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Ⅳ. 하케의 딜레마 - ‘예술적 자유’, 무임승차
2000. 4. 5. 토론에 이은 투표에서 258대 260(31명 기권)으로 하케작품 설치반대안이 부결되었다. 2000. 7. 3. 국회의원들에게 작품에 참여를 희망하는 편지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시커먼 포대자루가 배달되었다. 2000. 7. 31. 작품은 완성되었고, 9. 12. 예술자문위원회 소속이면서 국회의장인 볼프강 티어제(Wolfgang Thierse)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가지고 온 흙을 하케와 함께 ‘DER BEVOLKERUNG’ 위에 뿌렸다.
국회 투표가 있었던 4월 5일 88개의 독일언론에서 이 사실을 보도했고, 티어제(Thierse)가 흙을 뿌린 날 다음에는 124개 언론매체에 이 이벤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6) 대부분은 이 결과가 민주주의의 승리, 예술적 자유에 대한 승리라고 환영했으며 하케 또한 결과에 만족한다는 인터뷰를 가졌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2000년 1월 25일 의사당측에서 내보낸 보도자료에서도 발견되듯이, 그의 작품이 이해되고 수용되는 데에는 또 다른 오해가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보도자료에 의하면 “예술가의 텍스트를 통한 언명은 예술작품의 일부로 볼 수 없고 의뢰의 부분으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 문구는 “‘Der Bevolkerung’이라는 단어는 ‘dem deutschen Volke’에 대한 반대개념이라기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라는 화해의 멘트와 함께 실렸다.
즉 하케의 작품을 찬성하는 쪽의 논리는 여전히 전통적인 개념으로서의 ‘예술의 자유’를 신봉하는 편에 있었으며, 하케의 날카로운 공격에 맞대결하기보다 오히려 그 공격을 피하거나 화해하려는 편에 있었다는 사실이다.7) (이는 하케의 작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하케가 지적하는 역사적 맥락, 정치적 은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바로 그 점에 자극되고 분노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실제로 하케는 그런 식의 화해보다 훨씬 더 불유쾌한 감정을 유발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예술의 절대적 지위’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반기를 들어왔으면서도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모든 시도가 허용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은 옹호해야만 하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문제는 무엇보다 하케식의 ‘예술적 자유’란 결국 ‘무임승차’할 자유라는 것이고, 이 무임승차란 속성상 자신을 신임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배반해야만 한다는 데에 있다. 바로 이 점이 하케가 처한 딜레마이다. 작품이 현실화되는 동안, 하케는 자신의 반대자, 찬성자 모두로부터 자신을 속이고 보호한 채 자신의 전략을 수행해야한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면 이 때 성취되는 하케식의 ‘예술적 자유’란 그저 예술가의 또 다른 특권이 될 뿐이지는 않을까. 백인, 남성, 독일인, 예술가 하케가 가진 그만의 또 다른 특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그의 작품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하는 데 봉사해왔던 전통적 예술의 기능이 처절히 붕괴되는 현장을 현재 목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름’을 잊게 하는 수많은 예술작품과 완전한 극단을 이루면서 ‘시름’을 불러내고 드러내며 토론에 이르게 하는 하케의 작업은 분명 예술의 진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예술의 전통적 봉사의 기능과 그러한 봉사에 힘입은 예술권력이 여전히 강력한 한, 하케의 작업은 또 다른 극단을 향해 그만큼 또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첨언 : 웹사이트 http://www.bundestag.de/bau_kunst/kunstwerke/haacke/
derbevoelkerung/bilder/index.html를 방문하면 웹카메라를 통해 찍힌 오늘 오후 2시 현재의 작품 상태가 화면에 나온다. 근 4년이 지난 과거의 국회공방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하얀색 네온은 현재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숲 사이로 떠오르고 있다. 명백한 정치적 공간 안에 ‘무임승차’한 ‘미술작품’은 서로 따지고 대꾸하고 시비하면서 ‘역사’에 대해, 지속된 역사로서의 ‘현재’에 대해 끊임없이 말걸고 있다.
6)Pressespiegel, Sep. 2000, In: http://www.bundestag.de/kunst/kunstwerke
7)하케는 이러한 사실 또한 교묘하게 이용했고, 그의 작품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반대논리를 방어하는 데도 활용한 바 있다. “토론의 기본주제는 ‘예술적 자유의 보장’에 관한 문제였다. 따라서 어디에도 헌법에 위해되는 예술작품은 없다.”라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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