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I. 하케의 작품, 그의 전략
3. 잡초-과정, 불확정성, 시스템이론
하케는 작업초기부터 닭의 부화나 개미집단과 같은 자연적, 사회적 체계를 다루는 작업을 해왔다. 1970년 뉴욕 도시 한복판에 작은 구멍을 파고 그 곳에 우연히 날아온 씨앗이 풀로 자라는 모습을 작품화한 Bowery Seeds 또한 Der Bevolkerung에 등장하는 잡초와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여러 지역에서 뒤섞인 흙에서 자라는 잡초가 가지는 불확정적이고 예측불허한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기술적, 정치적 권력이 미치는 범위의 한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이 잡초는 비록 무질서하고 보잘것없지만 ‘변화’하고 ‘과정’을 형성하는 생명체임이 강조됨으로써, 견고한 돌로 된, 딱딱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그럼으로써 위엄을 유지하는 건물의 성격에 반역(反逆)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생물학과 예술의 연결은 1960년대 이후 지속된 그의 ‘시스템이론’에의 관심과도 관련된다. 생물학자 루드비히 폰 베르탈란피(Ludwig von Bertalanffy)의 『보편시스템이론(1968년 출간)』에서 기원한 이 개념은 언어, 수학, 논리, 예술, 음악 등의 고차원은 항상 저차원의 조직을 전제로 하며, 서로 다른 차원과 영역은 체계적인 복잡성으로 얽히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예술계라는 좁은 영역은 다양한 접점을 통해 수많은 유기조직의 체계적 관계성의 특별한 조합’5)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을 통해볼 때 하케의 ‘예술’작품이 다양하게 관계맺는 지점들, 때로는 생물학적이고 때로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맥락들이 스쳐가듯 우연하게 접합하는 양상들이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예술’의 절대적 지위에 대한 신봉-예술은 모든 사소한 일상과 천박한 현실계 위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한다는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관념-을 전복하려는 하케식의 전략이며, 바로 이 점이 그의 작품이 다른 어떤 미술작품보다 더 은근하고도 강력하게 도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드는 새로운 의문이 있다. ‘이로써 진정 예술의 절대적 지위에 대한 신화가 붕괴되었는가’하는 것, ‘하케의 작품은 결국 하케식의 예술적 자유를 또다시 구축하려는 것에 머물러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5)Jack Burnham, “Steps on the formation of real-time political art”, In: Framing and being framed, New York University Press, 1975,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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