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I. 하케의 작품, 그의 전략
2. 흙붓기-참여민주주의, 차용
국회의원들이 직접 50kg에 달하는 흙을 자신의 지역구에서 담아와 ‘DER BEVOLKERUNG’이라는 글씨 위에 뿌리게 하는 행위는 하케가 이미 60년대 이후 줄곧 작품에 적용했던 ‘참여민주주의적’ 성향을 대변한다(<응축입방체>(1963-65)와 같은 생물학적 참여에서 (1970)와 같은 명백히 정치적인 참여에 이르기까지).
의원들은 무거운 흙을 담고 또 뿌리는 과정에서 동료의 도움을 받게될 것이고 그러는 동안 지역주민과의 교유의 기회가 의도되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이 ‘이벤트’에 참가한 의원의 이름이 그의 출신 지역구와 함께 알파벳순으로 게재됨으로써 해당 국회의원의 정치적 성향, 예술에 대한 인식이 공개되고, 동시에 참여의원의 명단을 보는 선거권자들의 입장에서도 해당 국회의원의 판단에 자신이 동의할 것인지의 여부를 마음속으로 결정하게 하는 기회가 주어진다-이로써 예술과 정치와의 밀접한 연관성은 여실히 증명되고 조장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선출될 국회의원들도 같은 ‘의례’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하케의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무한한 현재의 시점에서 계속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한편 한스-요아힘 오토(Hans-Joachim Otto)가 지적했던 것처럼 흙을 뿌리는 행위가 나치의 의례를 연상시킨다는 생각은 하케에 의해 처음부터 의도된 듯 보인다. 그는 자주 과거의 히틀러, 또다른 외관을 한 오늘날의 ‘히틀러’에 대해 여러 작품을 통해 언급해왔고, 이러한 언급은 종종 히틀러가 사용한 같은 ‘도구’를 ‘차용’하는 방식을 통해 제시된 바 있다.
한 예로 1988년 오스트리아의 독일합병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거리미술제에서 하케는 1938년 나치가 행했던 의례를 완벽하게 차용하였다. 히틀러가 ‘민중봉기의 도시(Stadt der Volkserhebung)’라고 명명했던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의 도시 한가운데에는 터키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7세기에 세워진 ‘마리아 기둥’이 있다(‘종교를 통한 전쟁합법화’의 역사).
이 기둥은 다시 1938년 검은 천으로 감싸여 또 다른 거대한 모뉴멘트로 화한 채 나치의 승리를 기념하는 수만명의 인파 속에서 우뚝 서 있었다. 이 사진 자료는 50년이 지난 1988년 하케에 의해 완전히 똑같이 재현되었고 심지어 ‘너희들이 결국은 승리를 거두었다’라는 문구까지도 그대로 차용되었다.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아래 새겨진 ‘패자’의 리스트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인명’의 리스트로 대체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치가 쓴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은폐되고 싶은 역사적 ‘사실’을 기분나쁠 정도로 정확하게 재현한 하케의 작품은 결코 이 역사가 종결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축제가 끝나기 며칠전 하케의 모뉴멘트는 신나치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것이다.
‘피와 땅’에 대한 신화를 창출하기 위해 나치에 의해 사용된 도구-‘Volk’를 신비화하기, 기념물만들기, 흙을 숭배하기-는 하케에 의해 그대로 차용됨으로써, 오히려 이 신화가 현재의 시점에서 철저히 재고될 기회를 조장한다. 실제로 이 ‘의례’에 참가한 의원 중 몇몇은 하케의 의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키이츠(Kiez)에 있는 유대인묘지나 신나치주의자에 의해 방화된 터키인의 집에서 흙을 담아오는 의원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의원들에게 있어 이 의례는 기분나쁜 것이었고 이 불유쾌한 기분은 ‘DER BEVOLKERUNG’이라는 흰색 네온 사이로 무질서하게 자라는 잡초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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