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반성적 성찰
본고는 독일의 미술사학자 막스 임달(1925-1988)의 현대미술에 대한 연구를 그 방법론적 측면에서 고찰함으로써 현대미술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1)
임달은 독일의 미술사학자들 가운데 현대미술(Modern Art)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지녔던 학자이자 교육가로 평가된다. 그가 주로 연구활동을 했던 시대는 1960년대인데 당시만 해도 현대미술은 그 두드러진 현상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연구대상이 되지 못하였으며 대중들로부터도 고립되어 있었다.
그 원인으로는 전후 유럽의 역사주의적인 지적 풍토에 따른 당대미술에 대한 경시, 1960년대 학생운동과 관련한 정치참여적 분위기 등이 작용했다. 당시의 주류 미술사학계와 대중진영 양자는 전통적 미술형식에 비해 파격적이며, 비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현대미술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임달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박물관 직원, 전시기획가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나름의 접근 방법론을 세웠으며, 급기야 현대미술을 학문적 담론의 세계로 이끔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고 보급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임달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자신이 활동했던 2차 대전 후의 미술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구체미술 등의 비구상미술(Gegenstandlose Kunst)은 그의 연구의 중심주제이기도 했다. 미술사학의 전통에서 순수 비구상미술이 본격적인 의미로써 학문적 관심사가 된 적은 없었다.
이 때문에 임달은 비구상미술 연구에 대한 자신의 방법을 세움에 있어 전통적 주류 미술사학계와 차별을 두며, 나름의 독특한 방법을 개발했다.
임달은 자신의 미술사 연구방법을 ‘이코닉(Ikonik)’이라 명명할 정도로 독특한 위상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는 미술사학 전반에 대한 방법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의 수많은 미술사 저작물은 나름의 일관된 입장에서 저술되었기 때문에 이론적 입장 역시 저술 곳곳에서 산견되는 내용을 통해 추출해 볼 수 있다. 본고에서도 임달의 방법론적 입장을 현대미술에 관련된 그의 저술에서 찾아 정리하는 정도의 수준에서만 설명하고자 한다.
I. 반성적 성찰
가장 먼저 임달의 미술사 연구는 미술사학 일반의 철학적 토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부터 시작한다. 임달에 따르면 미술사학은 본래부터 그 토대가 취약한 분야이다. 즉 미술사학은 ‘미술작품에 대한 개념화(언어화)’ 작업으로써 정당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점에서 문제성도 가진다. 많은 경우 언어로 옮겨진 미술작품은 정확하지 못하게 전달되며, 심지어 원래의 작품의 의미를 왜곡하기도 한다. 현대의 비구상미술에 대한 연구는 특히 문제가 많다.
본래 비구상미술은 직관에 많이 의존하여 개념적인 접근을 불허하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미술사학은 과연 정당한 근거를 가질 수 있는가? 더욱이 현대 비구상미술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임달은 신학(Theology)에서 빌려 온 테제를 빌어 해답을 찾는다. 그에 따르면 미술사학이 작품을 개념화시키는 작업인 것처럼, 신학 역시 존재(신)를 언어화시켜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워낙 인간의 인식능력을 벗어난 불가사의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정확한 언어라 해도 신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신학적 작업이 무의미하지 않다. 바로 이러한 신학의 한계성은 오히려 신의 위대함을 드러내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은 종국에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며, 이를 통해 인간의 한정된 인식능력에 대비되는 무한한 신의 존재성을 깨달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신학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신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자체의 인식한계를 인식하는 것을 통해 신에 접근할 수 있다.2)
임달에 의하면 이런 역설적인 접근법은 미술작품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미술사학에서도 그 학문적 노력은 미술작품의 존재성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개념적 작업의 극단에서는 미술작품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열린다는 것이다.3)
즉 미술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의 과정에서는 목표를 이룰 수 없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결정적 토대가 된다. 따라서 미술작품에 대한 연구는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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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체 한계성 인식을 통한 접근법을 특징으로 하는 신학을 부정 신학(Negative Theology)이라고 부른다.
3) Imdahl, Max, “Bis an die Grenze des Aussagbaren” Kunsthistoriker in eigener Sache- zehn autobiographische Skizzen, Berlin, 1994, pp.246-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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