케는 히틀러에 의해 사용된 Volk(국민)’개념을 죄악시하면서도 흙에 대한 같은 의례행위를 사용하여, 고향의 흙에 대한 아우라와 상징을 똑같이 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미술작품에 대해서도 탁월한 정치적 시각을 가졌던 바, “하케의 작품과 크리스토와의 중요한 차이는 크리스토의 포장작업은 설득력있는 미적 개념을 가졌고 의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고유한 정치적 목적을 도구화할 필요가 없게 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우리가 이 안을 통과시키면 의회의 자존심과 주권에 먹칠을 하는 것이고 의회 고유의 역사에 대해서도 반기를 드는 것이다.”라는 말로 연설을 맺었다.
그 날 국회의 마지막 반대파 연설자였던 CDU/CSU의 폴커 카우더(Volker Kauder)는 하케 작품의 장소특정적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당신은 이 작업을 베를린 어디에다가도 설치해도 된다. 하지만 의사당 건물 안에서는 안 된다”고 그는 보수언론지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서 밝혔다.
그 날의 연설에서도 그는 매우 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했다. “나는 반대한다. 너무 단순하고 우리 건물의 품위에 맞지 않는 예술품에. 나는 반대한다, 독일국민을 홀대하려는 시도, 독일국민의 역사를 짧은 시간에 국한시키려는 시도에. 나는 반대한다, 독일의 국회를 국민(Volk)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는 책략에.”
2)“Kunstprojekt im nordlichen Lichthof des Reichstagsgebaude von Hans Haacke ‘Der Bevolkerung’”, Protokoll der Bundestagsdebatte 05. 04. 2000, Tagesordnungspunkt 4, 웹사이트: http://www.bundestag.de/kunst/kunstwe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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