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Ⅳ. 본다는 것
임달의 방법에서 ‘본다는 것(Sehen)’, 즉 시각(視覺)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미술작품이 현존한다는 것은 곧 현상(Phanomen)으로써 시각에 의해 경험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작품에 대한 연구는 해당작품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정식화하는 것이기도 한다. 시각에 대한 생각은 임달의 방법을 이해하는데 중심고리가 된다.
미술사학자 얀젠-포키세비치(A. Janhsen-Vokicevic)는 임달이 시각을 인지된 시각(Wiedererkennenden Sehen)과 순수시각(Sehenden Sehen)으로 구분하여 이해하였다고 했다. 인지된 시각은 대상에 대한 판별이 수반되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 순수시각은 지적 인지과정이 없는 무목적적인 시각이다.
이들 시각은 동일 작품에서 혼재되며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는 입체파의 회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입체파의 회화에서는 사물이 추상적인 형태로 분해되는데 아직도 구상적인 형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반추상회화라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인지된 시각은 구상적인 대상과 관계하며, 순수시각은 추상적인 형태에 관계한다.
미술작품의 연구에서 이 두가지 종류의 시각은 상호 종합되어 전체적으로 미술작품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구성한다. 물론 작품에 따라 한가지 종류의 시각적 경험만이 작용할 수 있다. 순수시각만이 관계하는 순수 비구상미술이 그 것이다.
순수 시각은 지적 요소가 개입된 인지적 시각과 달리 무개념적이고, 무목적적이다. 따라서 현상으로써의 미술작품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임달의 방법에서 특별히 중시된다.11)
시각에 관련된 이같은 임달의 사상은 미술작품을 현상자체로써 바라보고자 했던 일련의 지적 전통과 닿아 있다. 미술사학에서 시각에 대해 주목한 것은 19세기 중엽이후의 독일의 미술사학자들로부터였다. 일찍이 피들러(K. Fiedler)는 시각적인 행위를 일종의 표현움직임(Ausdrucksbewegung)으로 이해했다.
즉 처음으로 피들러는 시각을 수동적인 반응의 차원이 아닌 적극적인 작품구성인자로써 보았던 것이다. 미술작품은 시각작용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되어진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리글(A.Riegl) 역시 시각에 따른 기초개념에 의거해 미술의 형태를 구분하고, 이를 기초로 미술사의 발전과정을 서술했다. 그가 미술사를 서술하려 사용한 ‘촉각적-시각적’이라는 개념쌍은 임달의 ‘인지적 시각-순수 시각’의 개념쌍과 통하는 것이다. 19세기 작가 힐데브란트(A.v.Hildebrand)도 비슷한 개념쌍을 정식화하여 미술의 형식을 존재적 형식(Daseinsform)과 작용적 형식(Wirkungsform)으로 구분하여 이해한 바 있다.
요컨대 현상의 구조를 시지각과 결부시켜 이해하고자 했던 태도가 임달의 방법론의 요체를 이루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임달은 이런 자신의 현상학적인 접근방법에 의거해 전통적인 장르논쟁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한 견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채색과 소묘간의 우열논쟁인 루벤스파와 푸생파와의 논쟁을 임달은 새로운 각도에서 평가하려 했다.
즉 채색을 위주로한 루벤스의 그림은 회화적 전체성(구조성)을 보다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회화적 전체성에 대한 강조는 직접성이 요구되는 시각 형태로써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달은 현대미술중에서도 들로네(Robert Delaunay)와 같은 색채주의 회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들로네의 회화는 채색논리에 따른 화면구성을 보여주는데 그의 그림에서 느낄수 있는 시각적 동시성(Simultanitat)은 결국 채색으로 구성된 화면의 전체적 성격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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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Janhsen-Vokicevic, Angeli, “Moderne und Gegenwart”, Max Imdahl Gesammelte Schriften Band 1 Frankfurt am Main, 1996, p.17.
12) Imdahl, Max, “Die Rolle der Farbe in der neueren franzosischen Marlerei”, Max Imdahl Gesammelte Schriften Band 3 Frankfurt am Main, 1986, pp.16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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